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놀거리 충만한 오사카의 금쪽같은 3박 4일 중 무려 반나절을 서점에서 보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은 모두 다르겠지만, 혹시 디자인이나 미술 관련 전공을 하고 있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서점이 있다. 신사이바시의 요란한 대로변에서 살짝 뒷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한적한 골목 한켠에 조용히 자리잡은 현지인들의 도심 속 쉼터, 스탠다드 북스토어가 그곳이다.
스탠다드 북스토어는 잡지와 디자인 관련 서적, 디자인 문구에 특화된 전문 상점이다. 1층에서는 주로 일본에서 발매된 갖가지 월간지와 예술 관련 서적을 판매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잡지 과월호를 상당히 많이 비치해놓고 판다는 것인데, 한번 보고 버리는 잡지의 개념이 아니라 아카이브의 가치를 가진 일본 잡지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위 사진은 지하 1층이다. 지하에서는 자카(핸드메이드) 관련한 방대한 종류의 일본/수입 서적을 배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의 다른 서점에서도 쉽게 구하기 힘든 책들이 많으니 자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지하 1층의 셀렉션을 구경하길 추천한다. 또한 지하에는 수입 디자인 문구류도 취급한다. 몰스킨 같은 수입품부터 필기구, 노트 등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아 아이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가격대는 환율 고려하면 좀 비싼 편이니 수입보다는 일본 제품을 눈여겨 보길 권한다.
그런데 지하 매장 한쪽 편에서 솔솔 나는 커피 향기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향한다. 스탠다드 북스토어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가 바로 이 카페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가장자리의 2인용 테이블, 그리고 한쪽 벽을 따라 자리잡은 1인용 테이블까지 취향에 맞게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못 진지하게 독서 중인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이상하게도 뭔가 정리되지 않은 듯한 구조인데도 의자에 앉으면 묘하게 책에 집중하게 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이곳을 알고 즐길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질감이 느껴졌다.
커피(330엔)과 스콘(2개 300엔)을 주문했다. 아메리카노는 신선했고 핸드메이드 스콘은 바삭했다. 큰 유리볼에 담긴 스콘들 중 바구니에 원하는 걸 담아서 카운터에 주면 저렇게 잼, 크림과 함께 따뜻하게 구워준다. 호두 스콘이 너무 맛있었는데, 호두를 캬라멜라이즈해서 스콘에 넣어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3일째 되는 날이어서 무지 피곤했는데 커피랑 스콘 앞에서는 모든 피로가 스르르 날아가버렸다. 이제야 여행의 긴장감을 어깨에서 내려놓을 수 있게 됬는데, 내일이면 또 서울로 떠나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잠시 울적해지기도 했지만.
추위와 배고픔이 좀 가시고 나니 오늘 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나하나 들춰본다. 왼쪽의 파란 책은 동생이 구입한 원서인데, 무슨 일본 작가가 쓴 작은 에세이집이란다. 페이퍼백을 사면 저렇게 파란 포장지로 겉을 싸서 준다. 오른쪽의 SPOON이라는 잡지는 자카 느낌의 패션잡지. 소박하고 전원적인 컬러감이 좋아서 함께 구입했다. 뭔가 많이 사고 싶었지만 결국 구입한 건 달랑 두권. 하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된 느낌. :) 그렇게 오사카에서의 오후 한 때가 책방 지하의 카페에서 기분좋게 흘러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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