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의 독립에서 자산의 독립으로
직장인에서 1인 사업자로 독립한 9년 중 6~7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산(자본)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했다. 업을 먼저 자리잡게 만들면 자산은 자연히 따라온다고 믿었다. 물론 개인이 기업에 소속되는 상태 만큼의 퍼포먼스를 따라잡기 까지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돈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할 핑계가 되진 못한다. 사업을 한다면서도 세금과 비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돈은 무조건 아껴야 하고, 빚은 지면 큰일나는 줄만 알았다. 30대 내내 호기롭게 지구를 몇 바퀴 돌았던 열정 만큼이나 돈 공부도 부지런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어쨌든 사업은 천천히 성장했고, 팬데믹을 기점으로 나의 직업적 역할은 기업 강의에서 산업 전반의 교육으로 확장되면서 매출도 빠르게 안정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인생의 다음 스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의 독립은 했으니 이젠 자산의 독립을 해야 했다.
십 수 년 이상 얹혀 살았던 전셋집이 만기일이 다가왔고, 이사는 무조건 해야 했다. 때마침 부동산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전세로 옮겨가서 상황을 기다리자니 전세 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커졌고, 집을 사자니 금리도 시장도 최악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지식과 경험마저 전무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집만 보러 다니기를 1달 여가 흘렀을 즈음, 내가 디딤돌 대출 대상자이고 올 해가 지나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경기가 워낙 안좋다 보니 원하는 지역에 급매가 조금씩 나오고 있기도 했다. 이런게 '온 우주가 집을 사라'고 돕는 건진 모르겠지만 조건에 맞는 매물을 찾았고, 수많은 서류 뭉텅이를 뽑아 뛰어 다니면서 두어 달 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집 주인이 되어 있었다.
#더 많은 여성 '오너'가 탄생해야 한다
역시 한국 부동산 바닥은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인식과 고정관념도 대단히 깊다. 나이 지긋한 부동산 중개사들은 여지없이 나를 '사모님'이라 불렀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온전히 내 힘으로 번 돈으로 내 집을 사는 건데도, 단지 여성이고 나이가 많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졸지에 누군가의 돈으로(또는 합쳐서) 집을 사는 것처럼 인식되는 게 우스웠다.
'사모님' 류의 낡은 인식은, 같은 복도에 사는 할머니의 오지랖에도 적용된다. 이사오던 날 대뜸 열려있는 집에 들어와서 약간의 호구조사를 하고 가신 할머니는, 엊그제 엘베 앞에서 마주치자마자 '새댁'이라는 정체불명의 호칭을 쓰며 온갖 사생활을 묻는다. 문득 이삿날 할머니가 '이 집 전 주인은 통 마주쳐도 인사를 안하더라고'라던 볼멘 소리가 떠올랐다. 전 주인이 현명한 처신을 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통쾌함도 느낀다. 온전히 자신의 힘과 성취만으로 '집주인'이 되는 여성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고 더 젊어질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나잇대와 겉모습만 보고 사모님, 새댁이라는 호칭으로 함부로 부르지는 않겠지 싶다.
초보 입장에서 집을 마련하면서 경험한 일련의 과정과 시행착오, 인사이트를 자세하게 연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들 그렇듯이 내가 처한 환경과 조건 역시 타인에게 쉽게 적용될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모든게 처음인 나에겐 힘든 일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다들 닥치면 무조건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유난떨지 않고 이 정도 선에서 갈음하고,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들 위주로 기록해 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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