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클의 우스움, 그리고 우리 안의 새로운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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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강의를 마치고, 가까운 지인들과 간만에 들렀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그러고 보니 코로나 이후에는 2월에 강의 때문에 간 트래블 라이브러리가 마지막이다. 작년까지는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라도 자주 찾곤 했었는데, 요즘은 어딜 가든 해당 시설이 정상 운영을 하는 지, 사전 예약이 필요한 지도 체크해야 한다.
본 목적인 강의 자료 조사를 후다닥 마치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모노클 과월호를 몇 권 훑어본다. 그런데, 지난 10개월 간 내 머릿 속에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걸 그 순간 느꼈다. 아니, 변화를 넘어 머릿 속에 공고히 세워져 있던 힘의 질서가 해체되고 있었다.
원래 모노클을 읽으면서 드는 감정은, 이들이 제시하는 우수한 '삶의 질(Quality of Life)'은 언제나 한국 바깥에 존재한다는 일종의 소외감이었다. 그건 모노클 뿐 아니라 디자인 라이브러리처럼 수많은 해외 자료가 밀집된 곳에서 평소 얻지 못하는 정보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드는 감정이었다. 지난 십 수년간 미친듯이 해외를 쏘다니며 수집하고자 했던 가치 역시, 우리가 제시하지 못하는 '미래'가 언제나 바깥에 나가면 존재했기 때문이다. 양적인 성장을 따라잡고 나서도 질적인 가치를 따라잡기에 언제나 숨가빴던, 한국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달간의 모노클 이슈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이유모를 'optimism'에 대한 갸우뚱함이었다. 하루 수 만명의 코비드 감염자가 쏟아져 나오는 유럽은 '행복'을 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삶의 질을 제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 모노클에 나타난 그들의 자화상은 여전히 '밝고 힙하고 아름다운 유럽'이었다. 그게 우스워 보인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 속에서 매일 돈을 벌고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곳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현실은, 모노클 커버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아니까.
웃긴 것은, 모노클 류의 유럽 선진 문물과 일본의 쇼와 시절 풍요를 최고의 문화적 가치로 숭배하는 엘리트들은 '한국'의 사회 각 분야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그 사례들을 빌어와 밥그릇을 유지해온 이들에겐 당연한 미련일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 이후 한국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 이후 우리의 해외여행 행태가 변화한다면, 단지 안전에 대한 우려나 여행 비용 상승과 같은 표면적 이유만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깃발을 따라 화려한 유산을 동경의 눈길로 올려다보기 바빴던 어딘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과거의 질서를 모르는, BTS가 세계 1위라는 걸 당연시하며 자라나는 어린 세대에게는 더더욱. 바야흐로 우리 안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