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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USA

시카고 여행 Day 3. 미시간 호수의 아름다운 산책로, 네이비 피어

by nonie 2016.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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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카고가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떠나오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특히 날씨라는 변수가 여행에 이렇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새삼 깨달은 건, 네이비 피어에 갔을 때였다. 하늘과 물이 맞닿은, 아주 작은 소음조차도 없는 고요한 풍경의 곁을 천천히 걷는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분명 한 때는 번화한 항구였을 네이비 피어는, 이제 시카고 시민들이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찾는 모두의 공간으로 활짝 열려 있었다. 여행자가 되어 그들을 잠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가을, 시카고를 걷다

혼자 미국에 한 달이나 머무르겠다며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설레던 것도 잠시, 여행은 현실이었다. 지옥같은 입국심사와 캐리어 속 현금 분실로 시작된 미국 여행은 내게, 잠시라도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교훈만을 남기며 혹독한 입문식을 선사했다. 시카고에서의 처음 며칠은 호텔을 이틀마다 한 번씩 옮기며 정신없이 지나갔다. 두번째 호텔인 프리핸드에 짐을 푼 이튿날, 호텔 로비에서 맛있는 아침을 먹으며 다시금 여행을 이어나갈 기운이 조금씩 솟아나는 걸 느꼈다. 이제 이 거대한 도시의 더 깊숙한 틈새로 비집고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오늘의 행선지는, 도심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거대한 항구, 네이비 피어(Navy Pier)다. 


네이비 피어로 가기 위해서는 도심 한 가운데 흐르는 강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건축의 도시 시카고를 가장 멋지게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고층 빌딩숲 사이로 펼쳐진 넓은 강과 노랗게 물든 나무들, 그리고 코트를 벗어야 될 만큼 따뜻한 늦은 아침의 햇살. 11월 초에 20도가 넘는 따뜻한 봄날씨는 시카고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여행 전에 찾아본, 국내의 몇 안되는 시카고 11월 여행 리뷰는 죄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사진 뿐이었다. 가뜩이나 바람의 도시(Windy city)인 시카고인데 춥기까지 한다면, 강바람으로 뭐든 날려버릴 수도 있는 네이비 피어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안온한 가을날씨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커리어우먼도 있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천천히 걷는 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또한 길에는 걸음걸음마다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는데, 따뜻한 자연광 아래 책을 읽는 어르신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이 산책이 너무나 소중했던 이유는, 20~30분 동안 걷는 동안 그 어떤 것도 나를 방해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길을 걷다 보면 뜬금없이 길을 묻는 척 하면서 '도를 아는지' 묻거나, 쓸데없이 주의를 빼앗고 생각을 방해하는 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시카고같은 대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고요한 산책로가 있다는 게, 이들의 삶의 질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들의 표정에서, 그들이 앉아있는 시간에서 이미 그 답이 읽혀졌다. 










깊고 푸른 풍경이 주는 미학, 네이비 피어

원래 네이비 피어를 가기로 마음먹었던 건 날씨가 좋아서가 아니라, 예술 전시 SOFA가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찾아간 것이다. 마침 네이비 피어 입구에 도착하자 안내 간판이 씌워진 기둥이 보인다. 산책로에서 본격 호숫가로 접어드는 모퉁이다. 가을색 잔뜩 내려앉은 숲길에서 벗어나, 더욱 깊고 고요한 평화로움이 흐르는 물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진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색상인 블루를 가장 온전한 형태와 질감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 생각이 많았던 미국 여행 초반에 이렇게 평화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큰 힐링이자 행운이었다. 몇몇 조깅하는 사람들 외엔 인적도 뜸했고, 너무나 고요했다. 











이 적막한 아름다움은 길 끝에서 다시 표정을 바꾼다. 시카고의 본격 스카이라인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메인 로드로 이어지는데, 이 큰 길을 따라 멋진 보트도 줄을 서 있다. 네이비 피어가 지닌 특유의 항구 분위기가 확 사는 풍경이다. 왜 셀피봉을 안 챙겨왔을까ㅋㅋ 이런 후회를 할 정도로 경쾌하고 생동감 넘친다. 이쪽 대로변엔 관광객과 로컬도 꽤 많이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거쳐온 산책로가 일반적인 루트는 아니었나보다. 구글맵 보며 어렵사리 헤매면서 찾아오기는 했다. 도심에서 네이비 피어까지 오가는 시내버스도 있지만, 그냥 이날은 꼭 걸어서 와보고 싶었다. 대로를 따라 이어진 여러 건물 중엔 SOFA가 열리는 전시장도 있고, 식당과 쇼핑시설 등이 밀집해 있다. 내가 찾아간 11월 5일은 SOFA의 오프닝 행사만 열리고 일반인 입장은 금지되어 있어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밥이나 먹자.










빅 볼에서 먹은 꿀맛 점심

네이비 피어에는 레스토랑도 많고 캐주얼한 푸드코트도 있어서 편하게 점심을 골라 먹을 수 있었다. 특히 도심에 있는 아메리칸-차이니스 레스토랑 빅 볼(Big Bowl)이 '익스프레스' 버전으로 들어와 있어서,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서 바로 주문 완료! 매콤하게 볶아낸 줄기콩과 캐슈넛, 치킨과 흰 쌀밥의 만남! 너무 맛있었다. 함께 주문한 음료는 브루클린에서 건너온 진저 에일 한 병. 쌉쌀하게 씹히는 생강과 희미한 단맛의 조화, 좋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곤 다시 돌아가는 길엔, 버스를 타고 밀레니엄 파크 앞에서 내려 간단히 쇼핑을 했다. 내일은 주말 마켓에 가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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