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결산, '삶과 일의 새로운 도약, 구조화에 대한 고민'
올해는 1인 기업으로 달려온지 딱 10년째 되는 해다. 올해부터는 개인적인 결산은 여느 때처럼 블로그에 남기고, 올 1년간 크게 성장한 히치하이커의 '미디어'로서의 결산은 별도로 히치하이커닷컴에 정리해야 할 듯 하다.
2023년은 개인적으로 큰 이벤트가 있었던 한 해였다. 2022년 결산,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삶과 일의 방향성을 고민하다 를 작성하던 1년 전 이맘 때만 해도, 주거에 대한 고민만 컸을 뿐 이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은 세울 수 없었다. 역시 숙제는 마감일이 닥쳐야 하는 법인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집주인이 되어 있었다. 삶의 큰 숙제를 하나 풀어낸 기분이다.
부동산 문제를 풀어가는 와중에 일적으로는 작년 매출도 뛰어 넘었으니, 나름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업의 구조화와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깊어간 한 해였다. 작년에는 삶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면, 올해는 일에 대한 고민을 미처 풀지 못한 한 해로 기록해 두어야겠다.
[올 해의 성장] 삶과 일의 새로운 도약
올해의 성과는 '유튜브 채널의 성장'을 단연 첫 손에 꼽겠다. 작년에도 사업적인 성과는 나름 좋았지만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은 출발선상일 뿐이었다. 1년 전 유튜브 구독자는 고작 1천 명 남짓이었고, 이대로 '수익화' 채널 전환이나 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하지만 올 초에 소비자에 타겟을 맞춰 콘텐츠를 바꾼지 단 6개월 만에 1만을 찍더니, 3개월 후 2.6만을 넘어가고 있다. 큰 채널들과 비교하면 얼마 안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운영하는 1인 미디어로서는 값진 성과다. 무엇보다 여행산업의 숨어있던 구조적 문제를 알리는 데 집중한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서 기쁘다.
메인 업인 교육업의 경우, 상반기 매출 대부분이 B2C 강의인 것 또한 큰 변화다. 팬데믹 3년간 뛰어든 관광업 종사자 대상 교육은, 정책 방향이나 외주업체 선정에 따라 변동성이 많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여행시장이 살아난 올해부터는 소비자 강의(+유튜브)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고, 많은 기관의 인문학 과정을 맡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기업 강의(B2B)와 산업 종사자 교육(B2G) 매출은 작년보다 감소했기 때문에, B2C를 미리 대응했던 전략이 주효했고 결과적으로는 연간 매출을 작년보다 상승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게 1인 기업 최대의 장점이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연간 결산을 작성한 이래 가장 큰 도약인, 주거 마련의 숙제를 풀었다. 물론 서울이 아닌 경기도이긴 하지만, 서울과 거리 상으로 너무 인근인데다 KTX/국내선 출장이 잦은 내겐 지리적 여건은 더 좋아졌다. 무엇보다 정책 대출 대상자이자 올해까지만 조건을 맞출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사실 좀더 일찍 이뤄낼 수 있었던 거였고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안정된 삶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올 해의 아쉬운 점] 아직도 이루지 못한, 업의 구조화와 확장
유튜브 채널의 성장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일단 유튜브 세계의 수익모델은 '직접 광고 수주'인데, 아직 광고나 협업 제안이 미미하다. 더 낮거나 비슷한 구독자 규모로도 광고를 받는 채널이 많으니, 결국 채널 확장성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단순히 수익 문제를 떠나, 멤버십과 같이 커뮤니티와 운영 지속성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구조화가 숙제다.
올해는 메인 업인 강의가 오히려 많은 각성과 아쉬움을 안겨준 분야다. 1인 기업이 프리랜서와 다른 점은, 대체 가능한 기술 용역이 아니라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어 공급하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여행산업 교육의 경우 컨설팅과 심사 등으로 확장하면서 나름의 포지션을 만들었지만, 외부 섭외 및 용역 비중이 너무 크다. 외부의 일방적 취소나 변경 등에 일정과 매출이 좌우되는 걸 관성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지금도 가치와 단가를 많이 높였지만, 내년에는 더욱더 일을 선별하고 자체 매출 비중을 높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작년에도 고민이었던, 미디어 영향력을 글로벌로 확장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팬데믹 이후 첫 해외 출장으로 ITB ASIA 싱가포르에 다녀왔지만, 아직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내년에도 수많은 업계 행사가 열릴텐데, 온전한 미디어도 인플루언서도 아닌 지금의 포지션으로 무엇을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감이 안온다. 이제 시작한 영어권 포스팅과 네트워킹을 성실하게 이어나가면서, 기존의 길이 아닌 아예 새로운 길을 뚫어야 할 것 같다. 글로벌에서도 스피커가 되고 싶은 목표를, 내년은 아니더라도 꼭 이뤄내고 싶다.
개인 삶의 가장 큰 아쉬움은 오프라인 경험의 부족이다. 여행이나 독서와 같은 새로운 인풋의 부족 뿐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를 전혀 확장하지 못한 것도 포함한다. 작년과 달리 올해에는 커뮤니티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했고 밋업도 2회 밖에 열지 못했다. 그나마 뉴스레터와 유튜브로 '발신'은 해왔지만,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개척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혼자 일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고민을 풀수 없으니 선택의 시간도 길어지고, 결국 효율이 낮아진다.
[올해 배운 점] 배운 것과 영감을 얻은 것
지난 3월, KBS 대전의 저녁 라디오에서 여행지에 대한 음악을 선곡할 수 있다는 말에 출연을 수락했다. 그렇게 한 달치 방송을 녹음하러 방송국에 갔다가, 무려 10개월째 총 40여 곳의 여행지와 그 곳의 음악을 소개해오고 있다. 지난 20여 년의 내 여행을 도시별로 복기하는 과정에서, 나의 해외여행이 어느 순간 안전지향적으로 굳어져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새해에는 내 세계의 틀을 깰 수 있는 여행 경험을 좀더 세심하게 짜야겠다고 느꼈다.
매주의 선곡을 하는 과정에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 대중음악에 여전히 호기심이 많다는 걸 느꼈다. 내년에는 뮤직 투어리즘에 대해서도 좀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나는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에 좀더 특화되어 있고, 일의 보람도 느낀다는 걸 발견했다. 소비자 우위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행업계는 낡았고 비대하며 소비자의 문제의식과는 동떨어진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 사이에서 여행의 혁신이 벌어지는 지점을 분석하는 산업 전문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되, 인문학과 전공인 경제학을 더해서 업계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더 잘하고 싶다.
라이프스타일 면에서 올해의 취미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내 집이 생기면서 식물을 많이 들여놓은 것이다. 국립농업박물관의 식물 클래스를 비롯해 지자체에서 여는 무료 교육만 잘 이용해도 집안 가득 식물로 채울 수 있다. 목공 교실에 가서 화분을 놓을 3단 선반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올해는 관엽 식물을 많이 데려왔는데, 내년에는 허브 위주로 좀더 많이 키워볼 생각이다.
또 하나는 중고샵 옷 쇼핑의 재미에 빠진 것이다. 원래도 좋아했던 일이지만, 올해는 새 옷 사지 않기라는 목표를 지켰다. 동시에 입지 않는 옷들도 기부하고, 소재 좋은 빈티지 옷들 사러 다니는 즐거움이 생겼다. 심지어 쿠알라룸푸르에서도 드리프트(thrift) 숍을 일부러 찾아서 들락거렸을 정도다. 이 취미는 내년에도 쭉 계속 될 듯 하다.
[내년의 목표] 더 단단하게, 더 멀리
가장 크고 중요한 목표는 ‘업의 외부 종속화’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닷컴 및 뉴스레터와 유튜브 채널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콘텐츠 비즈니스를 확장해서, 자체 매출의 비중을 높이는게 큰 목표다. 이 구조화가 잘 될수록, 외주 의존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유료화 멤버십을 통해 질높은 콘텐츠를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단순한 인플루언싱이 아니라, 기존 여행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고 변화를 일으키는 데 일조하는 미디어이자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개인적인 목표는 새로운 인풋을 늘리는 것이다. 특히 내년에는 여권을 자주 꺼내는 해로 만들려고 한다.
다만, 올해 다녀온 싱가포르와 쿠알라룸푸르 모두 이전에 다녀온 도시에 속한다. 2024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가본 여행지 또는 여행 형태(크루즈 등)를 의도적으로 택할 것을 큰 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돌고돌아 '외주'를 줄여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돌아온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창출하는 매출을 늘려서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로워지는 한 해로 만들고 싶다. 벌써부터 2024년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