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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게이트 파크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 버스 밖에 비친 중국어 간판들을 보자마자 무심코 내렸다. 차이나타운을 따로 구경하러 올 시간이 없을 거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의 샌프란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는 미국도, 샌프란시스코도 아닌, 그저 그들이 먹고 사는 시끌벅적한 생활의 터전이다. 커다란 몸집의 카메라 대신 아이폰을 꺼내든다. 누가 차이나타운을 관광지라 했던가.
작가 신이현의 "에펠탑 없는 파리 : 프랑스 파리 뒷골목 이야기"라는 책에는 차이나타운의 생성 과정이 무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 중국인이 파리에 와서 갖은 고생 끝에 음식점을 하나 차리면, 그 옆집까지 사버린 뒤에 중국에 있는 일가친척을 불러들이고, 그런 식으로 옆집, 또 옆집....이렇게 점점 자신들의 구역을 넓혀간다. 절대 다른 민족에게는 옆집 가게를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중국인은 그렇게 외국에서 가장 먹고 살기 편한 방법으로, 자기네끼리 모든 것을 소비하고 소화할 수 있는 작은 사회를 건설했다. 그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발견한 곳은, 나의 경우 샌프란시스코였다.
여행을 다니면서 차이나타운은 많이 봐왔다. 지난번 네덜란드에서도, 미국에서 가장 크다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에서도, 심지어 인천과 가리봉동에서도....하지만 규모를 떠나 이처럼 밀도가 높은 차이나타운은 처음이었다. 골목을 가득 채운 중국인들의 시끄러운 중국어와 시장통같은 상점 속에 둘러싸인 나는 잠시간 "카오스"라는 단어만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 뾰족한 빌딩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곳은 완벽한 북경이고 상해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간판에도 영어보다는 한자가 더 크게 써 있다. 관광객이 아닌 미국인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바빠 보였고, 마치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듯 곳곳에 중국을 상징하는 많은 sign을 골목 구석구석에, 벽면에, 건물에 남겨놓았다.
이곳에서 여느 한국 관광객들처럼 맛집을 찾아 만두나 중국 음식을 사먹지는 않았다. 대신 거기서 소리 지르며 호객행위하는 아줌마들과 거리를 무심히 지나가는 중국 아저씨들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소매치기가 있을까봐 두려워하며 가방을 움켜쥐던 나의 어이없는 이중성(!)과도 마주쳤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차이나타운은 샌프란에서도 치안이 안전한 지역에 속했다. 중국인을 '유색 인종'이라 분류하는 미국인을 탓할 자격은 없는 듯 싶다.
시끌시끌한 bgm이 좀 적응될 즈음, 이 도시만의 멋스러운 풍경도 슬슬 눈에 들어온다. 한국인이라면 이쯤 해서 당연히 떠오르는 물음표 하나, "코리안타운은 어디에?". 그 대답은 며칠 후 한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여인에게서 찾게 된다.
버스 노선을 한국어로 알려주는 중년의 여인, 우리 엄마는 한국인을 만나 반가웠는지 무심코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었고, 그녀는 갑자기 표정이 이상한 미소로 변하며 "훗...아, 한국에서 오셨어요? 전 여기 살아요"라며 곧바로 반문을 한다. 30년을 넘게 살았다는 그녀에게 그 질문이 우스울 만 하지만, 내가 읽은 그녀의 심정은 "미국인인 내게 어떻게 그런 질문을!"이었다. 한국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 오래되서 잘 모르겠네요"였다.
'미국인'인 그녀의 표정은 코리안타운의 부재에 대한 많은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인이 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지, 반면 중국인은 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지. 그 두 케이스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국인은 한국이 싫어서 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중국인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같은 민족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지금까지 미국을 오가면서 느꼈던 많은 감정이 교차되는 것을 느낀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야할 시간이다. 작은 '중국'을 벗어나 미국으로 돌아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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