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을 여행하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상하게도 지난 세 번의 방콕여행에서는 같은 패턴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세련된 전망의 멋진 호텔과 쇼핑, 로컬 음식과 망고나 실컷 찾아먹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런데 호텔의 위치를 도심에서 리버사이드로 바꾸자, 새로운 방콕이 보였다. 올드 방콕과 신도시의 경계인 리버사이드는, 지금 방콕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이곳 깊숙히 오픈한 리바 아룬에서 머무는 2박 3일간,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방콕을 들여다 보았다. 그 첫번째 이야기.
루프톱 바에서 즐기는 느긋한 아침식사 @ Riva Arun
덜 깬 눈을 비벼가며 객실층인 3층에서 간신히 한 층을 올라가 보니, 탁 트인 바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악, 왓 아룬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다니, 이거 실화냐. 잠이 확 깬다. 이 정도면 수영장을 포기할 만한 조식당이다. 참고로 리바 아룬은 아주 작은 호텔이라 단독 풀장은 없고, 자매 호텔인 리바 수르야와 풀장을 공유한다고. 난 지난 번에 묵었던 곳이라 따로 가지는 않았다.
전망에 반했던 것도 잠깐, 단촐한 구성의 뷔페에 살짝 실망할 무렵 직원이 다가와 소박한 메뉴 페이퍼를 내민다. 몇 가지를 체크해도 다 직접 만들어 가져다주는, 알라까르테 스타일의 조식이었던 것. 그래서 나는 따뜻한 소이밀크, 그리고 양파와 치즈를 넣은 스크램블드 에그, 태국식 새우 누들을 주문했다. 평범한 오믈렛과 빵이나 먹기엔, 이 루프탑의 전망이 너무나도 멋지니까. 오늘은 조금 더 든든하게 먹어 두기로.:)
계란 요리가 나왔을 때, 직원이 가져다 준 소스는 케찹이 아니라 간장과 칠리소스였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를 뿌려 먹으라는 건가, 싶어 슬그머니 계란 옆에 뿌려 먹어 보니 오오오. 순식간에 서양식 스크램블드 에그가 '타이' 스타일로 뒤바뀐다. 부드러운 계란과 짭짤한 타이 간장, 매콤달콤한 칠리 소스 조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이때 맛본 하인즈의 칠리 소스는 결국 나중에 사왔다. 한국에서도 파는 마일드한 버전 말고, 매운 맛이 가미된 버전으로.
새우를 넣어 볶아달라고 주문한 누들은, 면이 안보일 정도로 건더기가 많다. 왓 아룬을 바라보며, 계란을 곁들여 먹어주는 멋진 태국의 맛. 방콕의 첫날 아침으론, 너무나 완벽한 풍경.
리버사이드를 따라, 잼팩토리로
어젯밤엔 피로와 안도감 속에서 체크인을 하느라, 이 아름다운 호텔의 로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궁전과 사원으로 가득한 이 동네의 가옥들은, 오랜 세월을 뒤로 하고 하나 둘씩 호텔과 식당으로 바뀌고 있다. 리바 아룬 역시 고풍스럽게 꾸며진 로비 너머로 맞닿은 현지인들의 일상에서, 예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렇게 로컬 깊숙이 자리한 작고 아름다운 호텔이, 방콕엔 너무나 많이 숨어있고 또 새로 생겨났다. 앞으로 방콕에 올 때마다 부지런히 하나씩 둘러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우버를 불러 오늘의 행선지로 향한다.
지난 번 방콕에 왔을 때는 여행 서적을 테마로 한 패스포트 북숍을 가봤으니, 이번에는 복합 공간인 잼 팩토리 내에 있는 캔디드 북스 앤 카페로 향했다. 내가 묵는 리바 아룬이 리버사이드에 있는 호텔이라, 택시로 강가를 따라 10여 분만 내려가면 잼 팩토리로 갈 수 있다. 잼 팩토리는 방콕의 유명 건축가가 조성한 공간이라 해서 국내에도 요즘 여행 관련 매체에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방콕에 어렵게 휴가 와서 4~5박 머무는 일정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여기를 오는 건 비추하고 싶다. 이곳 자체는 네버엔딩 썸머(레스토랑), 캔디드 북스토어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매달 마지막 주 주말 '낵 마켓'이 열리는 이틀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날엔 비어있는 거나 마찬가지. 나처럼 13일동안 3곳의 도시를 다니면서, 서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책덕후에게나 성지인 곳이다.
그런데 몇몇 SNS에 잼 팩토리가 방콕 '핫 플레이스'로 소개가 되어서인지, 이 북카페에는 끊임없이 한국인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대부분 사진 속에 담긴 저 독특한 모양의 와플을 시켜놓고 사진을 찍은 다음, 30여 분 내로 이곳을 떠났다. 그러기에 여기는 너무나 관광지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장소이고, 방콕엔 이보다 훌륭한 카페가 훨씬 더 많다. 이곳이 '찾아올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캔디드 북스토어가 섬세하게 셀렉해 둔 책들 때문이다.
대부분의 책은 '태국어'로 된 책들이다. 다시 말해, 외국인을 위한 책들을 파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태국의 여행작가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나에겐 오로지 그것만이 관심사다. 이전에 패스포트 북숍에서 구입했던 현지 여행서들도 지금까지 두고두고 참고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많은 책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치앙마이의 노마드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미니 여행북들의 모음집 '리틀 치앙마이'는 너무나 사고 싶었지만 어마어마한 무게로 내려놓아야 했다. 내가 평소 주목하는 태국 로컬 출판사들이 내놓고 있는 매거진과 무크북, 가이드북과 에세이들을 두루 둘러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쉽지만 책 구입은 라오스 일정이 끝나고 다시 방콕에 들렀을 때를 기약하면서, 아쉽게 북카페를 나왔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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