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운좋게 안면도 꽃박람회 여행 기회가 생겼다. 아침 일찍 친구와 함께 용산역을 향할 때만 해도, 어제가 석가탄신일이고, 골든 위크의 시작이며, 토요일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홍성역에서 안면도행 전용 버스에 올랐을 때, 우린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4시간 만에 버스는 뱡향을 되돌렸다. 오후 3시 반. 이미 하루의 절반 이상을 차에서 보낸 뒤였다. 그때라도 빠져나온 게 천만 다행이긴 했지만서도. 게다가 하늘은 점점 비구름에 뒤덮여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빗방울도 하나 둘씩. 아. 내게 진정 국내여행은 요원한 미션이란 말인가.
하루종일 먹은거라곤 김밥과 계란이 전부인 우리는 일단 간월도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곳은 굴이 유명한 곳인가보다. 굴밥집이 즐비하기에 일단 골라잡아 들어가봤다. 근데 오늘은 굴밥이 안된단다. 크흑. 굴파전과 바지락 칼국수를 주문했다. 파전 위의 굴은 큼지막했고, 칼국수는 적당히 시원했다. 그래도 사람이 참 간사한게, 배가 채워지고 나니 조금씩 맘의 여유가 생긴다. 으슬으슬 춥던 몸도 기운이 나고, 잔뜩 흐린 바닷풍경도 왠지 분위기 있어보이고. 그래. 기왕 온거 사진이나 실컷 찍다 가야겠구나.
안면도 구경은 이미 물건너갔고, 급하게 가이드님이 잡은 코스는 바로 수덕사행이다. 꽃박람회 패키지를 졸지에 '사찰 패키지'로 만들어 죄송하다는 사과를 거듭 하시는데, 사실 가이드님 책임도 아니고 차 밀리는 날 골라서 출발한 우리가 운이 없는 거지. 흑. 간월도에서 식사를 마치고 잠시 갯벌에서 휴식시간을 가지며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하지만 오늘 이용했던 코레일투어 서비스에도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다. 이렇게 차가 밀릴 것은 당연히 예상을 했었어야 했다. 안면도로 진입하는 도로가 협소한 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일테고, 이런 대박 휴가철에 당일치기로 안면도를 왕복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리 예측해서 일정을 짰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여행 상품이 39.000원이면 사실 왠만한 장거리 KTX표값 정도 되는건데, 돈내고 온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나 싶다.
저녁 6시가 다되어 찾은 수덕사. 실은 오늘이 석가탄신일인걸 깜박하고 있었는데, 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등의 행렬이 부처님 오신 날을 알린다. 사실 이런 날 절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 좋은 기회다 싶어 일단 절 입구로 향해 본다.
그런데 수덕사 입구로 들어서는 길에는 어찌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지, 흐린 날에 더욱 화려한 색채를 뿜어댄다. 꽃박람회 구경 못한 한을 풀어주기라도 할 듯이.;; 그래서 절 구경 하기 전에 꽃들 옆에서 사진도 찍고 기분전환을 해본다. 하루종일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예쁜 꽃들 앞에서 다 풀리는 것만 같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색색의 등불 행렬. 평소에는 소박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찰이 석가탄신일만큼은 온갖 화려한 등불로 치장을 한다. 외국인들이 보면 더욱 신기해할 것 같은, 너무나 한국적이어서 오히려 더 새롭게 느껴지는 석가탄신일의 풍경. 도심에서 보는 것과는 또 사뭇 다르게 예쁜 모습들이다.
수덕사에 머문 지 한 30여 분 지났을까. 모든 등불에 일제히 조명이 켜졌다. 은은한 노란 빛의 불빛들이 어슴푸레한 초저녁 하늘과 만나니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늘만큼은 그냥 종교를 떠나서, 온화하고 인자한 부처님의 표정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수덕사 한켠에 세워진 불상. 동자승들의 표정이 너무 귀엽다.
돌아다니다가 템플 스테이하는 건물을 발견했다. 그 앞에서 기념으로 얼른 한 컷.
비록 비도 오고 꽃박람회도 못갔지만, 수덕사를 나서는 길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간만에 400D들고 나왔는데 여기서 사진도 많이 찍고, 석가탄신일이라 더 의미가 있었던 방문이었다. 기차 시간 때문에 아쉽게 돌아서야 했지만, 사실 탄신일 기념 행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모양이다. 어제 고속도로에서 하루를 보낸 전국의 수많은 직장인과 그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반응형
'TRAVEL >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을 품은 영암무화과 여행 (1) 남도의 가을을 만나다 (2) | 2009.09.15 |
---|---|
가평과 춘천에서 보낸 알찬 여름휴가 1박 2일 후기 (7) | 2009.07.20 |
도림천, 화려한 그래피티의 성지로 떠오르다 -2- (0) | 2009.04.17 |
도림천, 화려한 그래피티의 성지로 떠오르다 -1- (1) | 2009.04.12 |
[서울/마포] 파아란 하늘공원에서 억새의 끝자락을 만나다 (0) | 2008.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