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에게, 호텔에서의 아침식사는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 중 하나다. 수십 곳의 도시와 호텔에서 내놓는 비슷비슷한 조식 뷔페가 슬슬 질려가던 즈음, 부티크 호텔이 선보이는 메뉴들은 다시금 나를 '조식의 낭만'에 사로잡히게 한다. 특히 내겐 쿠알라룸푸르의 앙군 부티크 호텔에서 경험한 아침식사가 그러했다. 아침 일찍 호텔 꼭대기층에 올라가 보니, 커튼 대신 푸르른 나무가 부드럽게 드리워진 루프톱 바가 펼쳐진다. 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호텔 뷔페식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단품 메뉴를 주문해야 하는 이곳의 조식이 다소 불만스럽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내게는 오히려 반대였다. 아침부터 접시 들고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음식을 주워담아야 하는 수고란 여기선 필요없다. 메뉴판에 소개된 6개 남짓의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하면,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은 여직원이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차와 과일, 곧이어 주문한 메뉴를 차례로 가져다 준다. 난 그저 우아하게 앉아서 아침식사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앙군의 조식은 크게 말레이 스타일의 몇 가지 메뉴와 아메리칸 브랙퍼스트인데, 첫날 아침에는 서양식을 주문해 봤다. 사진 속 죽은 말레이 스타일의 죽인데, 속이 좋지 않거나 전날 술을 마셨다면 이 메뉴 강추. 담백하고 맛있다.
둘째날 아침엔 아예 작정하고 로컬 메뉴를 하나씩 주문해봤다. 나시고랭(밥)과 미고랭(면). 둘다 말레이시아에 왔다면 반드시 먹고 넘어가야 할 국민 요리다. 사실 아침부터 로컬 음식 먹는게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느끼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특히 나는 나시고랭을 먹었는데 기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슬고슬하게 볶아낸 계란 볶음밥이어서 한 접시를 뚝딱 비웠다.
사실 앙군 부티크 호텔의 루프톱 바는 식당만 따로 지역 신문에 소개가 될 만큼 유명한 맛집이기도 하다. 아침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달리, 저녁에는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전통 등에 불빛이 켜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로 변신한다. 저녁에 여기서 술 한잔 마셔야지 작정을 했는데, 또다른 히든 플레이스에 가느라 아쉽게도 저녁의 루프톱은 만나지 못했다.
앙군 부티크 호텔 1층 로비 밖에 있는 야외 바. 처음 호텔에 왔을 때부터 저 자리에 앉아서 밤을 보내리라 벼르고 있었기에, 여행의 마지막 밤은 이곳으로 낙찰!:) 낮에도 멋지지만 밤이 되니까 어찌나 조명도 그윽하고 분위기가 멋지던지. 게다가 이 자리에 앉았는데 맥주가 빠지는 건 말이 안된다는 걸, 이곳 호텔리어들은 잘 알고 있다. 로비의 음료 냉장고에는 세계 각국의 맥주가 항시 비치되어 있다. 이런 빈틈없는 개념 서비스같으니! 맥주를 고르고 있으려니까 직원이 다가오더니 기네스가 2+1 행사라며 친절히 권하는데, 심지어 가격도 한국보다 저렴하다. 잘란알로에서 포장해온 최고의 새우 요리, 그리고 기네스 2병과 함께 Cheers!
낮과 밤의 표정을 끊임없이 바꾸며 여행자들의 행복을 꼼꼼하게 메꾸어주는 이런 호텔을, 우리는 '부티크' 호텔이라 부른다. 그리고 호텔에서의 보내는 시간은 여행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앙군 부티크 호텔은 그것을 증명해보이는 몇 안되는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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