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정의.
지난 번에 쓴 "여행 일정에 대한 단상" 관련 글을 한 SNS에 링크로 소개했더니, 다양한 의견이 댓글로 올라와서 소개 겸 내 나름대로의 생각도 한번 더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난 번 글은 아래 링크 참조.
2014/04/22 - 타인의 여행 코스, 얼마나 참고하시나요? 여행일정에 대한 단상
이 글의 요지는 여행일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은 여행일정의 문제점과 자유여행 코스가 대중적인 관광지(가이드북) 중심으로 편중되는 지금의 여행문화가 안타깝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 글에 생각보다 다양한 의견이 달렸다. 평소 꼼꼼히 여행 일정을 짜는 편인데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는 의견부터, 여행 일정의 필요 여부는 여행의 목적이나 기간에 따라 다른 문제라는 댓글도 있었다.
댓글 1. @queseramian 여행의 3요소는 1.여행자금 및 준비물 2.여행 계획 짜기(그 시간) 3.본 여행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가 짜준 일정으로 여행가는 거 결사반대입니다ㅠ
댓글 2. @Jinlin 여행지에서 헛되이 돌아다니다 시간을 허비할까 항상 꼼꼼히 계획을 세우는 편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친구와 두 번 자유여행을 다녔는데 취향이 맞지 않으니 힘들었어요. 무조건 맞춰주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그래서 이젠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는게 더 좋아요^^ 맞춰주지 않아도 되고 내가 쉬고싶을때 쉬고 나 자신을 위한 여행이 된거죠. 다만 조금 외로워 혼잣말하고 다닌다는 것 뿐...ㅡㅡ;
댓글 3. @humbles 준비한 만큼 즐길수 있지 않을까요. 기간은 곧 비용이니까 정한 기간 안에 보고싶은 것을 보기 위해선 어쩔수 없을 듯 합니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시행착오가 있으니 사전에 최대한 불안요소를 줄이는게 좋겠죠. 여행의 목적이 관람인지 휴식인지에 따라 다르고, 나라별 머무는 기간에 따라 다른 문제인것 같아요. 파리에 하루 머물고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면, 계획없인 안되겠죠. 만약 파리에만 일주일 있겠다면 다르지만, 그건 또 곧 비용문제로 직결되니... 어느 정도의 계획은 필요하고, 구체적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치밀하겐 말구요.ㅎ
여행일정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는 이유는, 한국의 자유여행 시장이 '귀찮지? 일정은 내가 대신 짜줄게'라는 새로운 틈새산업으로 편중되고, 이를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가이드북과 온라인 서비스가 우후죽순으로 번져가는 현상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뻔한 관광지를 엮어서 패키지보다 더 진부한 일정을 짜놓고 "여긴 왜 이렇게 한국인이 많아?"라며 서로 외면하는 웃지못할 여행을 '자유여행'이라 일컫는 게 지금의 해외여행 문화다.
특히 휴가일수가 매우 짧은 한국의 직장인은 3번 댓글처럼 여행을 계획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간과 비용이 한정되어 있으니 최대한 뭐라도 짜서 가는게 좋다"는 것이다. 3번 댓글에도 "개인의 취향"은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3번처럼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정한 기간 안에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할 때, 보고 싶은 것은 가이드북에 소개된 관광지를 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파리 여행 일정'으로 구글 검색 결과. 참 재밌는건, 파리에서 이렇게 철저한 일정표를 들고 여행하는 학생들이 종이지도 한장 들고 길을 엄청 헤매고 다닌다. 스마트폰은 먹는 건가요...
왜냐면 파리에 단 하루를 머문다면 계획 없이는 안된다는 말은 결국 '동선'(관광지를 위한)을 짜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들이 보는 건 다 봐야 한다'는 본전 생각이 취향 문제를 압도하는 게 현실이다.(한국에서 패키지여행이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이러한 생각은 2번 댓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간을 허비할까봐 계획을 짠다'는 것이다. 여행에서의 시간 허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동안의 여행에서 내가 배운 한 가지는, 일정을 빡세게 짠다고 해서 길을 헤매지 않는 게 아니라, 현지에서의 대처 요령이 쌓이고 쌓여서 헤맬 길도 좀더 쉽게 찾고 의외의 사건에도 유연해진다는 것이다. 여행은 우리의 삶과 똑같다. 지름길이나 왕도가 없다. 아무리 치밀하고 빈틈없이 여행을 계획해 왔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하면 길을 헤매거나 시행착오를 겪기 쉽다. 그것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근데 우리는 그것을 선뜻 용납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만큼 한국인의 현실에는 여유가 부족해서일게다.
그래서 1번 댓글과 같이 나만의 여행 일정을 짜는 시간도 여행에 포함된다고 여기는 여행자가 아직은 많지 않다. 요즘 여행 출판 업계에서는 코스북의 유행은 살짝 지나고 '머무는 여행'을 새로운 트렌드로 보는데, 아마도 이러한 반동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2번 댓글에도 살짝 보이지만 값싼 항공권과 파워블로거 일정으로 몇 차례 씁쓸한 자유여행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여행"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과도기인지도 모르겠다.
'직장인 여행작가 과정'을 찾아오는 수많은 직장인이 다 비슷한 얘기를 한다. 여행은 맨날 가는데, 막상 글 한 줄 쓰려니 딱히 쓸 게 없다는 거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계획과 학습을 위주로 획일화된 교육을 받아와서인지, 여행도 꼭 가이드북을 공부해서 떠나려고 하고 계획표를 대충 짜면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 속에는 본인만의 특별한 취향과 테마가 반영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려면 '글감'이 있어야 하는데, 남들과 비슷한 여행을 해놓고 보니 비슷한 여행경험 밖에 쓸 게 없다. 나는 최소한 내 수업을 받는 분들은 블로그에 "면세점 쇼핑 후기"나 "한국인 입맛에 꼭 맞는 추천 맛집"같은 여행기는 안 썼으면 좋겠다. (대부분 네이버 검색으로 얻어지는 이런 류의 여행정보는 그 도시를 처음 가보고 쓰는 초짜가 대부분이라는 것. 사실 진짜 여행 고수들은 블로그에 여행기를 안 남기는 경우가 더 많다..)
원활한 이동과 안전을 위한 사전 조사와 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남이 짜놓은 여행 코스"나 "시간과 비용을 감안한 동선절약형 관광 코스"로 여행할 바에는 차라리 패키지 여행이 더 효율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이런 가이드북은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고, 여행사에서 무료로 뿌려대는 pdf 가이드북 볼 시간에 론리플래닛을 좀더 연구한다면 훨씬 더 알차고 의미있는 여행을 만들 수 있다. 기왕 수고 들이는 거, 좀더 남다르고 멋지게 짜면 좋지 않은가. 해마다 비슷한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는 개성있는 나만의 테마여행을 한번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 계획표에는 시간대 별로 관광지를 끼워넣기 보다는, 내가 꼭 보고 싶은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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