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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Japan

하룻밤 200만원짜리 호텔방에서 자다? 오키나와에서의 비하인드 스토리

by nonie 2009.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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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언젠가 일본에 가면 이 곡을 피아노로 칠 일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일본에 너무나 잘 알려진 겨울연가 주제가, 다른 곡보다 쉽게 어필할 수 있고 현지인들과 친목을 다지거나 하는 등 어쨌든 쓸모가 있겠지 싶었다. 악보도 없이 대충 주워들은 멜로디를 녹음해 놓은 적도 있다.(링크된 곡) 그런데 진짜로 일본에서, 그것도 멋진 그랜드 피아노로 여러 사람 앞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게다가 그 덕분일까, 16만엔짜리 스위트룸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nonie가 여행기자라는 타이틀로 떠난 마지막 출장, 그림같은 섬 오키나와에서 시작된다.



르와지르 호텔 스카이 라운지의 그랜드 피아노.

 


겨울연가 주제가 play by nonie



 
유명 호텔 체인인 솔라레 그룹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던 오키나와 출장, 르와지르 호텔의 인스펙션(취재)을 위해 스카이 라운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기자 팀들 모두가 라운지 내부 구경하느라 정신 없던 그 순간, nonie의 시선은 오직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그곳에 놓인 검고 웅장한, 그랜드 피아노였다. '딱 한번만 쳐보면 안될까?' 하지만 일행 중 가장 막내인 나, 괜히 일 제대로 안한다고 선배님들한테 혼날까봐 사실 고민했다. 한 1초 쯤.

순간 나도 모르게 피아노에 손이 놓여 있었고, 곧 익숙한 선율이 라운지 전체에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는 걸 느꼈지만, 이미 늦었다. 에라 모르겠다. 짤막한 순간이 흐르고, 박수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내게로 다가왔다. 솔라레 그룹의 메리어트 담당 총지배인 A였다. 딱 보기에도 최고 경영자의 포스를 풍기는 젊은 부호인 그는 미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오래 일을 해서인지 일어도 잘하고 일본인 약혼녀도 있단다. "이 곡의 제목이 뭐죠?"라고 묻길래,  "후.유.노.소.나.타(겨울 연가)"라고 또박또박 말해 줬다. 그런데 이 사람, 피아노 치는 여자 첨 보는 것도 아닐텐데, 급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더니 급기야 그날 저녁 식사 후 다시 일행을 라운지로 데려와서 내게 연주를 종용하기도 했다. 내가 그를 인터뷰해도 기사거리가 없을 판에 시종일관 그의 집요한 인터뷰를 당했음은 물론이고.




오키나와 메리어트 호텔의 아름다운 풀장.



메리어트 호텔로 이동한 다음 날, A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제안했다. 우리 일행만을 대상으로 메리어트 관련 O.X퀴즈를 내서, 최종 승자에게 메리어트의 최고급 스위트룸인 '퀸 스위트' 1박을 주겠다는 것!! 커다란 방만 두 개에 침대는 거의 3인용 패밀리 사이즈...거실은 거의 라운지 수준으로 넓었다. 물론 전망 좋은 창가에 설치된 럭셔리한 월풀욕조도 지금까지 봐왔던 전세계 수많은 리조트들과 급이 달랐다. 1박에 무려 16만엔. 지금 환율로 따지면 2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 룸은 일반인에게는 빈 방이 있어도 쉽게 내주지 않는다. 귀빈들이 오키나와에 방문했을 때 주로 묵는다는 몇 안되는 최고급 객실이다. 3일 내내 오키나와 남~북부를 종횡무진한데다, 저녁 내내 풀장에서 수영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우리 일행에게는 꿈만 같은 기회였다. 오전에 취재하면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던 그 스위트룸에서 실제로 잘 수 있다니! 정말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구준표 집도 그 순간만큼은 부럽지 않은거다.




일행 전부가 급 기운이 쌩쌩해져서;; 수영복도 갈아입지 않은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퀴즈 게임에 돌입했다. 오키나와 메리어트의 브랜치 치프와 주요 스태프들이 모두 자리한 가운데 나름 버라이어티하게 진행된 O.X퀴즈. 질문에 따라 O 혹은 X 쪽으로 우루루 이동하는 게임은 은근 박진감이 넘친다. 오전에 만난 스위트룸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했는지;; 다들 양보할 수 없다는 기세다. 


하지만 O.X퀴즈의 특성상 결국 최종 인원은 두 명으로 좁혀졌다. 그런데 그 두 명 중에 내가 남았다는 사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줄을 잘 선건데... 하늘같은 선배 기자님과 달랑 둘이 남았는데, 막내인 내가 걍 양보해야지 뭐. ㅠ.ㅠ 그때 A가 드디어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자, 이제 우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메리어트 오키나와의 총지배인 B님이 앞에 계신데요. 이분이 잘생겼다고 생각하시면 O, 아니면 X로 가주세요!"   

이분이 잘생겼다고 생각하시면 O, 아니면 X로 가주세요!
이분이 잘생겼다고 생각하시면 O, 아니면 X로 가주세요!
이분이 잘생겼다고 생각하시면 O, 아니면 X로 가주세요!





양심을 팔아서 스위트룸에 묵을 것이냐, 아니면 그냥 내 눈과 양심에 솔직해질 것이냐? B씨는 마치 우리 동네 중국집 뚱뚱보 아저씨처럼 생겼다구. 흑흑. 근데 갑자기 선배가 X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더니 "에이~말도 안돼! 그냥 안하고 말지! 대신 nonie야~! 오늘 밤 회식은 니 방에서 하는거다? 오케이?" 

그 바람에 난 졸지에 스위트룸의 주인공이 됐다. 그룹 총 책임자 A,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객실 키를 선사했다. 마치 "처음부터 니가 이길 줄 알았어" 라는 느끼한 표정과 함께....겁도 없이 피아노를 건드렸던 당돌한 막내 캐릭터에게, 용기가 가상했다는 칭찬의 표시로 주는 선물일까? 어제부터 내게 입바른 칭찬만 퍼붓던 그였기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오키나와 메리어트 퀸스위트의 거실. 너무 넓어서 한 샷에 다 안나온다.




객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양심을 팔았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 인생 최고의 호텔에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신혼여행을 간다 한들 여기보다 좋은 방에 묵을 수 있을까? 어디 앉아야 할지, 뭘 해야 할지...계속 두리번 두리번, 안절부절하고 있는 사이, 어김없이 일행들이 우루루 몰려와 벨을 누른다. 휴, 차라리 다행이다. 이렇게 넓은 룸에 혼자 있는 것도 정말 못할 짓이군. 온갖 술과 먹거리를 잔뜩 사온 선배들과 함께,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3박 4일의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그새 많이 친해지고, 그만큼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nonie야, 아무래도 A씨가 너한테 일부러 이 방 준거 같지 않냐? 오늘 밤에 여기 놀러온다던데, 좋겠다 너ㅋㅋ"하며 농담을 건네는 선배들, 아까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괜시리 머쓱해진다. (한국쪽 그룹 담당자님은 A가 혹시라도 놀러올까봐 술도 제대로 못 달리고 각 잡고 계셨다는;;)

   

  

그래도 기사는 써야지 싶어서 비틀거리면서 찍었던 ㅋㅋ 욕조 사진.




   
새벽 3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는 바람에, 난 그 럭셔리 룸에서 겨우 3시간 눈을 붙였을 뿐이다. 또 다른 침실 한 곳은 아예 들어가보지도 못했다는-_- 화려한 전망을 감상할 정신도 없이, 숙취라도 해소하기 위해 잠시나마 월풀욕조에 몸을 담근다. 아,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오키나와에서의 추억은 너무나 각별했다. 여행기자 신분으로 떠났던 마지막 출장이고, 귀국 이틀 뒤엔 다른 직장에서 또 다른 삶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활짝 열고 여행하듯 즐길 수 있었다. 지나왔던 기자 생활을 돌아보며 후회도 많고 아쉬움도 너무 많았지만, 이젠 오키나와의 파란 바다에 다 던져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지 다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만났던 모든 인연들,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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