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드쉰은 이번 여행에서 단 이틀뿐인 5성급 호텔이니, 호텔을 온전히 즐겨야 할 시간은 마땅히 배정해야 할 터. 마침 테이크아웃 하기에 딱 좋은 푸드코트도 붙어 있겠다, 객실에서 혼자만의 조촐한 저녁식사 시간을 가져보기로!
다음날 아침의 조식은 호텔을 닮아 역시나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많은 뷔페를 접하지만 음식간의 조합에 이렇게 고민 때려야 하는 조식 뷔페는 간만에 만난다. 어쨌든 팔레드쉰에서의 24시간은 배부르고, 평화로웠다.
PM 8:00 큐스퀘어에서의 늦은 Take-away
심플마켓 구경을 마치고 101타워 주변을 구경하려 했지만, 허리통증이 완전히 낫지 않아 더 버티기가 어려웠다. 버스와 지하철을 힘겹게 갈아타며 간신히 메인 스테이션 도착. 잠시 쉬다가 큐스퀘어로 가보니 꽤나 크고 세련된 쇼핑몰이더라. 체력만 허락했다면 꼼꼼히 쇼핑도 해볼만 했던 곳. 지하에는 역시나 푸드코트가 자리잡고 있다. 너무 중국음식을 안 먹은 것 같아서, 언제나 실패가 없는 오리고기 덮밥으로 낙찰! 손짓발짓으로 포장을 부탁하자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는 외국인인 걸 알고 "take home?"하며 물으신다. 잠시 후 내 손에는 뜨끈한 국물까지 완벽하게 포장된 덮밥 한 꾸러미, 그리고 옆의 슈퍼마켓에서 산 독일산 밀맥주 한 캔과 포테이토칩이 잔뜩 들려져 있다.
역시 오리고기 덮밥은 정말 탁월한 초이스...!! 한입 한입이 감동의 도가니탕! 중국 음식 아껴뒀던 보람이 있구만.ㅋㅋ혹시 나처럼 현지식이 다소 맞지 않는다면 푸드코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오리 덮밥을 꼭 시도해 보길. 홍콩이나 싱가포르나 대만이나 이 맛은 어디 가질 않는구나. 가격도 4~5천원 내외로 저렴하다.
마침 푸드코트 옆에 수입 식재료 파는 마켓이 있어서 사온 술과 안주도 개봉. 타이완 맥주가 생각보다 맛이 별로여서 좋아하는 독일 밀맥주로 골라봤는데, 허브향의 감자칩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평소 같으면 살찐다고 하나하나 입에 넣을 때마다 봉지 뒤의 칼로리 체크하고 있었겠지만, 이 순간 만큼은 내키는 대로, 먹고 싶을 때까지.
침대에 누워서 객실을 바라보면 요런 뷰. 원목으로 된 천정과 가구들이 휴양지 리조트처럼 아늑하게 다가온다. 그 와중에 잔뜩 입을 연 채 닫힐 줄 모르는 내 캐리어는 안습....ㅜㅜ 호텔을 계속 옮겨다녀야 하는 이번 일정의 특성 상, 짐을 늘릴 수도 없고 짐을 제대로 풀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였다. 덕분에 가방은 언제나 정리되지 않은 채로 다시 꾸려지고.
이번엔 가벼운 새 카메라를 휴대한 덕분에 일반적인 관광지나 맛집이 아닌, '여행의 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 유난히 많아졌다. 자연히 내 기억도 사진들과 함께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 동안엔 무심했던,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사진의 힘을,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전에 없이 며칠 동안 1천여 장을 찍다보니 이제서야 사진 찍는 재미를 어렴풋이 알아가는 중이다.
AM 9:00 팔레드쉰의 시그니처 레스토랑, Le Rotisserie의 아침
편안했던 침대 때문인지, 4일간 누적된 여행의 피로와 술 때문인지, 간만에 늦잠을 잤다. 서둘러 내려가보니 로비에 있는 조식 레스토랑은 이미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붐빈다. 팔레드쉰은 나름 유명한 호텔이다 보니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고 가족 단위 게스트도 많다. 조식 뷔페의 메뉴는 이전에 들렀던 호텔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엄청난 크기의 샐러드바. 마치 샤브샤브 바를 보는 듯한 배추와 생 채소들...ㄷㄷ일단 비주얼로는 압도적인데, 막상 먹으려니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즉석 조리코너도 있었지만 계속 오믈렛 같은 것만 먹기도 좀 질려서, 지난 호텔에는 없던 메뉴들로 골라봤다. 잼 코너에 특이하게 그린애플 잼이 있길래 요플레에 얹고, 와플에는 크림과 시럽을 뿌렸다가, savory하게 먹어 볼까 하고 베이컨을 얹었더니 크림+베이컨의 쏠리는 조합;;; 감자와 양배추 요리를 곁들였더니 먹을 만한 한 접시가 나오긴 했다. 초이스가 너무 많아도 제대로 조합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시안 코너도 만만치 않게 반찬 종류가 많아서 당최 뭘 담아야 할지 모르겠길래, 너무 로컬스러운 반찬은 빼고 일본/한국 반찬 위주로 담고....아무리 찾아도 흰 밥이 담긴 밥통을 찾을 수 없어서 초밥 코너에 가서 주먹밥을 담아 왔다. 다른 블로그에서도 본 건데, 스시 코너에 가면 쉐프가 계속 참치를 썰고는 있는데, 당최 접시에는 한 조각도 찾을 수가 없쒀!!! 하지만 방사능 유출 이후로는 참치와 연어에 흥미가 떨어진지라, 미련없이 채식으로 한 끼 때우기로. 김치는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고, 나머지 일본 반찬들은 대체로 너무 달고 짜서 많이 먹지 못했다.
좋은 프로슈토가 있길래 과일 코너에서 멜론을 찾아봤지만 없어서, 대체재로 쓸 수박 몇 쪽 담고....벨큐브와 견과류 좀 담으니 완전 술안주st 디저트;;; 근데 햄과 수박의 조합은 영 별로. 고기 냄새가 확 느껴진다. 아쉬운 대로 커피 한 잔 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10시 마감이니 식사를 마쳐줄 것을 알린다. 평소보다 한 30분 늦게 식사를 하긴 했지만, 1시간도 안되어 급히 일어나려니 내심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워낙에 멋진 서비스를 보여줬던 산완트 레지던스에 있다가 와서 좀더 비교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양한 등급과 컨셉트의 호텔을 쭉 돌다 보니 큰 공부가 된다. 이제 다시, 닫히지 않는 캐리어와 씨름하러 가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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