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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독서

여행과 관광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책 '여행을 팝니다'를 읽고

by nonie 201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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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팝니다 - 10점
엘리자베스 베커 지음, 유영훈 옮김/명랑한지성


2013년에 출간된 '여행을 팝니다'는 관광업의 전례없는 성장 뒤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굉장히 드문 여행전문서다. 한국어 번역판도 같은 해 출간되었으니 비교적 빠르게 소개되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한국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는지 알겠다. 한국은 해외여행이 본격 개방된 지가 채 20년도 되지 않는다. 아직은 더 많은 여행과 관광을 간절히 원하는 한국인에게, 이런 성숙한 논의가 벌어지려면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여행을 팝니다'의 원제는 'Overbooked'로, 뉴욕타임즈 저널리스트인 엘리자베스 베커가 관광업의 이면을 오랜 기간 따라다니며 치밀하게 취재한 책이다. 전례없이 폭풍 성장 중인 투어리즘은 자본주의의 논리와 맞물려서 저개발 국가에게는 환경오염과 노동착취를, 선진국에는 도시공동화와 문화파괴를 가져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베네치아에서는 더이상 장인의 수공예품을 팔지 않는다. 관광지 개발로 인한 땅값 폭등으로 오랜 장인들의 숍은 하나둘 없어지고, 그 자리엔 싸구려 중국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글로벌 브랜드 숍이 들어섰다. 캄보디아는 집단학살의 어두운 역사를 추모 대신 관광수입으로 써먹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전형적 사례다. '망자에 대한 기억을 상업화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를 찾는 관광수요가 있으니 캄보디아 정부는 수억달러를 벌어들일 구실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국 부동산 업자들은 앙코르와트 주변에 카지노 리조트를 짓고 개발을 장려한다. 현재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가장 많은 외국인은 한국인과 베트남인이다. 


이 외에도 크루즈의 환경오염, 두바이의 노동착취, 아프리카의 야생관광과 문화 파괴 등 대륙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취재를 통해 관광업의 이면을 파헤친다. 특히나 마지막의 미국 파트에서는 왜 그동안 미국은 관광업을 외면했는지, 오바마 정부 이후 관광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 지를 다루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미국의 관광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의문이 풀렸다. 


사실 아시아에서 여행 좋아하기로는 빠지지 않는 한국인도 이같은 현상을 체감하고 있지만, 공공연히 말하지는 않는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해외여행은 남에게는 '자랑거리'여야 하고, 나에게는 '특별한 순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광업계의 불합리한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마저도, 애써 외면하고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만을 스마트폰에 담는데 급급하다. 아직은 '책임여행' 혹은 여행자의 윤리를 강요하기엔 여행의 기회비용이 상당히 큰 것이 현실이다.


- 한 블로거가 그리신, 다소 과격하지만 명쾌한 웹툰, '관광지 주민에게, 관광객이란?' 도 참고해 보자.


나를 비롯해 해외여행을 상대적으로 자주 하는 여행자라면, 이제는 여행자의 책임과 올바른 여행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이 문제로 여러 나라에서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멘토같은 책을 만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재작년 발리 리조트 투어를 가는 길에, 근처 산길에 버려진 수많은 쓰레기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던지. 내가 묵는 리조트를 짓느라 산과 절벽을 깎고 환경오염이 된 거라고 생각하니 마냥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때의 혼란을 남겨둔 글은 아래. 


2013/11/04 - 발리의 첫인상, 그리고 리조트 여행에 대한 씁쓸한 단상


이 책의 한계점은, 책임있는 여행을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르포 취재에서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역자의 후기를 보면 '저자는 항상 풍족한 여행을 한다....저자가 비난하는 엉터리 관광상품을 통해서도 누군가는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곤 한다.'라고 지적한다. 퇴역장성인 남편과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늘 호텔과 운전기사가 딸린 취재여행을 한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즉 책임여행에 대해 논하려면 관광산업이 어느 정도 성숙된 시장에서나 가능하다는 전제가 따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컬 문화를 파괴하는 천박한 관광산업에 일조하지 않는 현명한 여행소비자가 되기 위해선, 아주 작은 소비부터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업계도 소비자에 맞추어 무분별한 개발을 하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더 신경쓸테니 말이다. 간만에 내 삶과 여행에 길잡이가 되어 주는 좋은 책을 뒤늦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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