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취향의 여행 2014. Day. 2
오늘은 숙소가 있는 셩완에서 센트럴로 천천히 발길을 옮겨 하루를 시작한다. 늦은 아침,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보고싶었던 책 한 권을 펼친다. 이틀 만에 LTE속도로 방전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미리 알아둔 센트럴의 작은 스파숍을 찾아가 만족스러운 마사지를 받았다. 강 건너 침사추이로 슬쩍 건너가 현지인들 틈에 섞여 식사도 하고, 숙소에선 홍콩의 명물이라는 토마토 라면도 끓여 먹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홍콩의 하루.
센트럴에서 마시는 모닝 커피
2012년부터 홍콩의 스페셜티 커피는 계속 탐방해 왔지만, 차 문화가 압도적으로 발달한 홍콩에서 좋은 커피를 찾아 마시는 건 사실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2년 전 막 태동한 카페들도 대부분 자기 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고, 새롭게 생겨난 카페도 많아서 매일 골라 다니는 즐거움이 있다. 어제 셩완의 카페도 꽤 만족스러웠지만, 오늘은 센트럴 한 복판의 또다른 카페, 커핑 룸으로 향했다. 카페 평가 어플인 Bean Hunter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은 카페여서 일단 기본 이상은 하겠다 싶었는데, 가격대가 꽤 센 곳임에도 아침부터 사람도 꽤 많아서 놀랐다.
신이현 작가의 무덤덤한 글을 좋아하는지라 오랜만의 신작인 열대 탐닉을 들고 갔다. 여행 전에 구입한 책이기도 했고, 더운 날씨의 홍콩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하지만 홍콩의 10월 말~11월 초는 열대는 커녕 꽤 쌀쌀하다. 책의 배경이 캄보디아인데, 나중에 캄보디아에 가서 다시 읽어야 빙의가 잘 될 것 같은, 열대감성 돋는 에세이.
커피는 주문한 지 한참 만에 나왔다. 센트럴의 탁 트인 골목에서 사람 구경하며 커피 마시는 분위기는 좋지만, 가격 대비 커피맛은 어제 갔던 셩완의 커피가 좀 더 괜찮았다. 물론 이곳의 커피도 체인에 비할 바는 아니다. 물론 가격도.ㅋ
센트럴의 작고 깨끗한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다
홍콩에 오면 다들 받는 관광객용 발마사지는 안받은 지 꽤 되었다. 저렴한 곳은 위생 상태가 못 미덥고, 호텔에서 받기엔 비용이 부담스럽다. 그러니 홍콩에서 전신 마사지는 엄두도 못 낸다. 2년 전 히치하이커 홍콩에 소개했던 센트럴의 마사지숍 텐 핏츠 톨(Ten Feets Tall)은 최근 구글 리뷰를 보니 평이 나빠졌더라. 가격이 호텔급으로 높은 편이라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평은 당연한 듯. 그래서 새로운 스파숍을 개척하는 것도 이번 여행의 중요한 미션이었다.
다길라(D'Aquilar) 스트리트의 한 건물에는 스타벅스를 비롯해 다양한 숍과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는데, 14층에 작은 스파숍이 있어서 찾아가 봤다. 우중충한 중국식이 아닌 모던하고 통일성있는 그린 톤의 디자인으로 깔끔하게 꾸며놓은 데다, 개별 스파룸도 깨끗해서 첫인상부터 호감이다. 홈페이지로 가격도 미리 보고 간 거라서 부담없이 전신 아로마 마사지를 주문했는데, 예약을 안했음에도 바로 준비를 해줘서 편안하게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전신 마사지(268$)는 매우 훌륭했다. 아팠던 온몸을 시원하게 풀어주어서 오일 마사지인데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운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전신을 받고 나니 딱 괜찮다는 감이 와서, 내친 김에 발마사지(188$)도 받아보기로 했다. 발마사지는 따로 마련된 마사지 라운지에서 받는데, 양복 차림의 서양인 남성이 발마사지를 받는 걸 보니, 인근 직장인들이 점심이나 퇴근 후 종종 오는 듯 했다. 발마사지 역시 설비도 깔끔했고 강도도 적당해서 좋았다. 거의 처음으로 홍콩에서 맘에 드는 마사지숍을 만났다. 현금 결제만 되는 게 유일한 단점. 한국인이 좀 오는 편이냐고 물으니, 아주 가끔씩 온단다. 만약 오더라도 한국인은 의사소통(영어)이 잘 안 돼서 자기네가 더 불편하다고. OTL...
정통 말레이 레스토랑 '굿 사테'의 치킨 라이스
센트럴의 수많은 쇼핑몰에 포진한 수많은 푸드코트를 제껴두고, 현지 거주자의 블로그에서 봐둔 침사추이의 굿 사테(Good Satay)라는 말레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식사 시간에는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유명한 현지 맛집이었다. 며칠동안 아침에 빵만 먹으니 제대로 된 쌀밥 생각이 간절해서, 치킨 라이스 세트를 주문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은 지 거의 30초만에 테이블에 풀 세트가 놓여지는 대단한 신공ㅋㅋ
닭육수로 촉촉하게 지어진 밥 자체도 너무 맛있었지만, 같이 딸려나오는 배추 스프의 국물 맛이 예술이다. 세 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 차가운 치킨과 곁들여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웠다. 나중에 싱가포르에 가서도 지겹도록 치킨 라이스를 먹었지만, 이 집만큼 맛있는 치킨 라이스는 먹지 못했다. 다음엔 여럿이 가서 저녁에 이런저런 요리를 술과 함께 푸짐하게 시켜 왁자지껄하게 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여긴 딱 그렇게 먹기 좋은, 정겨운 분위기의 식당이다.
My Hong Kong Kitchen. 토마토 라면 Feat. 칭다오 라이트
홍콩에서의 요리는 어찌 보면 부질없는 시도다. 사먹는 게 더 싼 도시에서 굳이 요리를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도 남은 식재료는 처리하고 다음 숙소로 가야 하니, 편의점에서 득템한 신라면으로 홍콩 차찬탱의 명물, 토마토 라면을 끓였다. 집에서도 종종 해먹는 라면이라 익숙하다. 홍콩에서 파는 토마토 라면은 국물이 달짝지근하다고 하는데, 아직 맛은 못봐서 어떨지 궁금하다. 시원한 칭다오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은 간단히 해결했다.
홍콩에서는 현지인 숙소가 여러 모로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래된 아파트 자체도 그렇고, 화장실도 너무 비좁아서 샤워는 커녕 몸을 움직이는 것도, 세수 한번 하기도 어려웠다. 홍콩 특유의 습기는 사계절 내내 예외가 없는데, 호텔과는 달리 일반 집은 가습 기능이 따로 없어서 며칠 지나면 이유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아 세월의 무상함...) 더 이상 센트럴이나 시내에 묵는 것도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숙소도 호텔로 옮기고 동네도 옮겼다. 그 이후 나의 홍콩 여행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다음 편에 계속 이어서 소개하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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