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트위터에 돌고 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중국판 리틀 포레스트'라는 수식어를 가진 리즈치(李子柒)라는 여성이 그 주인공이다. 첫 영상은 스촨성의 시골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밭에서 포도를 따서 먹은 후 포도껍질을 모아서 즙을 짜고, 치마를 염색해 입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요리는 기본이고 염색, 가구, 오븐, 고대 중국 여인의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모습을 영상으로 연재하는데, 영상미와 연출이 깜짝 놀랄 만큼 수준급이었다. 나 역시 푹 빠져서, 지난 1년간 그녀가 만든 영상을 뒤늦게나마 하나씩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특히 꽃을 따서 떡이나 과자, 차같은 먹거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티타임을 즐기거나, 꽃잎으로 중국 고대의 여인들이 쓰던 화장품을 재현하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나 전원의 로망을 가진 취향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대리 힐링을 느낄 만한 영상이었다. 단순히 전원 생활의 낭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중국' 특유의 문화적 요소를 모든 영상에 면밀하게 담고 있어서 예사 솜씨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녀의 웨이보 팬이 천만 명도 넘는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중국에는 유튜브가 막혀 있기 때문에, 그녀의 팬이 대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웨이보 영상을 옮기고 있는데 이 채널 역시 개설 1년 만에 70만명 가까운 구독자가 생겼다. 이제 중국을 넘어 전 세계가 리즈치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영상을 처음 볼 때부터 항상 의문이 들었던 것은, 혼자서 촬영을 한다는데 저렇게 많은 각도의 컷은 어떻게 찍을까 하는 것이었다. (유튜브를 한 번이라도 찍어본 사람들은 이 어려움을 안다) 웨이보에 그녀가 밝힌 바로는 촬영부터 편집까지 혼자 해 왔고, 심지어 휴대폰으로도 촬영을 했단다. 그러나 불과 수 개월만에 중국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되자, 다양한 사생활 침해에 시달리게 된다. 드론을 띄우고 산 속까지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집도 이사를 했고, 웨이보에는 자신이 겪는 위기에 대해 언급한다. 최근에는 기획사와 정식 계약을 하고, 촬영감독과 3명의 스태프도 있다고 한다. 확실히 요즘 영상은 CCTV의 왠간한 다큐와도 맞먹을 만한 퀄리티를 보여준다. 하지만 초창기 영상이 지금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큰 인기를 얻는 또다른 이유는,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있지 않은 신비로움과 완벽한 스토리텔링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시골에서 다양한 생존기술을 배웠던 그녀는, 성인이 되어 도시로 떠나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홀로 남아 돌봐줄 가족이 없게 되자,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와 할머니를 보살피며 농사일과 요리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째 많이 들어본 이야기같지 않은가? 일본의 만화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리틀 포레스트>와 매우 흡사한 스토리 구조다. 게다가 무료하고 반복적인 전원일상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시작했다고 하기엔, 첫 영상부터 매우 본격적인 촬영기법을 발휘하고 있다. (영상 하나에 타임랩스부터 온갖 각도의 샷이 다양하게 연출된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 달 즈음부터 슬슬 문명세계로 나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베이징의 '자금성'이 목적지다. 거기서 한 셰프를 만나고, 질 좋은 고추를 고르고, 사천식 고추기름 소스를 만든다. 영상 마지막에는 제품화된 소스가 그대로 노출된다. 리즈치의 팬들은 이를 인플루언서가 의례히 진행하는 PPL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간접광고이나 기업 콜라보가 아니다. 광고는 기업의 비용을 받아서 외부의 제품 홍보를 진행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마케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콘텐츠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유튜브에는 제품 링크가 없었지만, 타오바오에 이름을 검색하니 손쉽게 그녀의 쇼핑몰을 찾을 수 있었다. 쇼핑몰의 이름은 '리즈치 플래그십 스토어'다. 모든 제품의 설명에는 그녀의 웨이보 영상이 함께 노출된다. 요즘 올라오는 영상 마지막에는 모두 이들 제품이 등장한다. 타오바오의 후기를 보면, 그녀의 팬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이 제품들을 지지하는 지 엿볼 수 있다. 제품을 사는 순간부터 '그녀가 되는 착각'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천연 유칼립투스 꿀에 인삼을 담근 건강식품의 경우 리즈치가 산에서 흙 속에 파묻힌 인삼을 캐는 장면이 먼저 영상으로 나왔다. 이 제품을 받아서 맛을 보는 순간, 그 영상 속의 인삼이 내 입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제조 공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나는 처음 그녀의 영상을 접할 때부터, 기획이나 목적 없이는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티몰(타오바오)을 오픈한 게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이 사례를 통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을 주목하게 된다. 

지금까지 일반인 유튜버나 블로거는 그야말로 맨땅에서 시작해서 기업 콜라보나 PPL, 구글 광고 등으로 '광고임을 명시하며' 수익 창출을 해나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탄생해야 할 목적을 가진 '일반인의 탈을 쓴 일반인' 채널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특히나 요새 대기업들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 진행하는 여론 조작 기법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기업이 이러한 마케팅을 악용할 경우, 콘텐츠 시장의 신뢰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물론 리즈치의 정체가 가짜라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마케팅 목적이었든, 인기를 얻어서 사업을 하게 됐든 그녀의 영상이 탁월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나 역시 지금 타오바오 직구법을 검색하는 중이니 말이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마침 영국의 BBC가 '원시 기술' 유튜버의 인기를 기사화한 것 역시, 이 분야가 돈이 되는 주제라는 반증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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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판옵티콘 2018.10.07 05:45 신고

    공감하는 포스트를 간만에 봅니다.
    저도 들었던 부분, 추측하는 부분이 있어 첨족해봅니다.

    중국은 트럼프정부와의 무역전쟁으로, 제2의 아편전쟁을 치뤄야할 운명입니다. 현재 중국은 제조업의 활로가 없다시피하여 그 파장이 중국내수 산업의 목을 죄고있기도하죠.
    그 결과 중국내 마케팅산업은 사양산업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절실한 수준정도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수준의 심각한 경제손실중에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서방에 콧대높던 중국이 국제기구에 미국을 달래줄것을 빌고있는 모습을 들 수 있죠.

    그런 상태에서
    중국의 주석이 모든 국정부처에 중국의 불쌍함을 어필하라하고. 관광부처가 홍보자료를 만들어올린다고 가정해보면
    리즈치 같은 영상이 정말 딱이지 않을까요?

    1. 칼자이스 렌즈 색감.높은 선예도 콘트라스트.(칼자이스 cp 프라임 영상용 렌즈세트 1억원선)

    2. 업로드가 1080 ,50fp면 원본은 아무리작아도 8k.

    3. 조명사용 및 고난도 야간촬영 분량 많음.

    4. 드론 촬영시, 자금성 다 비웠음.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곳을 도대체 무슨 수로?폐장시간이라면 출입은 어떻게?아ㅎ 산골소녀가 뒷돈이라도 주고 몰래 촬영?
    (요즘처럼 돈벌이없는 중국입장에선 주석이나 할 수 있는 행동.)

    5. 혼자서는 불가능한,편집 및 업로드간격.

    6. 소품 색상밸런스, 로케이션, 환경정리 구도가 서양적임.
    (책상위의 화병위치 및 식물 , 가구 색깔등, 준이치 색의비밀 참고)

    7. 저런 중국산골에 인터넷 속도가 제대로나오려면 인공위성으로 내려줘도 어려움.


    20대의 귀향 소녀가, 대규모 방송인프라를 데리고, 인터넷보급여부도 의심스러운 저 산골에서 ?
    딱 봐도 중국 관영방송의 엉성한 기획수준과 호화스런 장비, 다급한 중국의 현실이 아주 잘 믹스된 영상이라 여겨집니다.

    고화질이라서 또는 출연자가 예뻐서, 동양보존적이어서 중국에게 동정표를 건네주지않을까하고 이 영상을 제작했다면, 중국 관광청 홍보부서는 일본AV 영상회사에 몇년정도 워크샵을 다녀오고나서
    방향을 재설정 해야할것같네요.

    요즘 원시콘텐츠를 표방한 '칠 아웃'성격의 영상이 주로 중국, 동남아쪽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의 사기극 때문에 원시콘텐츠 단물도 곧 빠질것같습니다.

    그나마 저는 한국사람이라 의심이라도 해볼 수 있는 빠꼼한 시각을가져다행인것같네요.


    • 제네러 2018.10.21 20:42 신고

      자금성 드론 촬영은..ㅋㅋㅋ
      자금성과 리츠지와 콜라보를 했기때문입니다.

      자금성의 크기는 잘 아실테죠?
      그 크기를 운영하려면 입장료만으로만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입장료도 얼마 안하구요. 중국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니까요.

      자금성에서는 기업 또는 유명인과 콜라보를 하는 식으로 비용을 충당합니다. 콜라보 중 하나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자금성 이자칠 제품들은 열리자마자 거의 다품절되었어요.

    • BlogIcon nonie 2018.11.29 09:30 신고

      제너러// 리즈치의 제품이 인기가 높다거나 자금성 콜라보가 가능한 이유는, 이미 본문에 그 근거가 나와 있습니다.(팔로워만 천만이니까요)
      제 글의 요지는, 말씀하신 ‘자금성 콜라보’가 가능해진 콘텐츠 파워나 콘텐츠 제작의 동기가 순수한 그녀의 상업적 목적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지나가다 2018.12.05 12:49 신고

      맞는 소리 하는것 같아서 읽어보니까 무슨 일본 AV영상회사에 워크샵을 다녀오라는 개소리라고 해주기엔 개한테도 미안한 소리를 하고 있네. 이런데에서 밑천 드러내지 마세요. 그딴 ♬♬♫♪ 가학적 포르노들보단 리즈치의 비디오가 중국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파간다고 해도 백배 천배 더 가치있습니다

  2. 윤쓰 2018.10.07 17:43 신고

    저도 유튜브에서 구독해서 보고 있는데요. 보면서 의심을 품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 나니 의구심이 점점 확신으로 변하는거같아요. 글 잘 보고 갑니다~

  3. 판옵티콘 2018.10.08 00:42 신고

    요즘 포스팅의 늪속에서 노니님의 글은 무가당탄산수같은 느낌입니다. 늘 잘챙겨보고지냅니다.

  4. 제제 2018.11.29 02:33 신고

    https://youtu.be/BHZs1M1iy8o
    이분도 비슷하죠
    제가 지금 완전 시골 촌에서 지내고 있어요
    저사람들 영상 몇개 보니 공감이 전혀 안가네요
    현실에서는 저렇게 절대 못살아요 ㅠㅠ

  5. 태서령부 2018.11.29 08:47 신고

    안녕하세요? 며칠 이 영상에 푹 빠져 있다가 어설픈 질문이 생겨 고민하던 중 속 시원한 글을 올려주셨네요 괜찮으시다면 제 페북에 링크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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