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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HongKong

홍콩, 취향의 여행 Day 3. 몽콕의 노란우산 시위대 + 샴수이포 맛집

by nonie 201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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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취향의 여행 2014 Day 3.

그 어느 도시보다도 여행자와 현지인이 확연하게 분리된 여행지가 홍콩이다. 한국인에겐 레이디스 마켓으로만 알려진 몽콕 역시, 쇼핑 때문에 의례히 들르는 닳고 닳은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런 몽콕의 풍경이, 내가 갔던 11월 초에는 잠시 달라져 있었다. 대로변이 온통 노란 물결로 뒤덮이고, 차량은 통제되고, 젊은이들은 텐트 옆에 누워 있었다. 시위를 맞닥뜨린 순간, 잠시나마 홍콩을 여행지가 아닌 평범한 사람사는 도시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곤 진짜 로컬 동네인 샴수이포로 돌아와, 허름한 식당에서 새우알비빔면을 먹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몽콕, 쇼핑 때문이라면 굳이 갈 필요 없다

쇼핑에 대한 부푼 기대로 향했던 몽콕에서, 나는 거의 처음으로 홍콩에서 쇼핑이 시간낭비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레이디스 마켓은 물론 예전과 그대로였다. 여전히 짝퉁 상품은 다양했고, 홍콩여행 커뮤니티에 빈번하게 공유되고 있는 길거리 맛집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가 달라져 있었다. 예전처럼 재미로 짝퉁 제품을 사며 좋아할 나이가 지난 건지, 조악한 품질의 상품을 보니 단 하나도 사고픈 게 없었다.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에스프리 아울렛도 처음엔 대박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둘러보니 철 지난 디자인과 색상의 제품만 가득해 살 옷이 없었다. 어쩌면 해외직구를 시작하면서 좋은 제품을 싸게 사다보니, 굳이 짝퉁이나 아울렛 상품을 살 명분이 없어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몽콕에서 그렇게 허탕을 치고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대로변 전체가 자동차 대신 파란 텐트와 노란 종이로 가득한 생경한 풍경과 딱 마주쳤다. 이게 뉴스에서만 보던 노란 우산 시위대였구나.  










몽콕에서 만난, 홍콩의 노란 우산 시위대 a.k.a. Umbrella Movement

그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든 구경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연령대도 다양해서 젊은 층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엄청 다양한 계층의 홍콩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실 홍콩에 오기 전에 이 시위가 격해진다는 보도가 국내외에 많이 나오던 때여서(지금은 거의 종결 상황으로 보도되고 있다) 홍콩여행을 가도 될지 막연한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홍콩에 간다면 이 시위만큼은 꼭 한 번쯤 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의 한국에선 실종된,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의식이 부럽기도 했고 홍콩을 여행지가 아닌 로컬의 시선으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노란 우산 시위는 기본적으로 비폭력을 표방하기 때문에 여행자 입장에서도 특별히 위험한 상황을 만날 일은 드물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변을 잘 살피고, 사람이 많은 몽콕 시내에서 잠시만 둘러보기로 했다. 









역시 노란 우산 시위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안전하고 잘 조직된 시위였고, 많은 시민과 여행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이 시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대자보 앞에서도 확 느껴졌다. 앞으로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강해질 테고, 이와 비슷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테지만 그 변화 속에 있는 홍콩을 현장에서 바라보는 그 자체는 어쨌든 흥미로웠다. 









빌딩숲을 가로지르며 매달려 있는, 예쁘게 접힌 노란 우산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서울 시내가 노랗게 물들었던 그 아픈 날들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고. 만약 한국이라면 정치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위해 자기가 하던 일을 분연히 떨치고 나와서 거리에 누워 항의를 할 수 있을 만한 원동력이 과연 있을런지. 잠깐이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시간.









샴수이포의 오랜 맛집에서 저녁을 먹다

몽콕에서 호텔이 있는 샴수이포까지는 지하철 빨간 노선으로 딱 두 정거장, 엄청 가깝다. 샴수이포에 내리면 관광객은 싹 사라지고 대신 고스란히 현지인의 머릿 수로 채워진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지나 어렵게 찾아낸 한자 간판, 샴수이포의 터줏대감인 라우썸키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1940년에 문을 열었다는 전설의 맛집답게 여전히 그 때의 모습 그대로 허름한 외관과 몇 개 안되는 테이블이 전부여서 참 정겨운 모습이다. 메뉴판은 당연히 한자 메뉴지만, 미리 조사해간 세트 메뉴의 한자 이름을 핸드폰에 저장해 가서 보여 드리니, 아주머니가 슬쩍 웃더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동안 홍콩 현지 맛집을 못갔던 이유가 의사소통 때문이었는데, 정보만 알고 가면 생각보다 간단하구나.









이 가게에서 수십 년간 같은 맛을 이어온 메인 메뉴는 바로, 새우알 비빔면이다. 홍콩에 4번이나 오면서 이런 요리가 있는지도 몰랐던 내겐 그저 신세계. 하지만 홍콩 현지인에겐 너무나 친숙한, 소울푸드같은 메뉴다. 간장 소스에 잘 볶아진 가느다란 면 위에, 듬뿍 내려앉은 새우알 소스와 청경채가 전부인 심플한 누들 한 접시. 입에 넣는 순간 처음 먹어보는 고소한 맛이 입안에 착착 감긴다. 역시 심플 이즈 더 베스트. 








새우알비빔면은 단품으로 먹는 것보다 완탕 스프와 세트로 먹는 게 제맛이라더니, 완탕 역시 말이 필요없는 맛이다. 잠시 후 뜨끈하게 끓여져 나온 국에는 실한 물만두와 오징어볼이 같이 들어 있는데 각기 다른 쫄깃한 식감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 국물 역시 너무 시원하고 개운하다. 고소한 비빔면과 따끈한 만두국에, 이 집에서 직접 담근다는 개운한 무 피클을 곁들여 먹으니 그 어느 고급 딤섬집도 부럽지 않은 알찬 저녁 만찬이다.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진짜 맛집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식사 이후, 매일 저녁 샴수이포의 로컬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는. 이게 다, 이곳에 숨겨져 있는 멋진 호텔을 선택한 덕분이다. 여행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선택은 정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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