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지난 1월부터 '직장인 여행작가 입문' 강의를 하면서 멋진 수강생 분들과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다. 다들 처음으로 여행 글쓰기를 해 보신다고들 하지만, 왠걸! 나보다 여행도 더 많이 다니고 바쁜 와중에도 깨알같이 휴가를 모아 1년치 여행계획을 세우며 사시는 분들이었다. 가르치기 보다는 내가 더 많이 배웠던 시간이었다.
1월에 신세계에서 만난 아리따운 수강생 여러분,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런데 여행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고충이 있더라.
"선생님, 여행은 많이 가는데, 매번 남는 게 없어요!"
나 역시 지난 7~8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내 고민했던 화두였기에, 흘려들을 수 없는 한 마디였다. 책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을 통해서 답하려고 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내일 봄학기 여행글쓰기 개강을 앞두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고민이 수업 내내 이어질 듯 해서, 간략하게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직장인의 여행, 왜 남는 게 없을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모처럼의 휴가, 피곤한 건 싫어! 편하고 익숙하게 여행할거야
한국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직장인에게 휴가란, 쇼핑 외에 자신에게 주는 거의 유일한 보상이다. 여름이면 두 달씩 옆나라로 옆집 드나들 듯 놀러 다니는 유러피안 바캉스는 여전히 딴 세상 얘기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선택지는 참으로 좁고, 뻔하다. 그 뻔한 나라를 여행하는 방법도 뻔할 수 밖에. 홍콩, 일본, 싱가포르, 태국....대부분의 근거리 여행 일정은 'XX투어'나 '네이버 파워블로거'가 짜준 대로만 하면 오케이다. 왠지 그 루트를 벗어나면 손해본 것만 같고 내 휴가는 다시 주어질 리 없으니, 가장 실패가 적고 안전한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조금씩 서서히, 남들과 "똑같은" 경험으로 채워지게 된다.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가장 귀한 순간이, 다른 누군가와 복사기로 찍어낸 듯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이것은 곧, 나만이 얘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은 '없다'는 얘기다. 물론, 남들이 이미 100여개 정도 남긴 같은 여행기에 하나 더 보탤 수는 있겠다.
2. 내 여행테마는 '셀카'. 관광스팟은 모두 제패할거야!
자, 이제 남들과 대등한 수준(?)의 여행일정도 짰으니, 그곳을 최대한 짧은 시간에 빠르게 돌면서 흔적을 남겨야 한다. 마치 런닝맨에서 연예인들이 매주 받아쥐는 미션처럼, 우리는 여행지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미션을 클리어한다. 마치 직장에서 일을 하듯, 여행도 그렇게 '해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어떻게든 박제해서 길이길이 되새김질하는 수밖에. 모든 관광지는 내 배경이고, 여행의 주제는 다름 아닌 '셀카'가 된다.
1번 항목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런 여행은 결국 남들과 같은 여행사진에 주인공만 내 얼굴로 바뀐 여행이 된다. 다시 말해, 당신이 여행 글쓰기를 꿈꾸고 있다면 역시 글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행 글쓰기에서 글 만큼이나 가장 중요하게 수집해야 할 '사진'에, 당신의 얼굴이라는 불청객이 끼어든 셈이니까.
3. 당신의 여행은 하드와 SNS에 잠자고 있다.
그 많은 여행셀카들은 어디에 떠돌고 있을까? 바로 SNS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페이스북과 카스를 통해 여행을 누리고 있음을 자랑하고 또 위로받는다. 일단 내 얼굴이 안나온 사진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그대로 저장한 채 내버려둔다. 우리가 그 값비싼 풍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어떤 감성을 일깨웠는지는 그렇게 손쉽게 잊혀진다.
문득, 여행에 퍼붓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남는 것'이 없다는 본전 생각에 여행 사진을 들춰보면, 막상 이걸로 뭘 해야 좋을지는 감조차 오지 않는다. 블로그에 뭐라도 써보려 하면 운영에 대한 부담감이 앞선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귀찮다'. 세계에서 제일 바쁜 한국의 직장인에게,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은 왠간해선 우선순위가 되기 어렵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
만약 당신이 여행작가나 그 비스무레한 일을 꿈꾸고 있다면
현재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 2의 멋진 일로 '여행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1~3번에 해당하는 여행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돌이켜 보자. 이제부터 떠나는 여행은 one of them이 아니라 one of a kind가 되어야 한다. 물론 독특하고 남다른 경험만이 의미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뻔한 여행지에서도 나만의 독특한 감성을 끌어내고, 그 결과물이 남들과 차별화되는 것이라면 이미 당신만의 무기는 갖춘 셈이다.
가장 먼저, 남들과 다른 루트를 짜고 다르게 여행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모든 귀찮음과 피곤함을 뚫고 '글을 쓰고 싶다'라는 결심이 드는 동기부여는 '이것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 마음이 가장 쉽게 드는 순간은,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고 난 직후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글감'이 필요하고, 당연히 여행법 자체도 달라져야 한다.
이미 다른 경험은 많이 했는데, 그걸 정리하고 컨텐츠로 생산하기는 힘들다고? 그렇다면 이 사실을 기억하자. 내 여행이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갖는 핵심은 '정보, 또는 감성'이다. 정보든 감성이든, 여행 중이거나 여행 직후가 아니면 되살리기가 매우 어려운 예민한 놈들이라는 걸 잊지 말자. 즉 기록해 두거나, 바로 토해내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블로그를 오랫동안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몇가지가 궁금해질게다. "과연 어떻게 여행해야 글감이 생기나? 나만의 여행테마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휴가도 낭비하지 않고 알차게 여행하고 남는 것도 생기는 그런 여행법이 과연 있기는 한가?" 하는 것들. 물론 대부분의 힌트는 블로그 곳곳에도 남아있긴 하지만, 조만간 정리해서 계속 연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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