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미국 대도시 중 굳이 시카고여야만 했던 이유, 바로 호텔 때문이다. 미국의 3대 대도시인 시카고는 뉴욕 못지 않게 새로운 감각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호텔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전 세계 호텔 탐방을 목표로 하는 내게, 시카고만큼 미국의 변화하는 호텔 신을 제대로 들여다볼 도시는 많지 않다. 특히 음반사와 항공사까지 거느린 대표적인 대기업 버진(Virgin)의 야심찬 첫번째 호텔이 시카고에 이제 막 오픈했다. 역시 버진 호텔 시카고는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진심 멋진 호텔이었다.
2015년 2월 오픈한 신상 호텔, 버진 호텔 시카고
시카고에서의 총 8박 9일 중 선택할 수 있는 호텔의 수는 최대 4곳. 앞서 2+2박은 예약 완료하고 마지막 3박은 랭햄 시카고로 일찌감치 결정된 상황에서, 애매하게 남겨진 1박을 두고 가장 길게 고심을 했더랬다. 마지막 경합은 시카고 애슬레틱 어소시에이션과 버진 시카고. 둘다 너무나 멋진 호텔임을 알고 있었고, 위치 역시 둘다 밀레니엄 파크 근처였기에 머리를 쥐어뜯을 만큼 고민했다. 결국 조금 더 저렴한 가격과 '버진'의 브랜드 가치에 힘입어 최종 낙찰한 버진 호텔 시카고. 체크인을 하고 복도에 딱 들어서는 순간, 알았다. 나의 결정이 1박 2일을 완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Chambers Room
빨간 호텔 키를 갖다대자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너무나도 감각적으로 꾸며진, 마치 옛 헐리우스 스타의 드레스룸을 보는 듯 한 객실 디자인이었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이 아니라, 레트로와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젊은 감각도 읽혀졌다. 누가 봐도 '버진'의 브랜드 가치를 정확하게 구현한 객실이었다. 아시아의 저가항공인 에어아시아도 튠 호텔을 런칭했지만 완전 저가형 호텔이라 부티크라는 이름 붙이기는 아깝고, 이 정도는 되어야 호텔사업 시작했구나 싶을 법 하다.
사실 내 또래 팝키드에게 버진이라는 브랜드는 음반 레이블로 더 친숙하다. 그래서 버진 아메리카 항공사의 기내 안전 영상이 팝음악으로 만들어졌을 때 눈여겨 봤던 것도, 버진 호텔 시카고가 팝적인 감각을 곳곳에 갖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이 객실의 이름은 챔버 룸이다. 객실 소개 영상을 보니 방이 1개지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는 뜻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객실의 초입은 화려한 조명의 화장대와 세면대, 그리고 분리된 샤워실과 화장실이 차지한다.
침실로 넘어가기 전에 옷장을 살펴보니, 아. 그토록 원하던 부드러운 감촉의 파자마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동안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구나. 언젠가부터 나는 호텔을, 이런 배스로브가 있는 호텔과 없는 호텔로 나누게 됐다.
그리고 그 옆의 널찍한 수납공간 한쪽엔 요가 매트가 자리하고 있다. 비록 시카고에선 요가할 정신은 없었지만..;
챔버 룸의 두번째 스텝, 침실이다. 침대로 눈이 향하기 전에 더 시선을 사로잡은 건 미니바 역할을 하는 SMEG의 미니 냉장고. 어찌나 이 방과 잘 어울리던지. 또한 버진의 브랜드 컬러인 레드를 너무나 잘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역대 가장 푸짐한 미니바 셀렉션ㅋㅋㅋ여기서 포인트는 요 미니바의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테일 가격과 거의 차이가 없게 책정해 놓아서, 부담없이 몇 개 까서 먹어도 룸차지가 많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버진 호텔의 중요한 전략이다. 미니바가 싸다는 걸 객실 소개 영상에도 강조해놨을 정도다. 그리고 과자든 음료든 가급적 로컬이나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세심하게 선별해 갖추어 놓았다.
드레스룸과 침실 사이에는 미닫이 문이 있어서, 두 공간은 거의 완벽하게 분리가 된다. 하지만 나는 혼자 묵었기 때문에 저 문을 굳이 닫고 자진 않았다.
Details
계속 작은 침대에서만 자다가, 드디어 광활하게 펼쳐진 미국 사이즈 침대ㅋㅋ 역시 새 호텔답게 베딩 상태도 아주 좋고, 침실 메인 벽을 펠트 천으로 예쁘게 디자인해 놓고 거기에 호텔 소개 책자와 리모컨 등을 수납한 아이디어도 굿.
별도의 테이블에는 이태리제 조명이 아주 뽀대나게 놓여있다. 버진 보이스라는 호텔 자체의 카달로그 겸 매거진을 만들어 놓았는데, 슬쩍 들춰보니 로컬 뮤직 신을 소개해 놓은 페이지도 있다. 역시 버진!
여태 수많은 호텔 머물면서, 드립 커피 내려 마시라고 하리오 드리퍼와 드립 포트, 여과지까지 갖춰놓은 센스쟁이 호텔은 버진 호텔 시카고가 처음이었다. 바우트러스 커피로스터의 드립용 커피 파우더도 넉넉하게 두 개....너무 감동해서 인스타에 영상까지 찍어 올렸다는...ㅋㅋ 평소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 해마시는 커피지만, 커피 맛없기로 유명한 미국 와서 내가 내린 커피를 아침에 마실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할 뿐. 바우트러스 커피 로스터는 구글 오피스 시카고가 있는 머천다이스 마트 건물 근처에 있는데(요 지역이 아주 핫하다는!) 여행 막바지에 직접 다녀왔다. 후기는 곧 블로그에 소개하기로.
평점을 매긴다면 별 5개에 5개 만점. 1박만 한 게 너무 아쉬울 만큼 훌륭하고 멋졌던 호텔이었다. 혹시나 시카고에 출장으로라도 갈 일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 아쉬운 건 조식 포함 예약이 아니어서 아침 식사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고, 가격이 조금만 쌌으면 참 좋았을텐데 객실가가 할인을 이것저것 다 때려도 세금 포함 1박 당 22~25만원 선. 그래도 가장 작은 기본 룸이 이렇게 넓고 좋으니, 아마 돈이 아깝지 않을 경험이리라 자신한다. 위치는 시카고의 상징 밀레니엄 파크가 걸어서 3~5분 거리. 바로 지척이라고 보면 된다. 자세한 소개는 유튜브에도 해놨으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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