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이웃으로 내 블로그를 구독한 한 블로그를 찾아가봤다. 협찬 받아 단체여행 다니는 광고 블로그와는 차원이 다른, 해외여행의 감성 기록을 틈틈히 담아온 30대 직장 여성의 블로그였다. 하지만 그녀가 최근 올린 귀국길 여행기에는 적잖은 한숨이 묻어 나온다. 내일부터 다시 지옥철에 몸을 싣고 출근해야 하는 믿기지 않는 현실, 지금 당장 비행기를 돌려 여행지로 돌아가고 싶은 그 한숨 말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그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밥벌이와 여행을 힘겹게 병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몇 달 전 "직장인에서 여행 컨텐츠 디렉터로 독립한 6개월을 돌아보며"라는 글을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공감과 호기심을 표해 주셨다. 그 글에서 모든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포인트 역시 "여행을 직업으로 삼는 방법"이다. 여행과 삶을 분리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힘겨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피드백이 많았다. 물론,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그저 '바캉스'면 충분한 소수의 행운아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소중한(그러나 돈이 많이 드는) 경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월급쟁이로 살아가야 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여행하고 돈도 버는 직업, 그런게 과연 있기는 한가?"
최근 강의하면서 빵터진 에피소드 하나. "여행하고 돈도 번다는" 메리트가 얼마나 사람을 혹하게 하는 문구인지, 최근 40~60대 중년층 사이에서 이를 이용한 불법 신종 다단계가 성행하는 걸 알게 됐다. 이른바 "회원제 여행"인데, 회비를 낸 후 하위 회원을 가입시키면 본인은 공짜로 여행하고 심지어 돈도 번다는ㅋㅋㅋ허무맹랑한 다단계가 카톡 입소문으로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내 수업에도 그것에 가입했다는 엄마 또래 수강생이 오셨다. 그래서 "불법으로 언론에 보도된 바 있으며, 전혀 돈을 벌지 못하실 것이고 이미 내신 돈도 잃을 수 있다"고 소상히 설명해 드렸다.;
여행작가를 꿈꾸는 직장인부터 다단계에 홀릴 만큼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 어르신까지, 열정 충만한 이들이 내 강의실 문을 두드린다. 언젠가는 제 2의 인생을 여행과 함께 하겠다는 야무진 꿈과 함께. 하지만 4주간의 여행작가 입문 과정이 끝나고 나면 90%의 수강생은 깨닫는다. 앗, 여행과 여행 글쓰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구나.
강의를 거친 후 제대로 꾸준히 글을 쓰는 수강생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블로그보다 편한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되돌아간다. 직장생활과 여행의 줄타기가 차라리 '여행 글쓰기'보다 백만 배 정도 쉽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여행하고 돈버는 일'으로 쉽게 떠올리는 전업 여행작가는 실제로는 직업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순수한 책 판매 수입 만으로는 생계를 지탱하기 어려운 출판시장의 현실 때문이다. '출판업계 양극화, 1만부 저자 사라진다'라는 최근 기사가 언급하듯, 인지도가 없는 저자는 상품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전업 작가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이가 책을 내고 돈벌기가 훨씬 쉬워진 세상이다. 따라서 여행서 한 권 냈다고 여행작가 데뷔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직장을 때려치고 세계일주를 떠났다" 류의 여행에세이는 이제 진부하다 못해 독자에게 새로운 궁금증을 유발한다. 서평난에는 "그래서? 여행 다녀온 다음엔 어떻게 사는데? 잘 사나?"와 같은 비아냥이 공식처럼 이어진다. 내가 아는 수많은 여행서 저자는 책 낸 이후에 어떻게 사는지, 자신의 삶이 나아졌는지는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하지 못한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서 여행과 병행하는 직업으로 경력 전환을 하고 싶다면, 기존의 직업관을 과감히 버리고 셀프-브랜딩으로 자신을 재정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본 직업은 이미 과거의 직업이다. 작가, 기자, 강사..같은 것들 말이다. 자신의 강점(다른 사람에겐 없는 능력)과 여행산업의 니즈를 결합하고, 이를 컨텐츠(말,글,영상 등)로 생산한 결과물을 시장에서 인정받는 기간은 짧아도 3~5년 이상 잡아야 한다. 때때로 "파워블로거가 갑자기 될수도 있나요?" 혹은 "일반인도 여행을 공짜로 갈 수 있나요?"같은 해맑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럼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답한다. 아니요. 본인한테만 짠!하고 열리는 특별한 길은 존재하지 않아요.라고.
"직장인에서 여행 컨텐츠 디렉터로 독립한 6개월을 돌아보며"를 쓰고 다시 6개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던 초보 강사에서 불과 6개월만에 중앙 부처에서 여행 강의를 초빙 받고 내 이름을 건 프리미엄 과정을 열 만큼 나름 주목받는 강사가 되었다. 1년을 4분기로 쪼개어 각 분기의 절반은 강의, 나머지는 테마여행을 떠나고 이를 컨텐츠로 만드는 패턴이 자리잡았다. 차별화된 여행 컨셉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줄 해외업체도 계속 늘어가고, 글로벌 트렌드인 공유경제 플랫폼을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삶을 영위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겠지만, 한국이 아닌 전 세계를 무대로 소통하면 완전히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다.(그래서 영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내년 초 출간할 두 번째 책에서 좀더 많은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직장생활과 여행의 그 끝없는 쳇바퀴가 더이상 견딜 수 없다면, 궁금한 점은 지체하지 말고 댓글(비밀글)이나 메일로 물어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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