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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Korea

도림천, 화려한 그래피티의 성지로 떠오르다 -1-

by nonie 200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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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내 손을 떠나있던 카메라 렌즈가 컴백한지도 어언 한달째. 그동안 사진 따위는 찍을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가, 불현듯 어제 도림천이 생각나 400D와 함께 간만에 출사를 나갔다. 봄꽃도 내 맘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도림천이라니. 실은 DSLR을 다시 집어들어야겠다고, 렌즈를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한 건 다 도림천 덕분이다. 조깅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도림천의 놀라운 풍경들은 내게 기록의 욕구를 마구마구 불러 일으켰던 것. 이젠 아파트와 대형 상가로 뒤덮인, 여느 동네와 다를 것 없는 도림천에서 내가 만난 건 바로 그래피티였다.  

 






도림천으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난 그림이다. 처음 이 그림을 볼 때만 해도 설마 이런 퀄리티의 그래피티가 도림천 일대에 뒤덮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나는 어릴적부터 그래피티를 포함한 흑인 대중문화에 열광해 관련 도서와 영상, 잡지까지 많은 자료를 수집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힙합 음악을 하던 대학 신입생 시절은 오래전에 지났기에 ㅠ.ㅠ 기억 속에서 멀어져가던 참이었다. 설마 이런 그래피티를 우리나라에서 만나게 될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전 EBS에서 호주 멜버른의 그래피티 거리를 소개한 걸 봤는데, 거기서 웨딩 화보를 찍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 그것도 우리 동네에서 이런 그림이 내 눈앞에 펼쳐질 줄이야.











몇 개의 작품들을 더 지나고 나자, 그래피티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위의 빨간색 그래피티처럼 본토의 스타일을 모방한 문자 위주의 그래피티도 물론 많았지만, 회화적인 표현을 갖춘 독창적인 그림들이 더 많았던 것이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메세지를 담은 몇몇 그림들은 요즘 매체에서 운운하는 '루저(Loser) 문화'의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현재 여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살짝 초토화된;; 도림천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그래피티들이 그럴듯하게 어울렸다. 








도림천을 지나는 자전거 레이서;;들이라면 여기가 어딘지 대략 알게다. 노점상이 있는 곳인데, 그 위로 BLACKHAND라고 씌인 커다란 그래피티가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터널 내에는 수많은 그래피티가 숨겨져 있다. 도림천을 따라 산책하는 가족들은 그래피티도, 그걸 찍는 나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간다.







도림천을 따라 그려진 야외 그래피티도 물론 멋지지만, 터널 내에 그려진 것들 중엔 숨겨진 걸작들이 정말 많다. 보드를 타고 미끄러지는 수탉, 묘한 색감과 표정이 인상적인 천사의 그림은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사실 다른 나라의 그래피티들도 많이 본 편이지만 이렇게 재밌는 벽화를 본 적은 없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은 바로 위의 그래피티다. 언뜻 보면 마치 입체적으로 구름이 흘러가는 듯 보이고, 그 하늘 가운데는 문이 열려 있다. 하지만 열린 문 안에는 또다른 벽이 있고, 작은 얼굴이 하나 그려져 있다. 보는 순간 너무 신비로워서 감히 사진 찍을 생각조차 못했었다는...; 누가 그리셨는지 몰라도 정말 존경스럽다.;; 이 그림은 신도림역 방향 터널의 가장 끝자락에 그려져 있었다.






슬슬 안타까움이 고개를 든다. 도림천 일대는 지금 복원과 공사 중이다. 혼잡한 틈을 타서 많은 길거리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렸던 거겠지. 그런데 공사가 다 끝나면? 이 터널과 기둥과 벽이 다시 새롭게 지어진다면, 그럼 이 그림들은 다 어떻게 되는걸까? 나의 걸음은 좀더 빨라졌다. 슬슬 더 깊고 어두운 다리 쪽으로 접어든다. 노숙자 아저씨들도 하나 둘 눈에 띄고, 인적은 좀더 뜸해진다. 하지만 왠지 욕심이 생겼다. 이 그림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남겨두고 싶었다.






자전거 도로쪽이 아닌 반대편 길 터널 주변이다. 건너편보다 사람도 없고 더 무시무시한 분위기. 하지만 그래서일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래피티가 벽면을 뒤덮고 있었다. 표현도 더 자유분방하고 얽매여있지 않다.




 

아무리 대낮이긴 하지만 왠 아가씨가 커다란 카메라 들고 어두칙칙한 터널 밑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왠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하다.ㅋㅋ 급 용기로 찍은 거긴 하지만, 다시 가라면 못갈 것 같다. ㅎㄷㄷ 이날 도림천에 있는 대부분의 그래피티를 다 촬영해두었고, 2탄도 곧 올려서 사진이나마 공개할 예정. 마지막은 샤방한 봄 풍경으로 마무리.;;;  

 



꽃비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왠지 봄처럼 따스하고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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