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말레이시아에서 제대로 된 커피는 스타벅스 외에는 없는 것인가? 로컬 카페를 너무나 좋아하는 우리에게 스타벅스는 마지막까지 미뤄놓고 싶은 보루였다. 그러다 Timeout과 론리플래닛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이폰 커피 전문점 Typica. 사이폰이라면 서울에서도 흔하게 접하기 어려운 커피인데, 여기라면 다르지 않을까?
카페는 부킷 빈탕에서 모노레일로 한 정거장 떨어진 임비(Imbi)역에서 도보로 10~15분 정도 떨어진 애매한 위치에 있었지만, 손바닥만한 구글맵에 의지해 불굴의 의지로 카페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주변은 온통 공사장과 낡은 인쇄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사실 보통의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갈 만한 입지는 아니었다.
소박한 손글씨가 적힌 나무판이 걸려진 입구에서 뭔가 느낌이 왔다. 카페 내부는 좁지만 밝고 환한 분위기. 차분한 외모의 주인장 언니가 내민 메뉴판에는 독특한 커피들이 눈에 들어왔다. 판단 향의 밀크를 넣은 커피, 레몬그라스 커피, 그린티와 밀크를 넣은 커피 등 블렌딩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로즈티와 허니를 넣은 아이스 라떼와 사이폰 커피, 그리고 홈메이드 망고 케이크를 주문했다. 모두 현지 매체와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메뉴다.
게다가 커피를 주문했더니 홀빈을 담은 접시를 가져와서는 향을 확인해보라며 테이스팅까지 권했다. 이 정도면 커피 맛, 안 봐도 알 것 같다.
외국인이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온 것이 신기했는지 주인장 언니가 묻는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 타임아웃 매거진에 소개된 카페 관련 기사를 보고 왔어요. 이 친구는 한국에서 바리스타 일을 하고 있답니다" 하며 함께 온 동생을 소개해 주었다. 중국인이라는 그녀는 원두를 발굴하기 위해 직접 외국의 농장을 다니며 커피 투어를 할 만큼 말레이시아에서 주목받는 바리스타다. 한국의 커피 시장이 매우 발달된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반가워해 주었다.
곧이어 나온 커피와 케익은 우선 비주얼로도 너무나 예뻤지만, 말레이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맛본 제대로 된 퀄리티의 커피였다. 로즈향이 은은한 라떼도 훌륭했고, 제대로 내린 사이폰 커피에는 원두의 향과 풍미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보통 커피 전문 카페에서 내놓는 디저트 메뉴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데, 이곳의 케이크는 좀 달랐다. 듬뿍 넣은 망고와 다진 견과류의 맛이 어우러져 풍성한 맛을 냈다. 게다가 가격도 한 조각에 10링깃(한화 3600원)으로 이곳 물가에 비하면 싼 건 아니지만 한국의 카페 물가에 비하면 감사한 수준이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티타임을 가지는 보람이 있구나. 드디어 만났다. 쿠알라룸푸르의 가장 멋진 카페를.
하지만 이곳의 위치를 감안했을 때,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에게 일부러 오라고 추천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부킷 빈탕 부근에 숙소가 있고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한번쯤 들러보길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아시아가 지닌 독특한 정서를 '커피'라는 테마로 멋지게 풀어낸 이 작은 카페에서, 말레이시아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View Larger Map
'TRAVEL > Malay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레이시안 핸드메이드'의 모든 것, 부다야 크랍의 크래프트 박물관 (2) | 2012.09.05 |
---|---|
조식부터 야외 바까지, 앙군 부티크 호텔의 아침과 밤 (4) | 2012.08.28 |
KL의 밤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 잘란알로에서 재즈 바까지 (4) | 2012.07.28 |
KL의 랜드마크 파빌리온에서 로컬 카페까지, 부킷 빈탕 탐험하기 (0) | 2012.07.26 |
도심 속의 작은 리조트, 쿠알라룸푸르의 앙군 부티크 호텔 (0) | 2012.07.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