개인적으로 여행에서 가장 재미없어 하는 코스가 유적지와 박물관이다. 하지만 오사카라면, 그리고 기존의 박물관과는 다른 곳을 구경하고 싶다면 '오사카 주택 박물관'은 한번쯤 가볼만 하다. 시내 한 복판의 생뚱맞은 건물 무려 "8층"에 자리잡은 이곳은 잠시나마 타임머신을 타고 옛 에도 시대의 거리를 실내에 재현한 하나의 완벽한 스튜디오다. 심지어 밤낮이 바뀌고 동물울음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드러나는 주택 박물관에서 체험 여행의 새로운 모델을 엿볼 수 있었다.
박물관의 편견을 깬 '체험형' 박물관, 오사카 주택 박물관
동생이 처음 주택 박물관에 가자고 했을 땐 대략 난감했다. '주택'이라는 재미없는 소재와 '박물관'이라는 따분한 스팟의 조합에서 상상해 낸 공간은 내가 원하는 볼거리가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오사카 주택 박물관은 그냥 '박물관'이 아니었다. 삭막해보이는 건물 8층에서 표를 끊고 10층까지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내 눈 앞에 사무라이 영화 세트장 같은 게 펼쳐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더욱 놀랐던 것은 이 곳이 단지 옛 거리를 실내에 재현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각 주택의 내부에 일일이 소품을 진열해 놓은 '박물관'의 역할에도 충실하다는 점이다. 한집 한집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볼거리가 쏠쏠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덧 주위가 어둑어둑해진다. 천정의 조명을 조절해 밤과 낮까지 가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유카타를 입고 일본의 옛 거리를 거닐어 보자
하지만 주택 박물관에 왔다면 그냥 구경만 하기엔 좀 심심하다. 굳이 '일빠'가 아니더라도(혹은 나처럼 일본을 감정적으로 쫌 싫어하더라도) 유카타를 한번 입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색상 별로 다양한 천의 유카타가 진열되어 있어 자유롭게 골라서 입어볼 수 있다. 심지어 게다(전통 슬리퍼)까지 비치되어 있었지만 차마 신발에 양말까지 벗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옷 위에 유카타를 걸쳐 입어 보았다. 등 뒤에 커다란 리본(?)마저 걸으니 제법 그럴싸 하다. 온천 료칸에서 유카타를 입고 잔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박물관에서 유카타를 입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지나가던 유치원생들이 다 우리만 쳐다보는 데 좀 민망해서 사람 없는 데만 다니면서 사진 찍었다는...;;
미니어처로 한 눈에 보는 일본의 근대 역사
유카타 놀이까지 하고 나면 이제 진짜 박물관에 한번 가볼 차례다. 그런데 또 한번 놀랬던 것은 그 유리 상자 안에 들어있는 컨텐츠가 주택의 '유물'이 아닌 주택 양식의 '축소판'라는 사실. 이곳 전시관에는 시대 별로 조금씩 달라지는 오사카의 주택 양식이 매우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 과연 일본인의 세심하고 꼼꼼한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박물관이라 할만 하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마치 당시의 거리 장면을 찍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 작게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람 모형의 표정 하나하나가 익살맞을 만큼 리얼하니 그 또한 신기하다.
더욱 인상깊었던 것은 저 유리관 속의 미니어처 세트가 갑자기 밑으로 확 꺼지더니 새로운 세트가 하나 쑥 올라오는 것이다.;; 즉 전시물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게 아니라 시대 별로 음성 설명이 나오면서 계속 세트가 바뀌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서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 오사카라는 도시의 시대별 발전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박물관이 있겠지만, 오사카 주택 박물관 역시 '주택'이라는 테마를 지루하지 않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가본 많은 박물관 중 단연 기억에 남는 곳으로 손꼽힌다. 오사카 여행 중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입장료는 600엔인데, 학생증을 소지하면 300엔으로 깎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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