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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스릴러 40주년 다큐멘터리 비공개 상영회에 다녀와서, 소회

nonie 2022. 11. 3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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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소식을 보고,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예약해 티켓을 확보한 나...아직도 덕후의 피가 남아있어 다행이다.



드디어 시간이 흘러 바로 오늘, 스릴러 40주년 다큐 상영회를 다녀왔다. 일에 파묻힌 올 해, 얼마만의 문화생활인가@.@

근데 냅다 신청만 해놓고 뒤늦게 알게 된 건, 이 다큐는 추후 영화 개봉이나 OTT 방영 계획이 없다는 거였다. 오직 마이클 잭슨 재단과 소니뮤직이 스릴러 발매 4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8개국에서만 개최한 비공기 상영회였고 자막도 영어로만 볼 수 있었다.

다 보고 나니 더욱 납득이 안간다. 이렇게 돈을 많이 들인 고퀄 다큐를 아무데서도 방영을 안한다고??? 이 다큐는 스릴러 당시 참여한 수많은 뮤지션과 댄서, 메리제이 블라이지와 어셔를 비롯해 마이클 잭슨에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까지 폭넓게 인터뷰한 다큐이고, 음악적인 재미도 컸다.

일단은 다시 못볼 수도 있는 다큐라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서, 새롭게 알게된 몇 가지 사실을 잊기 전에 남겨두기로. 하지만 한국어 자막으로 꼭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마이클이 Off the wall로 첫 독립을 하기 전에, 커리어에 대해 큰 고민이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14~16세에 외모의 변화를 겪으면서 잭슨 파이브로서의 상품 가치(귀여움)가 없어져 홀대받은 사실은 몰랐다. 마이클은 어떻게든 자신을 입증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였던 것.


- 마이클은 언론에 의해 주로 소극적인 성격이 부각됐지만, 커리어에 있어서는 대단한 비저너리이자 야심가였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가 된 건 그냥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처음부터 주입한 목표이기도 했다. 그래서 첫 솔로 앨범이 올린 수백만 장의 판매에도 매우 실망했고, 두번째 앨범(스릴러)에서는 크로스오버를 통해 백인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공을 들인다. 또한 9곡의 수록곡 모두를 히트 싱글로 만들고 싶다는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 빌리진의 문워크는 뮤비 출시 당시에는 없었고, 이후 모타운 쇼에서 첫 선을 보인 무브였다. 그런데 그 무대는 그날 쇼의 마지막 무대가 아니었다는 것도 웃겼고(그 뒤에 나온 가수들을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ㅎㅎ), 잭슨 파이브 시절 히트곡을 선보이고 형제들이 다 들어간 후 ‘하지만 전 새 노래가 좋아요’라는 일종의 선언적인 메시지 뒤에 나온 춤이라는 건 몰랐다. 그만큼 그날의 춤은 어린 시절의 커리어를 벗어나 완전하고 독보적인 팝스타로 독립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무대였던 것이다.


- 첫 펩시 광고에 대해서도 자세히 잘 몰랐었는데, 마이클은 당시 광고 계약을 원하지 않았다. 남의 브랜드를 위해 광고 행위를 하는 것도 내켜하지 않았고(그 스스로가 브랜드이므로), 더 웃긴건 펩시를 안 마셨다는ㅋㅋ 그래서 3초 이하로 노출하고 펩시 캔을 쥐지 않는 조건으로 광고 계약을 맺게 된다.


- 하지만 이 다큐 전반에서 가장 충격적인 비하인드는 바로 이 펩시 스토리부터 시작된다.
펩시 광고를 찍은 이유는 투어 스폰서로 퀘이커스 오트와 경합을 벌였던 펩시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고, 그 투어는 마이클이 원하는 솔로 투어가 아니었다. 마이클의 삶 전반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쳐온 아버지 조가 마이클의 인기에 편승해 형제들을 밀어넣은 형태의 투어를 기획한 것이다. 마이클은 거절하려 했지만, 가족을 위해 결국 옛날 히트곡을 형들과 함께 부르는 레퍼토리를 넣은 어정쩡한 투어를 하게 된다.


- 게다가 펩시 광고 촬영장에서 큰 무대장치 폭발이 일어나 마이클의 머리 위로 떨어져 화상을 입은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 사건이 준 몸과 마음의 상처가 그토록 컸다는 건 몰랐다. 당시 가까운 사이였던 브룩 쉴즈가 증언했듯, 그 사건은 마이클의 심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화상을 깊게 입은 두피 부위에는 이후 머리가 자라지 않았고, 그 때부터 마이클의 시그니처인 모자를 쓰게 된다. 물론 모자가 그를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긴 했지만, 외모에 대한 강박의 여러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 그렇게 시작된 스릴러, 아니 빅토리 투어는 예상대로 마이클 잭슨의 원맨쇼에 가깝게 흘러간다. 이미 잭슨 형제들은 팝 아이콘이 되기 시작한 마이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역량 차이가 있었고, 당연히 관중들도 마이클의 개인 히트곡에 훨씬 더 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공연 프로모터들은 투어 티켓을 4장씩 묶어 팔면서도 복권 형식으로 자리를 보장하지 않는 신박한 사기수법(...)으로 표를 판다. 한 팬이 보낸 편지를 통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그는 통해 투어 수익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게 된다.
그렇게 수십 도시의 투어를 자신의 몫 하나 없이 헌신적으로 마치고 마지막 LA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형제들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털어놓는다. ‘이 공연이 투어의 마지막이자,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마지막’이라고.


- 마이클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완벽하게 독립했다고 여겨진 스릴러 때도,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전미 투어에서는, 실패했다. 그래서 스릴러는 마이클이 가장 많이 판 앨범인데도, 유일하게 월드 투어를 보유하지 못한 앨범이 되었던 것이다. 하아...세상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홀로 온전히 서기 위해 투쟁했다. 그 투쟁,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큐로 만날 수 있어서 새롭고도 행복했던 시간. 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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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우상, 마이클 잭슨을 보내며

아직 서거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연달아 이어지는 좋지 않은 소식에 2009년이 원망스러워진다.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줄 것만 같았던, 네버랜드의 피터팬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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