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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단상

여성이 개발자들과 일한다는 것

by nonie | 김다영 2007.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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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성 중심의 IT 회사에서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다수가 여성인 직장에서만 일했던 내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과 일하는 게 더 편하고 좋아서 일부러 IT로 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다수의 남자들'과 '개발자 집단'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100% 남성들로
이루어진 우리 회사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일반적인 남성 사무직과 하등 다를 바가 없으며,
오히려 더 터프한 직종(건설 등-_-)에 비해 양떼처럼 온순하다고 반격한다. 과연 그럴까?

2년 넘게 여성 주도적인 회사에서 일헀고, 그 전엔 남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던(90명중 17명만 여학생) 경제학부 출신인 내가 바라보는 그들은,
매우 특수한 남성 집단이다.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면 할말 없지만, 적어도
내 주위의 샘플은 아주 일관된 공통점을 사이좋게 보유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Case by case이므로 모든 개발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주변)개발자들의 공통점

지나칠 정도로 수동적이고,
하기 싫은 일(+귀찮은 일)은 회사와 상관없이 절대 안하고,
시니컬하며,
자존심이 세다.(열등감..과도 관련이 있다. 본인이 가진 기술 빼고 순수하게
본인이 잘났다는 사람 하나도 못봤다. 여자 문제든 뭐든, 자조적이고 회의적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에 매우 서투르다.


회의를 잘 리드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공돌이 마인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뭔가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숫자로 확실하게 나와야 하고, 정답은 Yes or No로 눈 앞에
바로 보여야 하며, 의견을 얘기해달라고 하면 불평만 늘어놓고, 누군가가 대신 대안을
내주면 맞장구칠 준비만 하고 있다. 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없다. 오직
생산을 위한 소비적인 회의만 있을 뿐이다.
이전 회사에서는 회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회의 중심의 업무 문화가 처음엔
얼마나 생소했는지 모른다. 단지 얘기를 하기 위해 따로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니,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대체 뭔지... 그런데 지내고 보니, 회의가 아니면 얘기를 전혀
안하겠더라. 하루종일 컴퓨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그들의 생계수단인 것을 어쩌랴.
(기획팀이 시끄럽다고 따로 방을 쓰는 그들과 과연 활기찬 사내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예전 회사와 지금 회사는 분야만 다를 뿐, 전체 인원 수는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한달에 한번 회의를 했던 예전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뭘 하는지 서로 다 알았는데,
매일 회의를 해도 부족해서 점심시간까지 회의를 하는 우리 회사에서는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데다가, 알려주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걸 내 영역에 침범한다고 생각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혹은, 업무 이외의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 사내 문화? 사무실 분위기? 왜 그런게 필요하지?라는 식.
게다가 전공 특성상 여성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훈련받을 기회가 비교적 적다. 따라서 여성적인
대화 방식은 그들에게 공포심 혹은 적잖은 당혹감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이건 어떻게 생각해요?"
에는 답을 거의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고 체계와 다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사안에 대한 답은 뭐에요?"라고 묻는 것이 낫다. 이들에게 프리토킹은 시간낭비다.
모든 회의에 결론이 도출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결론이 정해지지 않은 사안이라면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화'를 할 줄 아는 개발자는 거의....없다. (술자리에서는 제일 잘한다-_-)

자존심과 열등감.
이건 업무 외적으로 받은 느낌인데, 너무 강하게 와닿는 부분이라 언급을 안할 수가 없다.
왜 공돌이들은 쓸데없는 피해의식이 많은 걸까? 상경계열 출신 남자들이 느끼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고 지 잘난 맛에 사는게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상경계열 출신들은 못 말릴 정도로 적극적이고, 대화를 즐기며,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업그레이드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얄미울 만큼 잘 안다.
극단적으로 공돌이들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특히 기가 센 사람을 반사적으로 피하는
습성이 강하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남성 특유의 습성은 오직 '일(개발??)'에만 적용된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성향의 이들은 자신의 결과물(개발??)로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에 일에 올인하는 습성이 있다. 결과물을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으로 자기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참으로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재 내 주위의 모든 개발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1:1로 모두 커뮤니케이션을
해보면, 일관된 공통점이 분명 있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묻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내가 하려는 '조직 문화' '사내 분위기 조성'과 같은 Job과 연결되면 이 문제는 커진다.
내년 계획 중에 분명 조직 문화에 대한 포션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회의적이다.
과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정답은, 본래의 나를 서서히 감추고
똑같이 묵묵하게 일이나 하면 되는건가. 조용히. 수동적으로. 남에게 떠 넘기면서.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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