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 X Finland - 헬싱키 카페 투어 1. La Torrefazione
핀란드 일정이 잡혔을 때, 가장 기대했던 건 북유럽의 커피였다. 하루에 대여섯 잔은 기본이라는 핀란드 인들의 커피 사랑이야 익히 유명하기도 하고, 그만큼 카페 문화가 발달했을 거라는 기대도 컸다. 막상 헬싱키에 와서야 알게 된 건, 생각보다 '북유럽다운' 수준높은 로컬 로스터리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몇 곳의 카페에서 마신 커피, 그 첫번째 이야기.
시내 한복판에 숨은 로스터리 카페
작년 여름 헬싱키에 다녀온 동생은 내게 말했다. '커피는 기대하지 마.' 커피 마니아인 내겐 다소 김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의 커피가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을 넘어선 지도 꽤 되어서인지, 커피 하나를 위해 카페를 찾아다니는 나의 여행 패턴을 충족시키려면 더 많은 현지 정보가 필요했다.
핀란드의 커피 문화는 매우 '공격적'이다. 하루에 대여섯 잔은 기본이고, 평일엔 8잔을 마시는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많은 커피를 마시다 보니, 커피를 한번에 많이 내려 메이커에 두고두고 마시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가 졸아들고 쓴 맛도 증가하게 되는데, 한국에 널리 알려진 헬싱키 유명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 커피가 바로 '오래 끓인, 혹은 오래 데운' 쓰고 진한 커피다. 당연히 맛이 없다. 그래서 반드시 즉석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로스터리 형태의 카페를 찾아야 했다. 그중 하나가 이곳 La Torrefazione였다.
유럽의 여느 숍들이 그렇듯, 간판이 작아서 시내 한 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막상 찾은 카페는 생각보다 큰 2층 건물에 아늑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넓지는 않지만 ㄷ자 구조의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해서 아기자기하게 테이블을 꾸며 놓았다. 유명한 로스터리 답게 좌석은 대낮에도 꽉 차 있다.
카운터 옆에 배치된 라마르조코의 커피 머신을 보니, 어느 정도 수준급의 커피를 내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도 맛보고 싶었지만, 로스터리인 만큼 원두 맛부터 보고 싶어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두 명의 바리스타는 매우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친절하게 주문을 받는다. 핀란드 말을 건네다가도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면 곧바로 유창한 영어를 건네는 건, 헬싱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잠시 후 테이블에는 타이머가 달린 프렌치 프레스와 빈 잔이 도착했다. 4유로 남짓 낸 것 같은데 넉넉한 커피 인심도 마음에 들고, 마셔보니 산뜻하고 가벼운 라이트 로스팅이라 훌훌 넘어간다. 큼지막한 잔으로 두어 잔을 양껏 마셨다.
한참을 카운터 옆 창가 자리에 앉아, 거리에 해가 내려앉는 늦은 오후의 시간을 천천히 즐겼다. 이제 헬싱키에서 온전히 혼자 여행을 즐길 날이 3일도 남지 않았고, 아직도 가봐야 할 곳들이 참 많다. 2017년 한 해를 헬싱키의 한 로스터리 카페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는 게,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감사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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