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발리~방콕의 한붓그리기 투어는 원래 '리조트'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계획했다. 리조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히 후아힌 식스센스-에바손 리조트 후기를 읽으며 '부티크한 리조트에 머무는 여행은 어떨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여행 준비를 하는 도중 식스센스가 파산해 운영권이 넘어가 예약이 불가능다는 소식을 들었고, 처음부터 후아힌 여행은 순탄치 않을 징조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스로 도착한 후아힌의 리조트는 생각같지 않았고, 난 몸살에 걸렸다.
방콕에서 후아힌으로 가는 길
이번 태국여행에서 가장 걱정했던 순간이 드디어 왔다. 방콕에서 후아힌으로 이동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고, 그나마 한국 웹에는 후아힌 후기조차 많지 않았다. 나름 다른 방법을 열심히 알아봤지만, 8만원에 가까운 택시비를 쓰느니 좀 힘들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정석은 역시 빅토리 모뉴먼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미니밴을 타는 것이다. 200바트 정도면 후아힌까지 편하게 갈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엄청난 비가 지구를 집어삼킬 듯 무섭게 내렸다. 살아 돌아갈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즈음 폭우는 거짓말처럼 그쳤지만, 미니밴은 마켓 빌리지 앞에 날 떨구고 떠나 버렸다. 내가 가야 할 마라케쉬 리조트는 당최 어디인가?? 택시 정류소 직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썽태우를 탔는데, 당황한 나머지 요금도 못 내고 그냥 내려 버렸다는. 자유여행으로 후아힌의 특정 리조트에 찾아 간다는 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한 미션이었다. 아니면 돈이 많거나.
후아힌의 부티크 리조트, 마라케쉬 리조트 앤 스파
다들 나처럼 고생해서 오는 사람들은 없을 듯한 리조트의 평화롭고 럭셔리한 분위기는 사뭇 낯설다. 여기는 분명 태국인데 내부 전경은 마라케쉬의 고급 리야드와 흡사하고, 게다가 투숙객은 대부분 웨스턴이다.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는 리조트의 첫인상을 잠시 뒤로 하고, 리셉션에서 웰컴 드링크로 한숨 돌려본다. 트립 어드바이저의 위너 팻말도 놓여 있으니, 분명 퀄리티도 좋겠지. 잠시 후 매니저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객실로 향했다.
드디어 객실 입성, 그러나...
원래 리조트 문화는 태국이 가장 유명하고 오래되었으며, 세계적인 리조트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태국의 왕이 머물면서 휴가를 보낸다는 후아힌은 태국 로컬들도 가고 싶어하는 핫한 휴양지이고, 한국인과 중국인의 전용 휴양지인 파타야나 푸켓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래서 식스센스 대신 예약했던 신생 리조트인 마라케쉬에 나름 기대가 컸다. 후아힌에는 인터컨티넨탈과 함께 규모도 상당히 큰 리조트에 속하고, 호텔 사이트의 후기도 나쁘지 않았다. 근데 내게는 여러 모로 실망이 컸다. 물론 후아힌까지 오는 길이 상당히 힘들었고 컨디션이 난조였던 원인도 있겠지만, '숙소'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 점이 너무 많이 눈에 띄었기 때문일게다.
일단 리조트의 객실은 상당히 예쁘다. 모로코 컨셉인만큼 블루로 통일된 침구와 벽, 발코니의 디자인이 아름다워서 많은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창 밖으로 엄청나게 큰 수영장이 펼쳐지는 풀 뷰의 전경도 아름답고, 멀리 후아힌 비치까지 보인다. 리조트가 아예 후아힌 비치와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로케이션 또한 좋은 편이다.
하지만 웰컴 프룻과 꽃다발에 줄줄이 이어지는 개미떼가 우선 충격이었다 .발리에서도 못본 개미에 여기 와서 시달릴 줄이야. (발리에선 모기가 극성이었지만) 개미가 짐가방까지 침투하는 바람에 객실에 비치된 퇴치 스프레이를 계속 뿌려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방음이 되지 않는 것이 두번째 충격. 5성급 리조트가 방음시설 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객실의 모든 시설에 곳곳이 낡고 노후하는 흔적이 보였다. 벽에 붙은 여러 거울조차 너무 오래되어 보였다. 여러 면에서 지금까지 경험한 리조트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빛좋은 개살구의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욕실 및 화장실은 대체로 요런 분위기. 처음엔 와 예쁘다 했었는데, 나중엔 점점 무섭기까지 했다는. 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두운 편이어서 최대한 밝게 찍은 사진이 이 정도다.
방콕 로컬과의 저녁식사와 대화
기분 전환도 할 겸 매니저와 저녁식사를 위해 야외 바로 향했다. 근처의 다른 리조트 투숙객들도 찾는다고 할 만큼 야외 바의 분위기는 꽤 괜찮았다. 매주 금요일 밤에는 라이브와 파티가 열리기 때문에 자리도 없을 정도라고.
그는 태국 남자 치고는 훤칠한 키에 영어도 꽤 잘했다. 물어보니 방콕대 출신이고 방콕 로컬인데 호텔 일 때문에 아예 이곳 리조트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달이면 방콕의 다른 호텔로 옮긴다며 그 호텔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내 입장이 난감해졌다. 게다가 그는 페북 중독자였다. 끊임없이 폰 화면을 쳐다보며 대화를 끊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래서 빨리 식사를 끝내려고 했는데, 후아힌 시내를 구경시켜 주겠다며 동행할 것을 계속 권해 또 한번 의아할 따름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지금 벌어지는 방콕의 시위에 대한 엘리트주의적인 발언이었다. "못 배운 사람들이나 탁신을 지지한다"고 빈정거리며 자신은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적인 의견을 말하는 건 물론 자유지만, 좀 배운 놈이랍시고 주류 입장에서 대중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건 참고 들어주기 어려웠다. 탁신에 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결코 쉽게 결론지을 얘기는 아니다. 어쨌든 대충 스캔은 끝났으니, 남은 건 이 식사를 빨리 마무리하는 수밖에. 몸이 좋지 않으니 방콕에서 저녁이나 하자는 약속으로 퉁치고 안녕을 고했다. 음식은 진짜 맛있었지만, 잘 기억이 안난다. 그럴 수밖에 없을 지도.
짧았던 후아힌과의 아쉬운 만남
후아힌까지의 긴 여정, 편치 않았던 저녁식사, 그리고 방음 안되는 객실;;; 이 모든 게 겹쳐 결국 잠도 제대로 못자고 감기몸살까지 제대로 걸렸다. 물론 타이페이에서 발리를 거쳐 여기 오기까지,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그게 어찌 후아힌만의 탓이랴. 하지만 아침식사도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이 여행을 계속 하기는 어려웠다. 마라케쉬 다음에 가기로 했던 드라파이 리조트에서의 1박을, 결국 당일 아침에 취소했다. 급하게 방콕의 마지막 호텔인 마두지에 1박을 추가로 예약하고, 후아힌에서의 일정을 아쉽게 정리했다.
내가 후아힌에서 얻은 것은 명료했다. 여행도 삶이나 연애처럼, 결국 타이밍이라는 것. 좀더 좋은 시간에 좋은 사람과 좋은 방법으로 왔다면, 아마 이 후기는 180도 달라졌겠지. 내가 머물던 때, 톱모델인 송모 씨도 무려 4박이나 이 리조트에 머물다 갔다.(레스토랑에서도 같은 시간에 저녁을 먹었다ㅎㅎ)
그렇게 누군가에겐 이 리조트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여러 리조트를 거쳐 도달한 나의 기준에서는, 주관적인 상황을 빼고서라도 그렇게 좋은 숙소는 아니었다. 아울러 한국의 여행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태국의 여행산업을 비관적으로 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참고하면 좋겠다. 요즘의 태국은 여러 선진국에서 여행 주의(금지) 국가로 지정되었고, 앞으로 정치적 상황이 더 불안해질 거라는 전망이 대세다. 휴양지 측면에서도 후아힌만 경험해서 아직은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태국의 휴양지 리조트가 이 수준이라면 발리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진다. 오히려 방콕의 혁신적인 호텔(앞으로 소개할 마두지 포함)에 머물면서 저렴한 식도락과 새롭게 떠오르는 아트 탐방을 하는 여행이 더 실속있는 코스다. 적어도 올해 두 번의 태국 방문에서 얻은, 내 나름의 결론이다.
'TRAVEL > Thaila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콕 쇼핑놀이 1. 터미널 21에서 맛투어와 스파를 한 방에! (0) | 2013.12.23 |
---|---|
일본의 감각이 녹아든 방콕의 부티크 호텔, 마두지 Maduzi (4) | 2013.12.21 |
방콕 추천 맛집! 사판탁신의 이탈리안 부티크 레스토랑 'Mazzaro' (0) | 2013.12.02 |
방콕의 핫한 카페와 숍,전시를 한큐에! BACC & 시암의 디저트숍 순례 (0) | 2013.12.02 |
샹그릴라 방콕의 아침 & BACC 아트 탐방 시작! (2) | 2013.11.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