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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자유 여행이라도 시작은 모든 여행자와 별다를 수 없음을, 뮤니 패스(MUNI PASS)는 내게 알려준다.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서둘러 향한 곳은 여행의 기본인 '관광안내소'. 샌프란에 7일 이상 머무른다면 시내의 모든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MUNI PASS 7일권 구입이 필수다. 자, 이제 내 발을 대신해 줄 패스도 샀으니 가장 먼저 할 일은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케이블카'를 타고 피셔맨즈 워프로 향하는 것이다.
'사람'을 태우기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케이블카
패스를 구입해 관광안내소를 나서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진 줄을 만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오매불망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얼른 뒷꽁무니를 찾아 이 경건한 대열에 합류해 본다. 언제 내 차례가 오나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으니 삼각대를 들고 있던 내 앞의 할아버지가 "조금만 기다려요. 줄은 금방 줄어든다구" 하며 나를 안심시키신다.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는 동안 이 케이블카를 왕복 3번쯤 탄 것 같다. 요거 한번 타는데 무려 13불이니, 26불짜리 뮤니패스 값은 케이블카 만으로도 본전을 뽑은 셈이다. 하지만 내가 얻은 추억은 언덕배기를 오르내리는 이 불편하고 덜컹거리는 구식 케이블카 몇 번 타본 게 전부가 아니다.
시내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한 흑인 아저씨는 야외석에 앉은 내 앞에 대롱대롱 "매달려" 타고는 쉴새없이 질문을 퍼붓는다. "한국에서 왔다구? 난 한국영사관에서 미국비자 심사관으로 일을 했었다네. 반가워!!" 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한국어의 정확한 발음을 물어보신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울 엄마에게도 재미있는 대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옆에 '매달려' 탄 독일 커플과도 이 아저씨 덕분에 안면을 튼다. 좀 있으니 남미 출신의 일행분도 내게 한국말로 인사를 하신다. 케이블카를 탔다는 이유 만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은 친구가 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바다 향기를 담은 따뜻한 맛, 보딘의 클램차우더 스프를 맛보다
하얗게 늘어선 돛, 상쾌한 바닷바람, 수없이 날아드는 기러기들....엄마는 피셔맨즈 워프의 멋진 바다 풍경이 맘에 쏙 드시는지 비행의 피곤함도 잊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하지만 내 맘은 벌써 단 하나의 TO-DO로 가득차 있다. 바닷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보딘의 클램차우더 스프를 먹는 것이다.
스프를 주문해 포크와 티슈 등을 셀프로 쟁반에 담아 밖으로 나와보니 엄마는 벽난로 앞 명당에 자리를 잡아놓았다. 이 스프의 맛을 본 사람이라면 동감할게다. 피셔맨즈 워프의 바닷바람 + 보딘에서 매일 구워내는 명물 사워도우(Sour Dough) 빵 + 아낌없는 건더기가 그득한 클램차우더...꼭 이 조합이 만나야만 이 맛이 난다는 걸 말이다. 엄마는 빵 껍질이 딱딱하다며 투덜거리셨지만, 내겐 '샌프란시스코'의 아이덴디티를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맛이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보딘의 클램차우더는 꼭 여기 와서 먹어봐야 한다. 백화점 지하에 있는 지점...이런건 안된다.
바다 향기를 느끼는 또다른 방법, 피셔맨즈 워프를 걷다
항구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피셔맨즈 워프에서는 실제로 fisherman을 만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배들과 바닷가에 늘어선 이국적인 레스토랑 덕분에 한껏 들뜬 분위기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딱히 볼거리가 있다기 보다는 이 도시의 정체성을 그닥 고민할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랄까? 앞으로 이어질 도시 여행의 여유로운 출발점으로 꽤 괜찮은 선택임을 직감하며, 바닷가를 따라 카메라를 들고 슬슬 걸어본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다시 되돌아왔을 때, 거리에는 신나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는 소녀처럼 들고 있던 필름 카메라로 공연 장면을 찍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엄마의 여행을 방해하지 않기로 한다.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이름 모를 재즈의 향연 속에서, 어쩌면 내겐 몇 번이나 주어졌을 이국에서의 자유를 엄마께 잠깐이나마 선사해드릴 수 있어서, 조금은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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