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골목 초입에 위치한 고즈넉한 북카페, '서가'.
섀리스의 공연이 있던 날, 악스홀이 있는 광장동으로 향했다. 평생을 서울의 서편에서 살아온 내게, 광장동은 참으로 익숙하지 않은 동네다. 가는 길에 무심코 검색을 해보니, 작은 거리에 개인 카페가 올망졸망 10여 군데가 모인 일명 '카페 골목'이 있다고. 공연 시간보다 조금 일찍 카페 골목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광나루역 1번 출구를 나서 코너를 돌아 접어드는 골목 입구부터, 예쁜 북카페가 나를 반긴다. 예감이 좋다.
유럽 빈티지 풍의 멋진 빵집,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곳으로 이전 중인지 내부 철거 중.
디스플레이가 아기자기한 핸드크래프트숍. 강좌도 종종 열리는듯.
카페 골목에서 가장 멋진 베란다(?)를 가진 카페, 마루62.
카페 골목은 보통 걸음으로 20여 분이면 왕복할 수 있을 만큼 짧은 거리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빈티지한 풍경이 보물처럼 튀어나온다. 작은 카페들도 저마다 다른 장식과 개성으로 발길을 붙잡고, 핸드메이드 소품을 파는 잡화숍이나 빵집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한집 한집마다, 이 동네만의 시간의 흐름과 여유가 담겨있다. 좁은 골목에 들어찬 카페들을 하나하나 세어가면서,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뭘까 찾아보면서, 언젠가는 나만의 가게를 갖고 싶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나루 카페의 입구. 주택가 대문 그대로.
바삭한 바게트 샌드위치, 따끈한 매실차.
광장중학교 옆 골목에 있는 나루 카페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다. 주택가를 개조한 너른 테라스 테이블이 있는 정겨운 카페는, 언제나 단골 손님들로 북적인다. 주인 아주머님이 정답고 친절하시다. 이집의 명물인 바게트 샌드위치는 크림치즈를 베이스로 여러 종류가 있는데 심플한 맛과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다.
그날의 선택은 크림치즈+햄. 따끈하게 구워져 나온 바게트와 직접 담그셨다는 매실차는 저녁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 잘 먹고 간다는 인사를 못드리고 급히 나온 게, 지금도 맘에 걸린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골목 속에 위치한 카페 데이지. 좋은 원두를 사용한다는 안내판을 거리에 놓아뒀다.
카페 데이지가 있는 골목에는 이렇게 오래된 헌책방도 숨어있다.
이상하게도, 광장동 골목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풍경을 자꾸만 보여준다. 서울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진짜배기 빈티지랄까. 그 풍경을 간직하면서 여유 넘치는 카페 문화와 함께 공존해가는 모습이 소중하고 부럽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온통 체인 카페 투성이에 대형 멀티플렉스 쇼핑몰이 앞다투어 생기면서 점점 더 삭막해져만 간다. 대형 카페와 마트, 쇼핑몰로 개성을 잃어버린 서울의 회색 풍경 속에서, 오후 햇살을 함께 했던 광장동에서의 짧은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또 산책 떠나고 싶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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