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도시에 숨어있는 가장 모던한 호텔, 언뜻 굉장히 아이러니한 조합처럼 보이는 이 곳은 처음 여행을 준비할 때 테마로 잡았던 '디자인 호텔 투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숙소다. 2009년 네덜란드 건축상을 수상한 Wiel Arets가 60년대 건물을 세련된 부티크 호텔로 탈바꿈시킨 젠덴 디자인 호텔은 미니멀리즘과 호텔의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조우를 잘 보여준다. 마스트리히트에서의 단 하루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마스 강 초입의 한 골목에 자리한 젠덴 호텔은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한 수영센터처럼 보이는 낡은 건물이었다. 역시 사진발이었던 것일까 의아해하며 들어서는 순간, 화이트톤의 세련된 로비 디자인에 할말을 잃었다. 어떻게 그 수백년 전 오래된 골목에 이렇게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간단한 체크인 후 입장한 1인용 객실. 너무도 심플하고 간결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며 곳곳에 숨은 디자인의 미학을 하나둘씩 발견해 본다. 간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자극과 두근거림. 이런 호텔을 만나기 위해 이렇게 먼곳까지 찾아왔구나 하는 뿌듯함이 몰려온다.
객실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 주변 건물도 모두 하얀색이다.
내부가 어두워서 사진에 잘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객실에 존재하는 모든 컬러는 단 세 가지, 화이트와 짙은 퍼플, 그리고 블랙이다. 모노톤만 썼다면 다소 무미건조 했을텐데 침대 매트리스 등에 짙은 보라색을 사용해 포인트를 주었다. 호텔 객실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꼭 필요한 소품만 갖춰놓은 절제된 미니멀리즘은 네덜란드 디자인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정말 특이했던 것은 거울을 TV와 문 등에 사용해 모던한 분위기를 한층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TV인지도 몰랐는데 리모콘을 동작하니 거울 뒤로 나오는 TV 화면이란! 낮에는 거울로, 밤에는 TV로 사용할 수 있달까.;;
객실 번호가 일본어 영문 표기로 쓰여있는 것도 독특하다. 하지만 어설픈 오리엔탈리즘 스멜도...;;;
어메니티는 나의 페이보릿인 록시땅 제품들이어서 일단 합격점! 세면대부터 변기, 샤워부스까지 평범한 디자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일단 화장실은 객실 입구쪽에 있고, 그 반대편 벽 너머에 샤워부스, 그리고 샤워부스 바깥쪽에 세면대가 따로 설치되어 있는 매우 독특한 구조였다. 변기와 세면대는 네모형으로, 또 물이 나오는 샤워기와 수도꼭지도 원통형의 메탈릭한 디자인으로 일관성을 유지했다. 세면대의 거울 모양 역시 TV쪽에 있는 큰 거울과 같은 곡선형의 디자인이다. 객실 전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놀라웠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호텔은 낮과는 또다른 표정으로 나를 맞아준다. 해가 지니 자연스럽게 거울 뒤에 있는 TV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사실 이렇게 훌륭한 디자인을 갖춘 혁신적인 호텔이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간결함에 치중한 나머지 "커피포트"가 없다. ㄷㄷㄷ 내 포트를 안들고 왔으면 라면 하나도 못 끓여먹을 뻔!!
체크아웃을 하며 로비를 찬찬히 구경한다. 이 호텔은 진짜 수영센터도 함께 겸하고 있어 현지인들의 발걸음도 무척 잦은 편이다. 객실에 묵을 경우 수영장 이용은 무료라고 한다. 로비에는 넓은 휴식 공간과 투숙객의 아침식사를 위한 키친이 있다. 객실료에 아침식사는 별도라서 먹지는 않았는데 간단한 부페이니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또한 여느 호텔과 마찬가지로 Free Wi-fi를 이용할 수 있으니 로비에 문의해 비밀번호를 받을 것.
마스트리히트의 돌길은 캐리어를 끌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내 가방 바퀴도 어느새 너덜너덜해져 도저히 역까지 가방을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 이럴때 로비의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자. 7~8유로면 역까지 편안하게 데려다주는 택시가 10여분 뒤 도착한다. 총 객실이 12개밖에 안되는 작은 규모의 호텔이지만 세심한 서비스와 객실 디자인 등을 보면서 정말 제대로된 부티크 호텔을 체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그리던 호텔의 '이상형'을 만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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