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지하철 노선도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BTS 사판탁신 역 주변은 아시아티크로 가는 수상버스 탑승이나 호텔 스테이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타워클럽 르부아에서 머무는 동안, 방락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천천히 산책하면서 여기 숨어있는 맛있는 집과 예쁜 카페를 하나씩 찾아 다녔다. 중심부에서 다소 멀어서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디바나 버츄 스파가 여기 있어서, 무작정 찾아갔다가 운좋게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무심코 바쁘게 여행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방락시장 주변의 숨겨진 매력.
방락 지구 산책,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속 카페
르부아에서 아침부터 호사스런 식사를 한 후, 더위 속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다. 어젯밤 도착해 동네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지난 여행때 묵었던 샹그릴라 호텔이 바로 옆이네? 그러니까 그땐, 이 일대를 아예 돌아보지도 못하고 떠난 게다.ㅜ 알고 보니 이 동네는 두 럭셔리 호텔을 제외하면 그저 서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하고 북적북적한 동네다. 로빈슨 백화점이 하나 있긴 한데, 그 일대가 모두 시장이다. 호텔에서 백화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수많은 노점상과 활기 넘치는 아침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만난, 백화점 옆 골목의 한 카페. 구글맵 추천을 보고 찾아가긴 했지만.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겸한다더니 실내 인테리어가 예사롭지 않다. 일단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두고 천천히 돌아보기. 방콕에선 타임아웃 만큼이나 중요한 여행정보가 가득한 BK 매거진도 최근 호들로 잔뜩 비치되어 있네.
조그만 약병에 든 시럽, 그리고 큼지막한 저그병에 담겨온 넉넉한 아이스 커피. BK 한 부 가져다가 슬슬 넘겨보며, 8박 9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천천히 계획해 본다. 사실, 방콕에선 오늘 어디가고 내일 어디갈 일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주말엔 짜뚜짝, 나머지 날들도 호텔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을 옮겨다닐 거라서 조급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게눈 감추듯 마셔버린, 오리국수 한 그릇
방락시장은 아침에 가야 제맛이다. 길거리가 온통 아찔한 음식 향기로 가득하고, 출근길의 젊은이들이 바쁘게 무언가를 포장해가는 활기찬 일상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근데 점심 즈음이면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그들처럼 야외에서 뭔가를 먹는다는 건 좀 무리다. 식당을 찾다가 무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리고기 맛집을 찾아냈다. 간판은 태국어로 씌여 있어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 보니 좁은 식당에 현지인들로 만석이다. 카운터 앞 간이 자리에 간신히 착석, 오리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면은 뭘로 할지, 드라이 혹은 스프로 할 지를 묻는다.
신속하게 차려나온 오리 국수는 꼬들꼬들하게 삶아진 에그누들 위에 오리고기와 데친 야채가 소담하게 올려져 있다. 오리 양념으로 쓰인 듯한 간장 소스가 면발에 배어 짭짤하면서 고소한 맛이 퍼진다. 국물로 맛보면 또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하다.(소문엔 엄청 맛있다고..;) 순식간에 한 그릇을 쿨내나게 드링킹;;;한 후, 유유히 배를 두드리며 나왔다.
타이밍은 곧 인연, 디바나 버츄 스파
방콕에 오면서 신규 스파에 대한 조사를 많이 했는데, 한국에선 압도적으로 디바나가 인기가 많다 보니 다른 대안을 찾아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곳이 없어서 큰 고민이었다. 마침 디바나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디바나 버츄 스파가 르부아에서 도보 거리에 있어서, 겁대가리도 없이 예약도 안하고 무작정 걸어가 봤다. 아무래도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의 일정에선 가보지도 못할 게 분명했으므로, 예약이라도 걸고 오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울창한 정원으로 감싸진 하얗고 예쁜 스파&클리닉이라니. 그동안 방콕에서 경험한 쇼핑몰 스파와는 완전히 다른 "진짜" 스파 하우스라는 직감이 왔다. 여기서 스파 한번 받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예약도 안하고 불쑥 찾아온 나를 부드럽게 안내하는 직원에 이끌려 소파에서 한 10여분을 기다렸다. 이때, 한 무리의 한국 아가씨들이 우루루 나온다! 오전에 시작한 막 스파가 끝난 듯. 그런데 지금 바로 받으면 가능하다는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시간 반 아로마 마사지 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마사지룸에 들어와 가운을 입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데....
따로 음악을 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한 정원 속의 스파룸인데도, 클래식부터 뉴에이지까지 장르도 다양한 스파 뮤직이 흘러나온다. 내추럴하게 꾸며진 마사지룸과 배스룸 모두, 소박하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아로마 마사지를 받고 나면 가볍게 샤워할 시간을 주는데, 디바나 제품을 사용해서 즐기는 샤워까지 힐링의 시간이라는. 마사지 실력 역시 매우 훌륭했고 여느 호텔 스파에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가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만족도가 높았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디바나만 찾는지, 이제야 알게 된. 내가 갔던 시간엔 일본인도 엄청 많았다. 역시 다음엔 꼭 예약을..
신선한 망고 스티키 라이스와 향긋한 레몬그라스 티가 스파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동안 방콕 와서 받은 마사지값이 아까워지는;; 정말 유익한 경험이었다. 물론 강렬한 자극의 타이 마사지를 좋아한다면 디바나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몸과 마음을 조금 쉬게 해주고 싶거나, 아로마 마사지와 스크럽 등의 제대로 된 스파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경험하고 싶다면 디바나는 아직까지 최상의 선택인 듯 하다. 이번에 오픈한 센트럴 엠버시에도 디바나의 상위 지점이 오픈을 했다는데, 이제 방콕 가면 왠만해서 대형 쇼핑몰 내 스파는 안갈 듯. 스파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려면 어디서 받는 지도 정말 중요하다는 걸, 작고 아름다운 정원을 걸으며 새삼 느꼈다.
동네 맛집을 '수집'해 즐기는, 테이크아웃 디너
스파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 잠시 쉬다가, 해지는 전망을 구경한 뒤 밖으로 나왔다. 밤이 되면 다시금 복작복작해지는 방락시장 주변에는 현지인들이 음식을 포장해가는 맛집이 널리고 널렸다. 다른 동네에선 의외로 눈에 띄지 않는 바나나 로띠 노점도 여기선 저녁에 쉽게 만날 수 있다. 할머니의 지시를 받아 일을 배워가는 한 소년이 열심히 만들어주는 로띠, 그리고 어묵 국수 집에서 포장한 국수 1인분, 편의점에서 산 Chang 맥주 한 캔....하나씩 하나씩 사모으는 재미가 있는 방콕의 저녁 맛집 투어.
이동네 어묵국수 맛있다는 소문은 들었다만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ㅜㅜ 안먹고 떠났으면 엄청 후회할 뻔 했다. 로띠야 뭐 맛있는 재료의 조합이 맛없을 수가 없고. 시원한 태국 맥주 한 캔에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 비일상적인 공간(57층 스위트룸)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을 맛보는 상황 역시, 여행만의 묘미다. 그렇게 방콕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2015/06/14 - 57층에서 먹고 자는 방콕 여행! 호화로운 호텔 '타워클럽 앳 르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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