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콜버트 전시, 풍자라기엔 너무 진지하게 상업적인
메가 팝아트 아티스트, 랍스터로 유명한 필립 콜버트 전을 다녀왔다. 5월 2일 끝나는 전시라서 막을 내리기 전날에 부랴부랴 갔더니 역시나 엄청 붐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주말을 피해 한가한 시간에 갔겠지만, 이 전시는 전시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패턴을 관찰하려고 간거라 오히려 더 좋았다.
아티스트의 부캐라는 '랍스터'는 백남준 헌정 작품이라는 비디오 아트는 물론 평면부터 조각, 설치물, 미디어아트, 심지어 컴퓨터 게임으로도 구현되어 있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이 들리는 전시였는데, 애초에 작가의 의도가 관람자(소비자) 머리 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놓고 촬영을 위한 전시 답게 사람들이 촬영을 더 많이 할수록, 아트를 향한 인간의 허영을 만족시켜줄수록 작가는 더 빨리, 더 많이 유명해진다.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세계관이었다. 일반적으로 창조된 캐릭터는 어떤 이야기를 갖기 마련인데, 랍스터는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역할만을 할 뿐 특정한 스토리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관람자가 랍스터에 감정적으로 동일시되거나 의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돈과 명품이 함께 등장해 자본주의를 표현하거나, 코로나 바이러스를 묘사한 녹색 괴물과 싸우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UubOpll79so
특히 메타버스로 구현한 랍스터 월드에 들어서면, 랍스터는 내 대신 괴물을 물리치거나 랍스터 코인을 뽑아 소비를 하거나, 게임 속에서 코인을 딴다. 이런 참여형 경험을 한 후에 평면 작품을 보면, 랍스터라는 캐릭터에 좀더 일치되거나 친숙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전시물에는 루이비통, 샤넬 등 많은 브랜드 로고가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과연 랍스터에 친숙해진 관람자들이 이런 작품을 보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할까, 아니면 대리만족을 할까. 풍자라고 하기엔 메세지 전달 방식이 영악하고 노골적이다. 철학 전공자인 필립 콜버트는, 예술 그 자체보다는 미술산업의 트렌드와 욕망의 변화를 읽고 그에 맞는 전시상품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보고 나면 가상 세계에서 만난 랍스터 마트가 실제 세계에 구현되어 있다. 아트 프린트가 40만원, 도록은 12만원이니, 랍스터월드 물가 한번 살벌하다. 이 정도면 자본주의를 풍자하려다가 그냥 본인 자신이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어버린 듯. 이 때 누군가가 내 뒤에서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이럴 바엔 차라리 랍스터를 먹으러 가는게 낫겠다!"
아, 빵터졌네. 그래도 본인이 작가에게 낚였다는 걸 결국 눈치챘군.
사람들의 욕망을 '가지고 노는' 팝 아트 전시는 계속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미술 소비 방식 자체가 너무 달라졌다. 예술가의 자아가 앞서는 전시보다, 소비자인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전시로 이동한 것이다. 단순히 참여형 전시를 넘어 감정적인 일체감을 일으키는 '장치'를 제공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이건 미술뿐 아니라 여행, 호텔 등에도 마찬가지다.
전시 가는 길에 눈길을 끌었던 건 코리아나 호텔의 직원식당 홍보 현수막. 호텔에서 직원식당을 F&B로 홍보하는 걸 본건 처음인듯. 하긴 항공사 승무원들이 카페에서 기내식 파는 시대가 왔으니 뭐. 맛은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