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에는 딱히 관심도 기회도 없던 내가,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는 직업을 갖게 될 줄이야. 기왕 KTX와 국내선 신세를 지는 김에, 출장지의 식당 1~2곳을 틈틈히 들러 끼니를 때웠다. 덕분에 작년 한 해동안, 서울을 벗어나 처음으로 가 본 도시가 제법 늘었다. 그곳의 맛으로 기억하는, 2017년의 순간들.   






대구, 한옥에서 머무는 여행

2017년 한 해동안 전국을 돌며 강의를 했지만, 출장을 여행처럼 즐겼던 일정은 아쉽게도 대구가 유일했다. 조카 모녀가 와서 함께 한옥에 머물렀던, 1박 한옥여행 이야기는 여기에 소개했다. '나지막한 한옥에서, 낯선 하룻밤' 


점심은 약령골목의 모던경양에서 먹었는데, 아기 의자도 잘 챙겨주고 음식도 가격대비 꽤 훌륭했던 기억이다. 이곳의 음식이 눈과 입으로 즐기는 예쁜 경양식이라면, 현지인 분이 추천해준 근처 우정식당에서의 싸고 맛있는 한정식 메뉴도 대만족이었다. 대구여행은 기회가 되면 따로 포스팅으로 정리를 좀 해야. 








식사 후에는 근처 한방차 카페 '근대로의 여행'에서 쌍화차와 떡구이를 후식으로 먹었다. 이후에도 한두번 더 대구에 갔지만, 언제 가도 대구의 약령골목은 너무나 좋았다. 조카딸이 왔을 때는 약령박물관에서 한방 족욕과 립밤 만들기 체험을 했고, 두 번째로 혼자 갔을 때는 부모님께 드릴 조제 쌍화탕 팩을 여러 개 사왔다. 특별히 볼것이 없어도, 한방 향을 맡으면서 거리를 걷는 것 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강의장이 있는 현대백화점 바로 뒤에 있어서 가기도 편하다. 다음에 가면 입욕제로 쓸 만한 한방 재료를 찾아볼 생각이다. 







첫 방문 때는 아쉽게 놓친 미성당 납작만두를, 두번째 출장 때는 맛보기로 했다. 현대백화점 바로 옆에 미성당 분점이 있어서 쉽게 찾았다. 정겨운 스뎅 접시에 가득 담겨나온 납작만두 & 떡볶이 세트. 정작 대구사람들은 안 먹는다지만, 서울에서 온 내겐 새롭게 다가오는 분식 메뉴다. 정초부터 유럽에 오래 있다 왔더니, 뭔가 매콤하고 가벼운 맛을 주로 찾게 된다. 출장지에는 항상 혼자 가다 보니 그럴듯한 식사를 못하고 혼자 먹기 편한 간단한 음식을 찾게 되는 이유도 있다.  








영주, 급하게 맛집 순례

대구에만 있는 줄 알았던 납작만두가 영주에도 있다는 걸 알고, 강의 전에 점심식사로 낙점했다. 영주역 앞 장우동에서 납작만두와 김밥 한 줄을 주문했는데, 이렇게 푸짐하게 나온다. 대구의 납작만두에는 파와 고춧가루가 만두 위에 뿌려져 있다면, 영주는 비빔만두에 가깝다. 야채와 김가루, 양념이 만두와 분리되어 나오는 형태이고, 맛도 대구보다는 더 양념에 기대는 맛이다.  








영주에서 강의를 잘 마치고 택시를 탔다. 영주역이 아닌, 태극당을 부탁했다. 영주에선 상징적인 곳이라 그런지 이름만 대도 바로 찾아가실 정도로 유명한 빵집이다. 예전에 전국 빵집 기사 취재할 때는 못 와본 곳이라 궁금하기도 했고, 카스테라 인절미가 대표 메뉴인 것도 특이하다. 기차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어서, 2층의 멋진 테이블 자리에서 잠시 커피와 함께 휴식을 즐겼다. 









서울~영주 구간은 O-train(중부내륙관광열차)라는 독특한 기차를 타게 됐다. 일반적인 좌석 뿐 아니라 창가를 바라보는 바 형태의 좌석도 있었다. 마침 서울로 돌아오는 차편이 창가 좌석이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왔던 기억이 난다. 태극당에서 한 보따리 빵을 산데 이어, 짱만두에서 만두 쇼핑까지 한 후 기차를 탔다. 집에 가기 직전까지 맛집 테이크아웃에 여념이 없었던.ㅎㅎ 짱만두의 쫄깃한 새우만두와 함께 제법 여행 기분을 내본 영주 출장 끝. 








울산, 돼지국밥

작년 한 해동안 울산, 사천, 창원 등 경남 출장이 유독 많았는데, 폰카 사진은 돼지국밥 한 장만 남았다. 사천에서는 강의 후 곧바로 국내선 타고 귀국;;했고, 창원에서는 상남시장에서 수제 돈까스집을 찾았다. 그래서 울산에서는 향토 음식(?)을 맛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고속버스 터미널 건너편에 국밥집 몇 군데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숙희 돼지국밥에서 7천원짜리 국밥 한 상. 

깔끔한 국물과 푸짐한 건더기, 시원한 깍두기가 만족스러웠다. 사람 하나 없는 애매한 시간에 불쑥 찾았는데도, 꽤 친절하게 대접을 받아서 기억에 남는다. 









부산, 차이나타운

부산의 도서관 몇 곳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기차 시간까지 1~2시간이 남았다. 부산역 근처에서 바로 가볼 만한 곳은 역시 차이나타운이다. TV에 소개되어 더 유명해졌다는 신발원은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아. 사실 만두 때문이라면 옆집 마가만두로 가고 싶었는데, 하필 브레이크 타임이 걸쳐 있어서 하는수 없이 신발원의 대기표를 받아들었다. 서서 한 30분을 기다려 겨우 받은 군만두 포장ㅠ 기다린 만큼의 맛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입에 넣는 순간 쫄깃한 만두피 사이로, 뜨거운 육즙이 터져 나온다. 








사실 만두보다 좋았던 건 신발원의 월병이었다. 국내에서 사먹어 본 월병은 대부분 그저 그랬는데, 이곳의 월병은 필링 맛부터 다르더라. 월병 하나에 3천원이면 너무 비싸지 않나 싶었는데, 먹어보고 가격에 충분히 납득했다. 얼마전 홍콩에서 직접 사온 기화명과의 추석 한정 월병 다음으로 맛있었다. 다음에 가면 만두는 다른 가게에서 여유있게 먹고, 월병만 여러 개 사오고 싶다. 








제천, 청풍호에서의 1박

청풍에서의 오전 9시 강의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강의장인 청풍호텔 숙박을 지원해 주셔서 강의 전날 일찌감치 도착했다. 그런데 오 세상에. 레이크 뷰가 펼쳐지는 객실이라니. 국내 출장에서 호텔 뷰는 기대조차 안했는데 넘나 멋진 것! 








청풍 출장이 두 번 있었는데, 첫 번째 객실만 운좋게 호수 뷰를 받았다. 덕분에 멋진 전망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해외에서도 잘 안찍는 파노라마 샷을 남겨 왔을 정도로, 역시 청풍호의 절경은 명불허전이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뷰를 가진 청풍 레이크호텔에도 단점이 있다. 호텔 내 식당은 영 별로이고, 딱 하나 있는 편의점에선 라면을 포함한 모든 식사류 품목을 팔지 않았다. 하아....이 호텔 주변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식당 매출을 위해 일부러 편의점 품목을 많이 빼놓았더라. 다른 투숙객들도 편의점 왔다가 이럴 수가..하며 깜놀하는 분위기. 








그래서 두번째 출장 때는, 제천역 근처 시장 초입에 위치한 빨간어묵이라는 맛집을 찾았다. 어묵과 튀김, 순대 등을 바리바리 포장해서 청풍으로 들어왔다. 이거라도 없으면 또 호텔 편의점의 맛없는 레토르트 신세를 져야 하므로.; 


얇고 단단한 질감의 어묵에 걸쭉한 국물 소스가 묻은 '빨간 어묵', 여기에 바삭한 튀김의 조합도 굿이었고, 의외로 순대가 참 맛있었다. 여기에 맥주 한 캔 곁들이며, 느긋하게 강의안을 준비했던 어느 날의 저녁. 








다음 날 강의를 잘 마치고, 제천터미널 근처의 오래된 떡집 덩실분식을 찾았다. 부모님께 드릴 옛날 스타일의 도나스와 찹쌀떡을 잔뜩 사들고 두 손 무겁게 서울로 컴백. 아기손바닥만큼 큼직한 찹쌀떡, 갓 튀긴 도나스 맛은 둘 다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어른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맛이다. 








수원, 중국여행

하반기에는 수원 지역에서 강의가 많았다. 수원역 맞은 편에 마라탕을 맛있게 하는 중국집이 있다고 해서, 시청 근처에서 수업을 마치고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라메이즈 마라탕 집은 얼핏 겉에서 보면 여기가 중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중화풍 느낌이 물씬 났다. 들어가 보니 직원들도 중국인이었고, 메뉴도 한자로 되어 있다. 

당연히 가장 유명한 마라탕을 주문했는데, 나의 실수였다. 매운 걸 별로 안좋아 하기도 하고, 왠만큼 먹어보려 해도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매웠다. 결국 건더기만 절반 정도 건져먹고 일어나야 했다. 다음에 갈 일이 있다면 맵지 않은 메뉴인 우육면을 한번 더 먹어보고 싶다. 가게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괜찮았다. 이 동네에도 재미난 다문화 맛집들이 많다. 








천안, 호두과자의 고장

천안이나 대전, 세종 지역도 강의로 종종 가게 된다. 이 날은 천안역에서 기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근처 중앙시장의 마늘떡볶이 집을 찾았다. 지금까지 먹어본 전국의 이런저런 떡볶이 중에 단연 유니크한 맛. 국물에서 마늘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맵지않은 달콤함과 쫄깃한 밀떡이 맘에 들었다. 튀김과 섞어서 3천원어치 한 접시를 순식간에 비웠다. 순대도 포장해 와서 나중에 먹었는데 잡내 없이 꽤 맛있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호두과자의 원조는 어디인지 재빨리 검색을 해본다. 학화 할머니집에서 갓 구운 과자 한 상자, 바로 옆 국산 팥을 쓴다는 천안당에서 한 상자를 공평하게 구입.ㅎㅎ 학화 호두과자는 흰 앙금이고 천안당은 팥앙금이라, 비교하며 먹는 재미가 있다. 다음엔 튀김소보루 호두과자에 도전해 보기로. 



솔직히 국내 여행을 선호하지 않고 포스팅을 따로 한 적도 거의 없는데, 지난 한 해동안 국내 여행의 매력에 조금씩 눈을 떴던 것 같다. 대부분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해서 다녔고, 맛집은 그때그때 검색해서 찾았다. 하지만 네이버 블로그의 맛집 후기는 제목만 봐도 '작업'의 티가 나는 대가성 포스팅이 대부분이어서, 트위터 등 SNS채널에서 나만의 요령으로 정보를 찾아내곤 했다. 작년에 주로 다녀온 경상 지역도 참 좋았지만, 올 해에는 맛집 많은 전라와 제주 지역에 출장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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