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미드, 엑스파일(X-Files) 10시즌의 뒤늦은 감상
영어공부를 미드로 했다고 하면 무척이나 많은 종류의 미드를 봤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다. 인생을 통틀어 단 하나의 미드를 꼽으라면, 아무런 망설임없이 꼽는 인생 드라마가 있다.
원래 내 성향이 여러가지 조금 좋아하다 마는 성격이 아니라, 몇 개의 분야에 최소 10년 이상 깊게 파고드는 몹쓸 스타일이다.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우연히 한 미드와 만나면서 제대로 덕질에 빠져드는데....그 주인공이 바로 엑스파일이다. 늦은 밤 KBS 더빙판을 몰래몰래 보며 잠들던 고교 시절을 지나, 십 몇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엑스파일은 내 삶에 특별한 지분을 차지한다.
그 이유는 단연 데이나 스컬리. 질리언 앤더슨이라는 배우가 스컬리 역을 통해 보여준 여성상은 지금까지 내겐 변함없는 최고의 롤모델이었다. 강인하면서도 현명하며 사려깊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민이 있는 아름다운 여성. 어쩔 땐 외강내유의 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위태로운 인생길에 그녀를 본의아니게 끌어들인 바보탱이(..) 멀더가 아주 가끔은 든든하게 곁을 지킨다. 사람 속 터지게 하는데 큰 재능이 있는 멀더를 보다 보면 절로 쌍욕을 내뱉다가도, 바보같고 천진난만한 특유의 미소는 너무나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에휴)
무려 9시즌. 이 길고 험난한 드라마의 대장정은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팬들을 열광시켰고, 나 역시 그 안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엑스파일은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등장하는 단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영어공부에 큰 도움도 안된다는.ㅜ 그럼에도 200여개 가까이 되는 에피소드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특히 가장 아끼는 6,7 시즌은 더더욱.
2002년 종영 후 13년 만에 10시즌 소문이 솔솔 흘러나오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엑스파일과 재회할 생각에 어찌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드디어 올해 초에 미국에서 본방 되면서 거의 동시에 보긴 봤는데, 급하게 만들어진 한글자막 탓에 이해가 덜 된 부분이 많았다. 마침 지난 주부터 OCN에서 더빙판을 다시 방영해서, 내친 김에 영문자막 구해서 번갈아 보고 있다. 정확하게 번역된 더빙판 한 번, 영문자막으로 원어를 다시 보니 이제서야 확실하게 모든 내용이 쏙쏙 들어온다.
사실 10시즌의 완성도에 대한 미디어의 평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기다려온 팬의 입장에선, 단 6개의 에피소드가 그야말로 아까워서 못 볼 정도.ㅠ 두 사람의 케미를 위해 제작된 일종의 팬서비스라 할 만큼 내겐 모든 에피가 특별했다. 특히 첫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둘의 첫 만남이 바로 위의 스틸컷이다. 'uber?' 'hitchhiked.' 이 두 마디의 대화가 어찌나 짜릿하던지. 10년의 공백, 두 사람의 관계, 엑스파일의 부활,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까지도 다 표현하는 한 장면.
배나오고 머리숱도 줄었지만 특유의 멋진 미소만큼은 여전한 데이빗, 오랜 세월의 연륜이 연기로 더욱 빛나는 최고의 배우 질리언. 둘의 재결합을 짧게나마 다시 만난 2016년 상반기, 엑파 팬으로써 진심으로 행복했다. 아직도 10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아끼고 아끼다가 이제서야 보기 직전, 잠시 감상에 빠진 오랜 팬의 (짧게 쓰려고 했는데 길어진) 주절거림.
P.S 마지막 판을 보고 나니 한마디를 안 보탤 수가 없다. 크리스 카터 양반. 이런 엔딩은 13년을 기다린 팬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거 아님? 11시즌 방영이 내년 5월(에다 아직 미정)이라니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