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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맨틀에서의 둘째날. 사실 딱히 뭘 보겠다고 결심하고 온게 아니기에 아침 일찍 시내로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걷다보니 프리맨틀 감옥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유명 관광지는 되도록 피하자는 게 나의 생각이었지만, 이곳에 가면 왠지 인공도시만 같던 서호주가 조금 더 가슴 깊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마침 감옥 입구에 도착할 즈음 몇몇 동양 아이들이 입장하는 걸 보고 반가웠는데, 알고 보니 일본인이다.
앞서 입장한 일본인 애들이 일본어 통역기를 받아들길래, 나도 대뜸 한국어 통역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큼지막한 검은 기계를 내민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기는 하는가보군. 입장과 동시에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야 한다. 투어 시작까지 한 10분의 여유가 있었다. 감옥과의 첫 만남. 사실 우리나라의 감옥도 서대문 형무소 정도만 가봐서 생소하긴 하다. 왠지 옛날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빛 바랜 벽, 그리고 너무나 대조적으로 맑게 빛나는, 프리맨틀의 하늘.
드디어 철문이 열리고 프리맨틀 프리즌의 가이드 투어가 시작된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가이드 분은 시종일관 유쾌한 멘트로 투어를 주도하신다. "이렇게 날씨 좋은 월요일 아침부터 우중충한 '감옥'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유머러스한 첫 인사와 함께. :) 커다란 한국어 통역기를 귀에 대고 있는 어리버리한 내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 2~30여명이 빙 둘러가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는데, 대부분은 영국을 포함한 잉글랜드 대륙쪽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이곳에 이주해왔던 흔적이 여기만큼 적나라하게 남아있는 곳도 드물긴 할 것이다.
위 사진은 프리맨틀 감옥 안의 벽에 그려진 죄수들의 벽화다. 운동장 외벽에 그려져 있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점차 손상되고 있어 사진 플래쉬를 터트리지 말라는 주의를 준다. 전쟁 포로들의 애환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 이곳의 벽화는 그래도 매우 아름답고 멋지다. 150년 전에 지어진 프리맨틀 감옥은 처음에는 전쟁 포로들을 수감하기 위해 지어졌지만 이후 서호주의 보안 감옥으로 쓰였고, 수많은 죄수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감옥 내부는 당시의 열악했던 환경까지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필름 카메라를 찍을 수가 없어서 폰카로 간간히 촬영은 했지만, 이쯤해서 감옥 얘기는 마무리하기로. 사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교수형대를 만나고 나니 우울해지기까지 하더라는.
업된 기분을 타고 또다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여본다. 프리맨틀의 공짜 버스 캣은 오렌지색. 버스를 타고 프리맨틀 아트 센터 역에 무작정 내렸다. 미술관 앞 정거장이라 벌써 디자인 부터가 다른걸? 정류장 벽이 온통 그래피티로 가득차 있으니 말이다. :)
프리맨틀 아트 센터 & 뮤지엄은 그리 크진 않지만 알찬 전시물로 가득했다. 주로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고, 간간히 상설 및 특별 전시도 진행한다. 3월의 무더운 오후에 더위도 식힐 겸 한번쯤 구경올 만 하다. 특히 예쁘고 아담한 정원이 있고 야외 카페가 있어서(서호주엔 어디에나 이렇게 노천 카페가 즐비하다) 차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기엔 더없이 낭만적인 공간이다.
위에 MAN이라고 새겨진 타일 공예 작품은 이곳 아트 센터의 대표적인 유명 작품인데, 정원 뒷뜰에 야외 전시되어 있다. 어느덧 closing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카푸치노 한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정원으로 나가본다. 마침 저 작품 앞에 의자가 있길래, 한참을 앉아서 커피와 함께 작품을 감상했다. MAN....뭘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이 물음표들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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