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상하이에서 커피 걱정을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상하이에는 2014년 5월 기준 256개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3번째로 스타벅스가 많다는 의미다.(물론 1위는 단연 서울. 뉴욕보다도 많은 게 정상인지;; 다음 기사 참조)
세계적인 커피 체인이 유난히 많은 상하이를 걸으며 문득, 스페셜티 커피와 독립 카페 시장은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했다. 숙소가 있는 난징시루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인 MQ Coffee Lab, 바리스타가 추천해준 Seesaw Coffee에 차례로 들러 윈난산 드립 커피를 맛보았다. 커피 향기 너머로 바라본 상하이의 또 다른 모습.
미니멀한 인디 커피숍, MQ Coffee Lab
난징시루의 켐핀스키 아파트에 머무는 동안, 열심히 내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찾아봤다. 취향이라 함은 "1. 빅 체인이 아니어야 하며 2.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거나 로스팅숍에서 공급받아야 하며 3. 디저트보다 원두커피 자체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 등이다. (나만의 이 필터링 기준은 전 세계 어느 도시에 가든 똑같다ㅎㅎ) 그리하여 포스퀘어에서 어렵게 찾아낸 MQ 커피랩은 숙소에서 도보로 15~20분 거리. 가깝진 않지만 슬슬 걸어서 가볼 만 했다.
카페가 위치한 펭시안루(奉贤路)는 화려한 난징시루의 안쪽이어서, 의외로 고즈넉한 로컬 동네를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있다. 길 끄트머리에 카페가 있는데 생각보다 작아서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덕분에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에 꽤 좋은 타이밍이다. 문을 열자 바리스타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매장 내에는 바 형태의 좌석과 아주 작은 테이블 두어 개. 몇 평 안되는 작은 규모의 카페로 주로 테이크아웃을 위주로 하는 듯 했다.
어느 카페에 가든 원두의 맛과 신선함을 느껴보기 위해 필터 커피(핸드드립)를 우선 주문하는데, 역시 상하이 카페 답게 윈난(Yun Nan)산 원두가 있어서 고민 없이 주문을 완료했다. 가격도 윈난 커피가 제일 저렴한 26위안.(한화 5000원 대) 사실 상하이가 물가가 아무리 비싸다지만 특히 커피값은 어딜 가도 후덜덜하다. 어쨌든 전부터 궁금하던 중국의 커피 원두, 과연 맛이 어떨지 사뭇 궁금해진다.
차분히 커피를 내려주는 바리스타에게 양해를 구하고 찰칵. 그녀의 개인 취향인지 랜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머무는 내내 한국 최신가요ㅋㅋ가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뒷편 벽에 걸린 수료증 액자를 가리키며 "우리 사장님이 한국에서 커피를 배웠어요"라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그녀가 영어에 서툴러서 이 카페 주인이 한국 사람인지, 한국에서 커피 과정을 수료하고 와서 이 카페를 차린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되진 않았다. 여튼 반갑기도 하고, 상하이에서 어렵게 스페셜티 카페를 찾았는데 결국 기술은 한국에서 배워온 거라니 약간 김이 빠지기도 하고.ㅎㅎ
처음으로 맛보는 윈난 커피의 맛은, 무게감 없는 라이트한 향과 맛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아프리카나 남미 커피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고, 평소 미디엄 이하의 로스팅에 익숙하다면 꽤 입맛에 맞을 수도 있겠더라. 맛있게 한 컵을 비워내고 그녀에게 "혹시 여기같은 로스팅 카페를 추천해주실 만한 데가 있나요?"라고 물으니 친절하게 한자와 영어로 주소를 적어 주었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른 카페를 만나게 되었다.
상하이 카페의 현주소, Seesaw Coffee
다음날 아침, MQ의 바리스타가 적어준 주소를 들고 다음 카페로 향했다. 난징시루에서 걸어갈 수 있는 MQ와는 달리, Seesaw는 징안사 역에서도 한참을 걸어야만 해서 일반적인 상하이 자유여행 코스에는 넣기 힘든 위치였다. (포스퀘어 상세정보는 링크 참조) 커피에 대한 집념 하나로 아침부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겨우겨우 도착. 그런데 이 카페가 있는 유유안루(Yuyuan Ld)는 마치 연남동 뒷길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라 역시 반전이 있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가장 묵어보고 싶은 에코 부티크 호텔 URBN이 바로 이 근처여서, 여기 묵는다면 5분 거리로 가볼 만 하다.
어라. 카페 너무 예쁘다. 길가엔 Seesaw라는 간판만 있고 카페가 없어서 어리둥절하며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갑자기 햇살 쏟아지는 테라스 석부터 아늑하지만 밝은 실내석까지 들어찬 매장이 나온다. 그야말로 올바른 카페의 정석같은 풍경이랄까. 게다가 맨 구석의 넓은 자리가 비어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여기에도 윈난 커피가 있는데 가격은 약간 더 쎈 30위안.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천천히 사람들을 구경해 본다. MQ커피랩은 자리가 좁아 오래 앉아서 쉬지 못했지만, 여기는 그야말로 휴식을 위한 카페 본연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로스팅 & 트레이닝이라는 슬로건이 걸린 카페인 만큼 정기적으로 커피 클래스나 모임도 하는 듯 했다. 상하이의 로스팅 카페의 현주소를 보는 느낌. 윈난 커피의 맛은 MQ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역시 커피는 분위기로 마시는 거였던가. 편안한 자리에서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여서 한결 만족도가 높았다. 새삼 MQ의 바리스타 아가씨에게 감사를...:)
여기서 책 한권을 거의 다 읽었다. 소설가 조경란씨가 어느 잡지에서 '중국 여행을 앞두고 읽은 책'이라며 강력 추천한 미국 소설 '칸지의 부엌'. 짐 무게를 무릅쓰고 이번 여행에 가져왔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다. 평소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내가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으로 뚝딱 읽어버렸다. 중국계 미국인 셰프와 미국 푸드 에디터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음식이 지닌 치유의 힘을 얘기하는 기분 좋은 스토리. 글쓰는 여자의 로맨스라 너무 감정이입을 했나ㅋㅋ 어쨌든 중국 요리에 대한 배경지식도 많이 소개되니, 상하이와 베이징으로 자유여행을 떠난다면 강력 추천하는 책. 중국여행에 앞서 읽을 만한 책은 기회가 되면 따로 소개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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