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 X Incredible India - 델리에서, 쇼핑의 늪에 빠지다
이 글은 델리에서 쇼핑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도의 로컬문화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반성하는 글이기도 하다. 끽해야 카레가루나 히말라야 화장품, 스카프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포털 검색결과를 참고했더라면, 나 역시 '인도는 살게 없어'라며 돌아왔을 것이다. 여행이 끝난 지금 드는 생각은, 역시 다른 루트로 미리 조사하기를 정말 잘했다, 그리고 인도는 무조건 다시 가야 한다는 다짐 뿐.
델리의 컨템포러리 쇼핑 1번지, '코넛 플레이스'
이번 기차여행이 결정되었을 때, 마지막 델리에서의 자유시간(1박 2일)에 갈 곳을 두루 조사했다. 배낭여행이 대부분인 한국의 인도여행 후기는 어찌나 일관적인지, 특히 쇼핑은 '히말라야 화장품'으로 대동단결된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아이허브에도 파는 히말라야 크림을, 굳이 10시간이나 비행기타고 가서 사야 할까? 그리고, 인도에는 '현재'가 존재하지 않는가? 인도에도 젊은 층의 대중예술과 세련된 패션 문화가 분명 있을 텐데, 왜 전통적 아이템(스카프, 헤나 등)만 주구장창 언급될까. 나는 인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블로그와, 평소 존경하는 호주의 인도 전문 여행작가가 펴낸 럭셔리 가이드북을 뒤지기 시작했다. 역시 놀라운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블로그 검색결과와는 완전히 다른 인도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인도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국이다. 13억의 인구는, 7년 후 중국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도 벅차다 보니, 인도까지 시선을 돌릴 여유는 많지 않다. 너무나 인도스러운, 동시에 세계적인 감각의 생활잡화와 패션 브랜드가 인도에 상당히 많다는 사실은, 알면 알수록 더 충격이었다. 가장 함축적으로 인도의 세련된 현재를 담은 몇몇 숍을 돌아보기 위해, 이들이 몰려있는 델리의 명동(?) '코넛 플레이스'로 향했다.
우선, 나의 긴 쇼핑 여정은 더 숍(The shop)에서 시작했다. 이미 숍에 들어서면서 후회에 또 후회를 반복했다. 귀국편 비행기를 며칠 늘리고 델리에 호텔을 알아봤어야 하는데. 실수다.
더 숍은 전통적인 텍스타일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조합한 자체 홈 & 리빙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델리에는 딱 2곳의 직영숍이 있는데, 역시 코넛 플레이스 점이 접근성이 좋다. 1층에는 침대 커버와 쿠션 커버, 심지어 너무나 아름다운 캐노피 모기장까지 있고 그릇 류도 꽤 많다. 2층에는 주로 옷을 파는데, 인도의 전통적인 복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세련된 옷이 많았다.
마침 키즈 라인도 있어서 5세 조카딸을 위한 흰 자수 블라우스와 민트색 면바지를 한 벌 샀다. 더 숍은 물건을 사면 비닐봉지가 아니라 수가 놓여진 작은 에코백에 담아주는데, 선물용으로도 참 고급지고 좋다.
하지만 역시, 인도를 대표하는 리빙 브랜드 숍으로 '팹 인디아(Fab India)'를 빼놓을 수 없다. 규모가 작은 '더 숍'과는 달리, 팹 인디아는 인도 전역에 지점도 어마어마하고 개별 지점의 규모도 크고 넓다. 남녀 의류는 물론이고 각종 침구용 패브릭, 가공식품과 영양제 등 생활 전반을 다루는 토털 리빙숍이다. 팹 인디아는 철저히 Made in India 제품만을 엄선해서 취급하고, 고급 제품을 갖춰놓기 때문에 현지인보다 서양인들이 더 많이 보인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 에너지 부스터, '모링가' 영양제는 1통에 3천원도 안한다. 원래 인도산 모링가가 유명하기도 해서 부담없이 두 통 담고, 홍차와 허브티 티백도 종류 별로 다양해서 살 게 많다. 그리곤, 패브릭 코너를 지나다가 침대에 까는 커다란 여름용 면시트를 사고 말았다. 인도산 고급 패브릭은 일단 패턴이 너무나 아름다운데, 수공예 기법인 블록 프린팅으로 섬세하게 무늬를 염색하기 때문에 직접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날씨가 심하게 더운 인도에서는, 이런 여름용 면 제품을 잘 만든다는 사실. 문제는 이거 말고 또 원피스 한 벌도 사고 또...쩝. 이렇게 쇼핑백은 점점 주렁주렁 늘어만 가고.ㅋㅋ
마지막 쇼핑 폭발의 대미는 글로벌 데시(Global Desi)에서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여긴 뭐라고 해야 할까, 인도의 자라, 혹은 포에버21? 물론, 외국인인 나에게 그렇다는 얘기고,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인도의 COS 정도는 될지도. 암튼, 인도의 젊은 층을 겨냥한 세련된 패션 브랜드다. 대체로 20~50불 사이의 중저가 가격대로, 부담없이 사기 좋다.
근데, 옷이 너무 예뻤다. 브랜드 이름은 글로벌 데시인데,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의 뻔함을 벗어난, 인도만의 신선함이 담겨 있었다. 이런 브랜드를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인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특히 이 코럴색 롱 가디건을 발견한 순간, 이것은 사야한다는 생각 외에는 그 어떤 잡념도 들지 않았다. 길이가 다소 길어서 키가 작은 내게는 좀 버겁지 않을까 했는데, 입어보니 딱 맞았다. 이것은 메이저 브랜드에서 흔하게 나오는 색상과 디자인이 아니었다. 인도답게 고퀄리티의 면 소재, 모든 테두리에 디테일돋게 박힌 자수 패턴, 끈으로 조절 가능한 허리 디자인과 서서히 넓어지는 7부 소매 디자인까지. 이것만 입으면 그 어떤 비치 휴양지도 두렵지 않겠다며.
근데 직원 님아. 이 가디건 색상 3가지라고 왜 말 안해줬냐...2018 S/S 룩북을 찾아보니, 자주색과 블루도 있는데 핵 예쁘다. 하지만 역시 황인종 웜톤인 내게는 코럴 색상이 가장 잘 맞을 듯. 그나저나 룩북은 어디 모로코에서 촬영한 거 같은데, 왠만한 글로벌 브랜드 못지 않다.
가디건과 함께 산 톱은 이거. 망토같이 생겼는데, 팔의 끈을 묶으면 자연스럽게 소매로 연결되는 신기한 디자인이다. 인도의 패션 브랜드만이 가진 독창적인 느낌을 잘 엿볼 수 있다. 이것도 보자마자 바로 구입.
호텔 와서 입어봤는데, 역시 마음에 쏙 드는 것. 재질 또한 아주 시원하고 구김이 가지 않으며 몸에 붙지 않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인도의 패션 디자인이 독창성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인도 여성의 기본 복식은 튜닉 스타일의 원피스와 레깅스, 스카프의 3종 조합이다. 이를 기반으로 패션이 진화하다 보니, 전통적인 인도 스타일에 세련된 디테일을 가미한 독특한 캐주얼이 탄생하는 듯 하다. 그래서 더 숍과 팹 인디아에도,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원피스와 레깅스를 많이 판매하고 있다. 글로벌 데시는 그보다 더 과감하고 트렌디한 패션을 선보이는 셈이다. 이렇게 코넛 플레이스 나들이는 쇼핑으로 하얗게 불태우며 마무리. 우버 6인승을 나눠타고 함께 길을 나서준 블로거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나 쇼핑하는데 숍 밖에 앉아있고 막 ㅋㅋ
매장 내부촬영 금지여서, 아노키 구글맵 소개에서 가져온 매장 사진.
델리의 청담동(?), 칸 마켓에 가다
다음 날 오전. 내가 묵은 아쇼크 호텔의 위치가 도심(코넛 플레이스쪽)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 가까운 칸 마켓에서 남은 오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 일대는 뉴 델리에서도 상당히 고급진 동네로 분류되는 곳이다. 국내에도 꽤 알려진 부티크 '굿 얼스(Good Earth)'가 이곳에 있는데, 인도판 '앤트로폴로지'같은 셀렉숍이다. 예쁘지만 비싸고 살 게 없어서, 바로 발길을 돌렸다.
칸 마켓의 아노키 매장을 찾았다. 2층 매장의 문을 여는 순간, 내적 환호가 절로 터지는 아름다운 부티크 숍이 펼쳐진다. 아노키의 특징은, 시즌마다 새롭게 나오는 자체 패브릭 디자인으로 다양한 라인의 옷을 런칭한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인도 버전의 마리메꼬나 캐드 키드슨 느낌인데, 나는 아노키가 훨씬 더 세련되고 질이 좋다고 느꼈다. 일단 인도 최고의 생산지에서 엄선하는 원단(면) 자체에서 넘사벽이고, 수공예로 완성되는 블록 프린팅 패턴 또한 이렇게나 세련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막상 집어든 건 웃도리 한두 벌과 실크로 만들어진 민트색 머리띠가 전부다. 마구 집어들 정도로 가격대가 저렴한 것은 아니기도 하고, 아무래도 인도 현지인이 선호하는 디자인에 맞추다 보니 튜닉이나 어정쩡한 길이의 원피스가 많아서 한국에서 입을 만한 옷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인도에 거주하는 입장이라면, 엄청 살 게 많겠다 싶기도 하다.
알고보니 아노키는 사라져가는 자이푸르의 블록 프린팅 기법을 살리고자, 영국인이 런칭한 브랜드라고 한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인터내셔널 브랜드'화된 듯 하다. 다음에는 좀더 여유있게 여행와서 여러 아노키 숍을 돌며 실컷 구경하고 싶다. 흑.
델리여행의 발이 되어준, 인도 우버
매우 짧은 시간동안 많은 곳을 다녀볼 수 있었던 건, 역시 우버 덕분이다. 나는 우버 때문에 인도여행의 큰 허들을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인도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택시도 바가지가 심하다고 해서 혼자 다니는 게 매우 꺼려졌다. 그런데 우버를 타면 그런 걱정을 전혀 안 해도 된다. (물론 뉴델리 한정;;) 뉴델리 내에서는 어딜 가도 편도 2~3천원 내에서 움직일 수 있다. 대기 차량이 많아서 빨리 오고, 일반 택시보다 더 저렴하고, 바가지가 없어서 너무 좋다. 이번엔 초청여행이라 공항 픽업 차량이 있었지만, 만약 개별적으로 왔다면 공항도 당연히 우버로 오갔을 것이다.
인도에서 사온 것들
빈 가방으로 출국했으나, 역시 입국은 창대하게...;; 사실 흔한 여행기념품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은, 기차여행을 하면서 매일 다른 기착지의 환영식에서 받은 수많은 기념품과 선물 덕분이다. 자이푸르, 바라나시 등 매 도시의 환영식이 끝날 때마다, 예쁜 스카프와 목걸이가 목에 주렁주렁 걸렸다. 게다가 란탐보르 국립공원에서 놓친 벵골 호랑이가 담긴, 커다란 화보책까지 받았다.
그래서 추가로 구입한 기념품이라곤, 코넛 플레이스의 작은 가게에서 산 마그넷과 목각 스탬프, 공항 면세점에서 산 헤나가루가 전부다. 많이들 사는 바이오티크나 히말라야 제품도 살까 했지만, 인도산 뷰티 제품은 아이허브에도 많이 입점되어 있어서 사지 않았다. 다시 인도에 간다면 향신료와 식재료, 요리책과 음반, 주얼리 등은 조금 더 사고 싶긴 하다.
인도의 현재를 만나다 2편은, 쇼핑에 이어 카페 탐방기를 정리해볼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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