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6일짜리 LA 여행을 오면서 굳이 숙소나 관광지와 떨어져 있는 슈퍼마켓을 가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여행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아줌마 근성;;이라는 간단한 결론을 내릴 듯 하다. 하지만 내 여행의 반나절을 고이 쏟아 부은 미국의 유기농 마켓 체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는 헐리우드 일대의 어느 곳 보다도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스팟이었다. 그곳에서 뭘 보고 뭘 샀는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후기.
헐리우드 중심가인 하이랜드 역에서 메트로로 한 정거장만 가면 Vine st.역이다. 메트로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모든 역들이 저마다 개성있는 내부 장식과 설계로 지어져 메트로 역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쨌든 Vine .st 역과 이어진 W호텔을 발견했다면 등지고 왼쪽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좌회전. 한 100미터 쯤 걸었을까? 사진으로만 보던 바로 그 빨간 간판, 트레이더 조의 입구가 보인다. 막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인다. 화려한 헐리우드가 아닌, 일상의 헐리우드를 만날 수 있는 한가로운 거리 풍경이다.
깨끗하게 정돈된 넓직한 매장 안에는 평일 낮에도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마트보다는 훨씬 한가하다. 트레이더 조는 주로 냉동 식품이나 식재료 같은, 조리가 필요한 식품들을 많이 팔기 때문에 여행객 보다는 당연히 현지인을 위한 마켓이다. 사실 LA 가기 전에 여행 자료 조사를 하다가 교포들이 여기를 소개해놓은 포스트를 많이 보고 꼭 한번 와보고 싶어 일부러 시간을 냈다.
홀푸드와도 비교되지만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큰 사랑을 받는 트레이더 조에는 과연 명성대로 여기서만 살 수 있는 자체 브랜드 상품들이 대부분이었고, 원산지나 성분 표기를 봐도 꽤 믿을 만한 제품이 많았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면,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카트는 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그득그득 채워졌고..;;
워낙 와인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와인 섹션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첨엔 우아한 척 눈으로 살피다가 나중엔 치마 입은 것도 잊고 주저 앉아서 멜롯(Merlot) 품종 칸에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건다.
"Do you like Merlot?"
빨간 티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가 역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 채 옆에 앉는다.;; 자기는 여기 자주 오는데, 난 처음 보는 거 같다고. 이 근처에 살아서 자주 온단다. 와이너리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의 와인이 발매됐으면 한병 살까 해서 들렀다며, 자기 집에서 종종 친구들과 와인파티를 한다고 했다. 그의 장바구니를 보니 오늘도 파티가 있나보다.
그는 Charles Shaw 2008년산을 자신의 장바구니에서 꺼내어 건네며 말했다. "여기 오면 제일 많이 사는 멜롯이에요. 2달러 밖에 안하지만 맛은 20달러짜리보다 훨씬 낫죠. 한번 마셔봐요. 난 또 가져오면 되니까".
그제서야 통성명을 하며 자기소개를 했지만,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저는 여행객이라 내일이면 여길 떠나요. 아쉽네요"라며 한발짝 물러섰다. 어쩌면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그놈의 못난 방어기제는 하필 이럴때 참 잘도 작동한다. 어쨌든 그는 끝까지 예의 바르게 대화를 끝맺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다시 쇼퍼로 복귀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여기 있는 대부분의 식재료를 사용해본 다음이기 때문에 진짜 공정한 추천 아이템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현지인들도 강력 추천하는 트레이더 조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5천원도 안되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맛이 좋고 용량도 넉넉했다. 사진 앞쪽에 보이는 파스타 생면들도 너무 맛있었다. 다음에 가면 에그 파르펠레만 몇개 더 사올 것 같다. 아무래도 허브가 가미된 면들은 소스 선택에 조금 제한이 있으니. 그리고 맨 뒷줄 오른쪽의 시커먼게 건푸룬(서양자두)인데, 푸룬이나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가 싸고 좋으니 많이많이 살것.
뒷줄에 Joe라고 크게 적힌 원통은 커피 원두인데, 역시 놀라운 가격에 엄청난 양...코스트코 원두보다 훨씬 맛있었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내 동생의 강추 아이템은 중간에 보이는 치약! Myth가 함유되어 개운한 뒷맛이 좋았다. 아직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여기 자체 화장품도 종류는 많지 않지만 하나같이 괜찮은 품질이었다. 특히 spf 15 모이스쳐 로션은 나의 애용품 올레이 로션을 패키지까지 쏙 빼닮았는데, 성능도 비슷하면서 가격은 저렴해 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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