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s7과 아이튠즈 라디오, 뮤직 큐레이션의 미래
영화 <Jobs>의 도입부는 아이팟의 런칭 스피치로 시작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무한하다"는 대사에는 잡스가 바라보는 음악산업에 대한 관점이 담겨있다. 영화를 보고 와서 무심코 ios7을 업데이트했는데, 수 많은 기능 추가와 UI의 혁신적인 변화가 눈에 띄지만, 가장 영감을 받은 것은 완전히 새로워진 아이튠즈 라디오였다.
그동안 스트리밍 라디오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장르로 음악을 구분짓는 전통적인 카테고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기존의 데스크톱 아이튠즈에서도 수많은 카테고리에서 원하는 스테이션을 찾으려면 오랜 탐색을 거듭해야만 했다. 여전히 사람들이 장르로 음악을 구분할까? 혹은 특정 장르만을 선호할까? 음악 소비가 MP3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현 시점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특정 장르의 음악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셔플을 돌리고, 최신곡 믹스를 듣고, 다운로드와 싱크라는 번거로운 행위조차 생략하고 유튜브에서 곧바로 음악을 검색한다.
아이튠즈 라디오가 아이폰의 음악 앱 안으로 들어간 것은 달라진 음악 소비행위를 반영한 변화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아이튠즈 라디오가 새롭게 추가한 Featured Station들은 기존의 장르별 분류가 아니라 컨텐츠 큐레이션에 가깝다. 전 세계의 음악 트렌드를 셀렉트한 스테이션 'Spin the Globe'의 설명에는 Next Psy의 탄생을 기대한다는 커멘트가 있다. 유튜브가 음악 산업의 흐름을 크게 좌우하는 현 상황에서 애플은 큐레이션으로 이에 대항하겠다는 의미로도 느껴진다. 어쨌든 음악이든 음악 플랫폼이든 더 이상 희소한 자원이 아니라 오히려 넘치는 자원에 가깝다. 그렇다면 수많은 음악 중에서 보석을 골라 소개하는 큐레이션이 음악 소비의 행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새로운 아이튠즈 라디오는 음악을 전혀 다른 가치로 재조명한다. 장르별 구분이 아니라 테마나 용도에 따른 큐레이션으로 음악을 재배열하여 '취향'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유사한 아티스트 3명의 음악만 집중 소개하는 '3 of a kind', 케이티 페리와 같은 셀렙이 직접 음악을 소개하는 'Guest DJ', 트위터 뮤직과 결합한 인디 뮤직 채널 'Twitter #music' 등이 특히 눈에 띈다. 사용자의 점유시간을 곧바로 다투게 될 플랫폼은 어쨌든 유튜브일 텐데,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보는 음악과의 대결에서 과연 섬세한 큐레이션이라는 무기가 이길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다.
펩시가 최신 음악을 소개하는 아이튠즈 라디오 스테이션.
만약 애플의 이러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음악은 장르의 개념이 더욱 무의미해지고 싱글 1곡이 아닌 플레이리스트 자체가 콘텐츠로 분류되어 새로운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다른 산업과 결합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상품으로 재포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행 산업에서는 호텔의 아이덴디티를 반영한 BGM 리스트, 프랑스 와인여행 패키지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가 스테이션의 형태로 결합할 수 있다. 나아가 패션 브랜드나 특정 호텔이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스트리밍 형태로 제공하는 마케팅 툴의 기능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이튠즈 라디오를 보면서, 용도에 맞는 음악을 발굴하고 플레이리스트를 창조하는 큐레이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해질 것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여행과 음악, 라이프스타일 그 어딘가의 지점에서, 나는 어떤 큐레이터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