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의 어느날, 킬리니 로드의 오래된 코피티암에서.
지금은 한창 히치하이커 싱가포르 2015 마무리 작업 중이다. 지루하리만큼 끝나지 않는 집필과 편집 작업을 하다가 문득, 그냥 지금의 감정을 먼저 정리하고 싶어졌다. 귀국한 지 오늘로 9일째. 사실 마카오에 일이 있어서 출국한 일정이었고, 싱가포르는 따로 1주일을 빼서 홍콩발 왕복티켓을 사서 갔던 거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싱가포르에 두 달만에 다시 가야만 했던 목적은 모두 이루고 왔는지, 이제서야 돌이켜 본다. 취재하려고 빼곡히 채워뒀던 구글 커스토마이징 맵의 수많은 핀들, 한 70%는 미처 가보지도 못했다. 추가 집필을 하려고 보니 이제야 뻥뻥 뚫린 당초 계획이 눈에 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뚫린 자리에는 사전 조사로는 전혀 알 수 없는 현지인 맛집과 경험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그 중엔 책에 실을 수 없는 애매한 위치의 장소도 있고, 운좋게 소개할 만한 곳을 건지기도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많았던 짧은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 새로운 감정이 들어 고민 중이다. 원래 무언가를 깊이 알면 알수록 매력에 빠져드는 건 당연하지만, 어떤 여행지에 대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진지하게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도 일본도 홍콩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갔지만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싱가포르는 알면 알수록 계속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사철 덥기만 한 나라에 매력을 느끼는 편도 아니고, 보통 사람보다는 많은 나라를 경험한 만큼 여행지로서의 싱가포르가 딱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싱가포르는 더 깊게 알고 싶어진다.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을 때도, 현지에서 나른한 오후에 혼자 앉아 싸구려 카야 토스트를 씹을 때도, 심지어 아직 계획도 없는데 에어비앤비의 리스팅을 훓고 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와 나를 어지럽게 한다. 1주일이 아니라, 조금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이 도시를 가만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 물론 이런 감정은 일시적일 수도 있고, 계속될 수도 있다. 사실 올해 여행 계획이 꽤 잡혀 있어서 싱가포르에 또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아마도 이런 생각이 계속되면 어떻게든 일정을 끼워 맞춰보려 하겠지.ㅎㅎ
유난히도 이번 책 작업은 진도가 더디다. 온갖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도시의 맛집과 카페와 호텔과 볼거리를 무미건조하게 나열해야 하는 이 상황이, 내겐 어렵다. 지금 싱가포르는 엄청난 도시개발로 옛것의 흔적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더 많은 것이 사라져가기 전에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을 더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무는 내내 들었다. 그래서 원래는 세련된 카페와 펍 정보만 주로 조사해 갔는데, 실제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오래된 코피티암이나 낡은 컴플렉스에 숨은 푸드코트, 이스트코스트의 외곽 동네, 태국인이 모여드는 타운 건물같은 지극히 서민적인 장소였다. 일단 로컬의 매력을 깊숙히 파고 들어가니, 겉핥기로 알던 싱가포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도 잘 안다. 그 이면에는 편안한 호텔과 리조트가 뒷받침되었기에 안락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알고 싶어진다. 럭셔리한 숙소의 도움 없이도 싱가포르가 내게 삶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도시가 될지, 어떨지.
싱가포르 여행 이야기는 마카오 연재와 히치하이커 집필이 마무리될 즈음에 본격 시작될 예정이다. 그때까지 많은 감정과 기억들은 잘 삭혀서 좀더 단단하게 만들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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