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여행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정은 역시 숙소였다. 1주일간 묵을 숙소는 두 곳으로, 모두 레지던스(키친을 갖춘 아파트먼트 룸)을 빌렸다. 그 중 첫 번째가 상하이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티크 레지던스 "차이 리빙"이다. 에어비앤비에서 이 숙소를 발견하고 한눈에 매료되어 바로 예약을 시도했고, 운좋게도 이 곳에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상하이의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낡은 빌딩의 깊숙한 곳에 비밀의 방을 만들어 놓은, 얄밉도록 멋지고 모험적인 호텔리어에게 경의를 표하며, 우선 숙소 소개를 중심으로 한 첫 번째 상하이 이야기.
바닥에 거꾸로 씌인 E.B는 임뱅크먼트 빌딩의 약자다.
Embankment Building
1935년에 완공된 임뱅크먼트 빌딩은 건축물 자체가 상하이의 근대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미국인들이 상하이에 정착했던 1930~40년대에 고급 호텔로 쓰이기도 했고, 지금도 이 지역(훙커우)의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다. 그런데 온라인 상에서 봤던 고급스러운 객실이 있기엔 너무나 낡고 허름한 건물이어서, 처음에는 진짜 여기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랐다. 흡사 홍콩의 청킹맨션을 연상케 하는 외관과 내부 복도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유럽의 혁신적인 디자인팀 '차이 리빙(Chai Living)'은 이 건물이 현지인의 것이 되도록 그대로 남겨 놓고, 몇몇 방을 완벽하게 개조해 5성급 호텔 서비스를 개별로 제공한다. 스위스에서 호텔학을 전공한 호스트 피가리는 차이리빙 팀의 일원으로, 오늘은 나를 위해 옆 건물의 갤러리(골동품을 전시한 멋진 갤러리로, 역시 차이리빙에서 운영한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하이의 더운 날씨에 녹초가 된 내게 시원한 물을 건네며, 내가 묵을 방을 차분하게 안내해 주었다.
The Room
처음엔 너무나도 낡은 건물에 실망을 넘어 으스스함마저 느낄 무렵, 카드키로 방문을 여는 순간 "wow!" 이럴 수가.
그동안 정말 훌륭한 디자인의 호텔 객실은 많이 만났다. 하지만 이렇게 반전을 안겨주는 엄청난 객실이라니. 게다가 인테리어 곳곳에 모던한 상하이의 정체성이 세련되게 담겨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객실 디자인은 감격 그 자체. 게다가 어찌나 방이 넓고 쾌적한지. 탁 트인 창 밖으로는 황푸강 전체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동방명주 타워를 포함한 상하이의 백만불짜리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앞으로 이 곳에 묵는 이틀간, 숙소를 나서는 게 너무나도 힘들 것 같다.
The Loft
원래 이 객실은 최대 3명까지 묵을 수 있는 방이다.(그래서 2백불이 넘는 객실료도 따지고 보면 합리적이라는) 메인 베드 외에 입구 쪽 좁은 계단을 오르면 아늑한 2층에 침대가 하나 더 마련되어 있다. 호기롭게 혼자 이 방을 통째로 빌리는 바람에 2층 침대는 아쉽게도 주인을 못 만났다만. 2층에서 내려다보는 이 객실은 정말, 볼수록 감탄이다. 방의 넓이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복층 설계도 완벽하다. (복층 밑부분은 옷장이라서, 언뜻 보면 2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Amenities
방에 들어서면 은은한 향이 알듯 말듯 풍겨나오는데, 아마 곳곳에 놓인 티라이트 초들의 효과일까. 방에 들어설 때마다 마치 스파룸을 연상케 하는 편안함을 안겨 준다. 욕실에 놓인 바얀카라의 목욕용품은 론리플래닛도 소개된 유명한 자연주의 로컬 브랜드다. 작지만 모든 것을 갖춘 욕실과 키친도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우선은 여기까지.
게다가 거실에 설치된 오디오 시스템은 아이폰과 연결하는 순간 방 전체를 내가 좋아하는 트랙으로 묵직하게 감싸준다. 이건 그동안 호텔방에서 아이폰 덱이나 어설픈 스피커로 들었던 그런 소리가 아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디오에 빠지 나 싶다. 이번에 발매된 사라 맥라클란과 나탈리 머천트의 신보를 깨알같이 아이폰에 담아온 보람이 있구나. :)
PM/AM
사람들은 상하이에 오면 야경을 보기 위해 열심히 전망대를 찾아다니고 고급 스카이바에 자리를 잡느라 바쁘다. 하지만 좋은 숙소를 만나면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차이 리빙에서 내게 선사한 방은 상하이 최고의 야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채널을 크게 틀어놓고, 무료로 제공하는 미니바에서 차가운 칭따오 맥주를 꺼내 야경을 바라보는 매일 밤은 축복이었다.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상하이에 왔는데, 이곳의 야경과 최상급 침대 덕분에, 서울에서 극복하지 못했던 시차로 인한 지독한 불면증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여독을 여행으로 풀다니, 내 신세도 참..;;
전날 저녁에 미리 방으로 배달해 주는 아침식사 바스켓 역시 귀여운 센스 투성이...ㅠㅠ 지루한 호텔 뷔페와는 그 감동이 비교가 안된다. 신선한 요거트와 우유, 오렌지 주스, 나무통에 가득 든 뮈즐리와 생달걀, 사과, 빵(빵 종류는 매일 달라짐), 견과류 바 등. 부엌에서 달걀만 간단히 조리하면 푸짐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차이리빙에서는 장기투숙이든 단기든 첫 3일간만 이러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고 한다.
Identity
차이리빙의 컨셉트를 완전히 이해하고 나니, 이 낡은 건물조차도 점점 좋아졌다. 지금은 비록 스러져가는 빌딩이지만, 한때는 화려한 시간을 누렸기에 이런 전망과 위치를 선점한 것이겠지. 다리만 건너면 상하이의 중심 와이탄(Bund)이고, 창문 밖으로는 황푸강이 내다보이는 환상적인 입지조건 말이다. 어째서 고급호텔에 일하며 편하게 살 수 있던 유러피안들이 허름한 건물로 와서 실험적인 레지던스를 운영하는지, 이틀간 묵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한국인들의 정서에 두루 맞을만한 곳은 아니지만, 로컬 정서와 부티크 호텔의 결합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면 강추한다. 알고보니 차이리빙은 론리플래닛 상하이 편에도 여러 번 언급된 유명한 숙소였는데, 에어비앤비가 아니었다면 이런 귀중한 경험을 놓칠 뻔 했다. 언제나 내가 주장하듯, 숙소가 때론 여행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에서 묵었던 차이리빙의 레지던스 전체 객실을 보려면, https://www.airbnb.co.kr/s?host_id=3047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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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비앤비는 현재 글로벌 캠페인 "에어비앤비 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nonie를 포함한 전 세계의 선택된 여행자들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색다른 숙소에 머무르며,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다!'라는 슬로건으로 흥미로운 여행 스토리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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