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이라는 테마로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보니, 언제나 관광지가 아닌 호텔이 있는 지역으로 모든 여정을 짜게 된다. 그런 여행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곳으로 나를 이끈다. 이번에도 오볼로 사우스사이드를 첫 호텔로 선택한 덕분에,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홍콩을 여행할 수 있었다. 호텔이 있는 웡척항을 중심으로 쇼핑의 메카인 애버딘을 오가는, 느긋한 홍콩 남부여행 이야기.
일상의 시간이 흐르는, 웡척항에서
오전에 홍콩행 비행기를 타면, 정오가 지나 첵랍콕 공항에 도착한다. 이번엔 고속철도를 타고 센트럴에 내려, 중앙 버스정류장에서 웡척항행 버스를 탔다.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타는 것보다 당연히 시간은 더 걸리지만, 여행 첫날부터 낯선 대중교통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는 나만의 방법이다.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점심시간은 훌쩍 넘긴 늦은 오후, 슬슬 배가 고파온다. 고속철도를 탈 때만 해도 오랜만에 홍콩에 온 설렘으로 가득했는데, 관광지가 아닌 한적한 남부로 내려오니 여행자 모드는 금새 해제된 기분. 슬리퍼 끌고 슬슬 동네나 돌아보며 점심거리나 건져올 요량으로 호텔을 나섰다. 하지만 이 일대는 현재 모두 지하철 라인 개발 중이라, 소음과 먼지가 심한 황량하기 그지 없는 공사판 뿐이다.
그때, 공사판 너머로 허름한 실내시장 건물이 눈에 띈다. 이제 아시아의 실내시장 형태에 많이 익숙해져서, 들어가면 뭔가 있겠지 싶은 직감이 역시나 적중. 듬성듬성 문을 연 작은 식당은 죄다 현지인으로 붐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을 건 이미 예상했기에, 손짓으로 로컬식 라면 세트를 포장 주문했다. 근데, 내가 왜 국물있는 면을 포장으로 시켰을까. 가다가 불어터지면 못 먹을텐데. 별 걱정을 다하며 종종걸음으로 호텔로 컴백.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오면서 적잖이 흔들렸는데도 탱글하게 살아있는 계란노른자, 구수한 닭육수에 꼬들꼬들한 면발, 진하게 우려낸 밀크티까지! 차찬탱 스타일의 홍콩 라면과 밀크티의 조합은 내가 딱 원했던 홍콩 그대로의 맛이다. 새삼 홍콩의 포장음식 문화를 너무 가볍게 봤구나 싶은. 에어컨이 없는 실내시장에서 먹기는 힘드니, 이렇게 포장해 와서 호텔 미니바에 갖춰진 무료 음료들과 같이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점심 겸 저녁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이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지는 시간. 호텔이 어딘지 궁금하다면, 상세 페이지로 바로 가기(클릭)
Happy hour @ Lo Lounge
해가 서서히 질 즈음, 호텔 로비와 이어진 로 라운지로 향했다. 투숙객에겐 5~7시 사이에 알코올 음료와 간단한 스낵이 무료인데, 맥주의 경우 매일 종류가 바뀌는 듯 했다. 오늘의 맥주를 달라고 했더니 마카오에서 흔하게 파는 포르투갈 맥주인 '수퍼 복'을 한 병 내준다. 샐러리와 오이 당근, 후무스의 건강한 조합이 준비되어 있어서 딱 내 맘에 드는 스낵바 구성이다. 야채들과 담백한 나초 몇 개 곁들여 훌쩍 한 병을 때리고, 한참을 앉아 해 지는 걸 구경하다가 객실로 복귀.
객실의 티비에는 애플TV가 설치되어 있는데, 아이폰 유저로서 안 틀어볼 수가 없다. 홍콩 오면 항상 보는 음악 채널은 잠시 미뤄두고, 내 유튜브 즐겨찾기부터 하나씩. 요즘은 집에서도 새로 산 TV에 크롬캐스트 연결해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유튜브만 연결되는 크롬캐스트와 달리 애플 TV는 아이폰에서 재생되는 모든 영상이 페어링된다. 덕분에 홍콩에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요즘 푹 빠져있는 음악들과 함께 일상의 리듬 되찾기.
Breakfast @ Ovolo Southside
예전에 오볼로 웨스트 퀄룬에서 '호스텔' 수준의 기본 조식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우스사이드도 조식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근데 같은 브랜치인데도 이곳 사우스사이드의 조식은 규모가 크다. 맛있는 토핑이 두루 갖춰진 특급호텔 수준의 콩지(죽) 섹션부터 다양한 채소와 햄 치즈가 갖춰진 샐러드 바 까지, 심플하지만 구룡 지점보다는 훨씬 나은 구성이다.
매일 아침, 죽 한 그릇과 빵 한 접시.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있는 아침식사가 된다. 특히 이때부터 시작된 나의 콩지 중독은, 한 달 내내 4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매일 이어졌다. 아침의 따끈하고 든든한 죽 한 그릇 덕에, 그 흔한 컵라면 한 번을 안 먹고도 한달 내내 한국 음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홍콩 남부의 쇼핑 중심, 애버딘으로
센트럴과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등 홍콩을 대표하는 시내 중심에도 많은 쇼핑몰이 있다. 하지만 이들 쇼핑몰에선 아이쇼핑에 그치기가 쉬운데, 대부분 소매점이라 득템거리가 없고 세일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홍콩 쇼핑 하면 아울렛, 특히 호라이즌 플라자를 첫 손에 꼽는데 문제는 '위치'다. 시내에 머물면서 호라이즌 플라자와 프라다 아울렛이 위치한 애버딘을 가려면 따로 30~40분 꼬박 택시나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홍콩 남부에서 시작한 여행에 어떤 메리트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웡척항에서 고가다리만 건너면 이어지는 애버딘이 떠올랐다. 물론 호라이즌 플라자는 애버딘에서도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더 깊숙히 들어가야 하지만, 수변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탁 트인 남부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버스를 갈아타기 전에 잠시 산책로를 걸으며 소중한 여유를 누렸다.
반나절은 아예 호라이즌 플라자를 둘러보려고 빼두었다. 어릴 때 멋모르고 와서 레인 크로포드만 겨우 둘러보고 갔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1층부터 꼭대기까지 꼼꼼하게 쇼핑하는 나름 여유가 생겼다. 1층 로비에 층별 브랜드가 안내되어 있어서 원하는 브랜드만 딱딱 집어서 돌아보니 2~3시간이면 충분했다. 캐스 키드슨에서 조카 딸래미의 예쁜 여름 티셔츠 하나를 99HK$에 사고, 생각지도 않은 리플레이 매장에서 15만원짜리 이태리 메이드 데님 티셔츠를 만원 조금 넘는 돈에 겟. 뭐 이런게 아울렛 쇼핑의 재미지.
마침 옷도 없는데 잘됐다 싶어서 티셔츠는 바로 입고 다녔다. 사실 사우스사이드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하루는 완차이를 여행했는데, 특히 커피에 집중해서 돌아본 완차이 커피 투어는 다음 편에 소개하기로.:)
관련 여행기 더 보기!
2016/05/27 - 홍콩을 새롭게 여행하는 법 @ Ovolo Southside
2014/12/30 - 홍콩 현지인 동네에 숨겨진 보석같은 부티크 호텔, 오볼로 웨스트 퀄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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