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중은 대만 현지인도 맛집투어를 위해 찾을 정도로 손꼽히는 식도락 천국이다. 특히 수많은 야시장의 먹거리 유행을 선도한다는 펑지아 야시장은 대만 스트리트 푸드의 하이라이트다. 대만을 3번이나 오면서 제대로 맛보지 못했던 대만 길거리 음식, 보이는 대로 입으로 밀어 넣으며 뿌듯해 했다. 그리곤 타이중을 떠나는 날, 기차표를 산 뒤 역 근처에 있는 타이중 최고의 고급진 과자점에서 펑리수를 얹은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내 방식대로 타이중과 작별을 고한다. "여긴 무조건, 다시 와야 해"란 혼잣말이 절로 내뱉어지던, 마지막 달콤함과 함께.
타이중을 제대로 '맛보는' 식신로드, 펑지아 야시장
타이중 일정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펑지아 야시장은 갈까말까 살짝 고민도 했다. 왜냐하면 펑지아 야시장은 내가 머무는 호텔이나 타이중역에서 버스로 40여 분을 가야 하니 작은 도시인 타이중에서는 상당한 거리다. 근교 여행을 싫어하는 내가 펑지아에 꼭 가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딱 하나다. "다른 야시장과는 다르다"
펑지아 야시장은 대만 전역에 흩어진 크고 작은 야시장의 유행을 선도하는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즉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음식들이 젊은이들의 패기로 탄생하고 인기를 얻어 대만 전역에 퍼지는, 창의력과 실험정신이 폭발하는 야시장이다. 대만의 전통적인 길거리 음식이 아닌, 펑지아 만의 독특한 메뉴를 맛보고 싶어서 큰 맘 먹고 출발했다. 펑지아 대학교 근처에 내리니 어마어마한 토요일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인파에 휩쓸려 앞으로 가는 느낌ㅋㅋㅋ 힘겹게 맛본 메뉴는 오징어에 속을 넣어 튀겨낸 대만식 오징어 순대? 번호표까지 받아가며 주문해야 할 만큼 인기메뉴다.
이런저런 오징어 관련 메뉴가 많았는데 이걸 고른건 순전히 먼저 먹고 있는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던 우월한 비주얼 덕이다. 통통한 통오징어 튀김 속에 부드러운 찹쌀과 야채 등이 속을 메우고 있다. 위에 올리는 소스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데 김맛, 와사비맛 등 엄청 다양했다. 나는 제일 무난해 보이는 허니머스터드를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고 식감도 좋았다.
오징어 순대집이 있는 섹션은 가장 붐비는 시장 초입이라 주로 뜨내기 관광객이 많은 반면, 시장 맨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인파는 줄어드는 대신 특정 가게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선다. 한마디로 뭘 좀 알고 일부러 찾는 로컬의 줄이다. 본능적으로 시장 맨 안쪽 가장 긴 줄에 일단 섰다. 메뉴의 정체는 튀김이라는 것 빼고는 뭔지 모르겠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웃통도 벗은 채 잔근육을 뽐내시며 장인정신으로 반죽을 썰고 튀기는데 그 아우라가 대단했다. 일단 줄을 서니 한참 후 내 차례가 왔다. 메뉴는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찹쌀과 고구마(타로일 수도)로 쫄깃한 반죽을 만들어 튀겨내는 볼이고, 하나는 맛탕이었다. 둘다 수제로 만들어지는 거라 맛있어 보여서 작은 걸로 각각 하나씩 시켰다.
대만의 자랑. 파인애플 주스를 하나 주문해 튀김&맛탕과 곁들였다. 아. 이런 걸 꿀맛이라고 하는구나. 성공.
얼마나 반죽을 치댔는지 튀김볼은 쫄깃했고, 맛탕은 투명하리만큼 잘 졸여져 부드럽게 녹는다. 줄서서 맛보는 보람이 있는 훌륭한 맛이었다. 걸으면서 먹는 것도 힘들어서 사진은 못 찍음...
오징어에 주스, 튀김에 맛탕까지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빵빵해져서 걷기도 불편해질 지경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는데 펑지아 야시장의 하이라이트, 일명 소세지 속의 소세지 '따챵바오샹창'(大腸包小腸)을 먹어보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바로 가게를 찾아 줄부터 섰다. 문제는 주문을 할 때였는데, 젊은 친구들인데도 전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눈치로 겨우 주문했다. 메뉴는 이거 하나 뿐이라 단순할 줄 알았는데 그 위에 올리는 토핑을 직접 골라야 한다. 대충 보니까 양배추 절임과 피클, 머스터드 소스 등과 구운 마늘다짐을 듬뿍 얹어주는데 다행히 '갈릭?'은 물어봐줘서 예스! 에브리띵!을 두 세번 외치며 겨우 주문했다. 이 집에 줄선 외국인은 나 밖에 없는 분위기;;
따챵바오샹창은 찹쌀로 만든 희고 쫀득한 소세지가 붉고 맛이 진한 소세지를 감싸고 있는데, 생전 처음 맛보는 조합이라 일단 너무 신기했다. 아무래도 간이 센 편이라 시원한 음료수는 필수다. 너무 배부른데 이것도 양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성심성의껏 먹었다. 이렇게 펑지아를 섭렵하고 다시 버스를 잡아타고 호텔로 귀가.
사람의 물결에 맥없이 휩쓸려 다닐 정도로 엄청났던 아비규환 속에서도, 여자의 쇼핑본능은 절대 중단되는 법이 없다. 시장으로 접어드는 대로변을 따라 저렴한 옷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envy라는 가게에서 맘에 드는 원피스를 많이 팔고 있었다. 아직도 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가 남았는데 짐 줄인다고 옷은 거의 안들고 와서 편하게 입을 옷이 필요했던 차. 발목까지 오는 롱원피스 두 벌을 2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득템했다. 깎아달란 말 안해도 알아서 깎아주시는 언니 센스 굿! 이 두 벌을 그 때 사지 않았더라면 남은 여행은 매우 심난했을 게다. 호텔, 레스토랑, 스카이바, 심지어 잠옷으로도 참 잘 입었다. 한번 빨고 나니 몇 군데 터지긴 했지만ㅋㅋㅋ 다음 여행에도 야무지게 챙겨갈 거임...롱원피스가 동남아 여행의 필수품이란 걸 이번 여행에서 알아낸 nonie....
기품이 흐르는 스위츠의 성지, 미야하라(궁원안과)
타이중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가이드북과 리뷰를 접한 맛집은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미야하라다. 타이중을 대표하는 역사와 전통의 과자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타이베이에도 펑리수나 고급 과자 전문점이 많지만 미야하라의 포스는 남달랐다. 옛 안과 건물로 쓰였던 목조 건물은 높은 천장에 빈티지한 서적이 빼곡히 채워져 있고, 가구 하나 기둥 하나 조차도 오랫동안 광을 내 닦은 부잣집처럼 우아한 기품이 흘렀다.
내가 더욱 놀란 건 미야하라의 고급진 인테리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장 내부에는 대만의 빈티지한 이미지를 그래픽화한 다양한 패키지를 전시하고 있는데, 같은 과자라도 어떻게 포장하는 지에 따라 전혀 다른 상품으로 탄생한다. 미야하라가 판매하는 것이 단순히 펑리수와 고급 과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재창조한 문화 컨텐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엽서를 직접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과자점이 전 세계에 얼마나 될까. 오리지널리티가 가진 큰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왠만한 박물관 기념품숍을 방불케 하는 미야하라 본점을 자세히 둘러봤으니, 이제 아이스크림을 주문할 차례다. 미야하라 본점은 2층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3개 섹션으로 분류되는데 메인 매장은 펑리수 등의 선물용품을 판매하고, 티하우스에서는 파인애플 홍차 등 자체 티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아이스크림 매장에서는 수십 가지의 독창적인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대로 조합해 주문할 수 있다. 한국도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대라지만 내가 경험한 왠만한 국내 점포들은 미야하라에 명함 내밀려면 멀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만 해도 카카오 함유량에 따라 종류가 나누어 질 정도다. 아이스크림을 싱글이나 더블 등 선택->와플콘 유무 선택->위에 올릴 토핑까지 선택하면 주문이 비로소 끝난다.
나는 머릿 속으로 테마를 결정했다. 대만의 자랑, 파인애플!!!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와플콘에 얹은 뒤 펑리수 하나를 토핑해달라고 주문했다. 깨끗하고 순수한 파인애플 본연의 맛, 쫄깃하게 씹히는 펑리수, 바삭바삭하고 담백한 와플의 조화. 대만에서 맛본 가장 훌륭한 디저트였다. 새삼 깨달은 건, 대만에서 망고만큼 열심히 찾아 먹어줘야 할 과일은 바로 파인애플이다. 파인애플 자체가 너무 맛있어서, 뭐든 실패가 없다. 펑리수의 탄생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게지.
nonie의 2015년 5월 타이중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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