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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커리어

여행으로 나를 찾아 보겠다는 '체류형 여행기'를 읽으며 드는 단상

by 여행강사 김다영 nonie 2015. 8. 17.






우리는 때로 살면서 너무나 준비없이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날려 버린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요즘 꽤 잘 나간다는 여행 에세이 한 권을 읽으며 든 생각. 

수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30대 중반 싱글녀가, 그간 벌어놓은 돈으로 외국에서 몇 달 살다 온 얘기를 '여자 혼자 여행기'로 포장해 놨다. 그런데 대부분의 내용은 현지에서 어떻게 하면 남자를 '건져올' 수 있을까?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났다.(심지어 남자를 만나지도 못한게 함정;) 저자는 백수이며 30대 솔로인 자신의 신세를 내내 한탄했고, 그 한탄은 '남들보다 늦게 가도 괜찮아' 류의 자기 연민으로 이어졌다. 블로그에조차 민망한 수준의 글이, 무려 2쇄.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글은 결국 '나보다 못한 처지를 접하며 위로를 받는 거구나' 싶어 씁쓸했다. 

당장 뭔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뚜렷하게 모를 때가 있다. 
이때,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이나 떠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지만, 사실 '가장 리스크가 큰' 여러 옵션 중 하나일 뿐이다. '체류형 여행기'는 이런 미래에 대한 막연함을 정확히 겨냥하고 더욱 불을 지핀다. 

물론 살면서 너무 지치고 힘들 때,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책이나 여행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자족하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순간, 나를 둘러싼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그 현실이 나를 힘들게 하는 무한루프가 반복된다. 삶을 이렇게 만드는 여행은, 안 가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는 나의 내면을 자극할 수 있는 사람이나 책, 컨텐츠를 찾고 직접 만나러 가는 것. 가장 간단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예전에 한 여행서 저자가 내게 찾아온 적이 있다. 자기 이름으로 낸 국내여행서 한 권을 들고 와서 내게 건넸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덜컥 1인출판사를 차리고 창업지원 받아 사무실 입주까지 한 상황. 하지만 사회생활 경력이라곤 오로지 대기업에서 한 업무를 담당한 경험 뿐이고, 출판이나 전자책 관련해서는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어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 분에게 건넨 조언은 딱 하나. "재취업하세요. 앞으로 평생 하고 싶은 분야의 회사로요"

며칠 전 그분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출판 쪽은 아니지만 연관 직종에 취업해 착실하게 경력을 쌓고 계시더라.


예전에도 일기에 쓴 적이 있지만, 20~30대에는 하기 싫은 일을 견디면서 취미로 스트레스를 풀기보다는, 확실한 특기를 두세 가지 연마하는 게 훨씬 삶이 풍요롭고 중년 이후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고 본다. 만약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당 분야에 입사해서 프로 경력을 갖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다. 특히 글을 쓰면서 먹고 살고 싶다면, 더더욱 글쓰기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며 오랜 시간 내공을 단련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전 세계의 새로운 호텔을 취재하고 강의하는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긴 직장생활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는 상당히 진폭이 넓었다. 20대 초중반엔 여행작가나 전국구 강사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다. 그때그때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일을 찾아 하나씩 해나갔다. 대신 젊은 혈기에 혼자 뭘 해보겠다고 시작했던 일은 대부분 실패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실질적으로 쓰이는 능력은 대부분 선배와 상사에게 깨져가며 어렵게 배운 것들이다. 분명한 건 여행지 취재기자와 IT 벤처/대형 출판사 마케터로 쌓은 직종별/업종별 경력이 지금 하는 일을 단단하게 완성시켰다. 물론 긴 직장생활 동안 개인적으로 준비해온 것(블로그, 영어, 책 출간, 글로벌 컨테스트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것이 '커리어'로 완성된 건 직장에서 쌓은 생생한 경험 덕분이었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10년 후에 하고 싶은 일을 먼저 그려보는 작업이 '위로'보다 훨씬 힐링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 여행에 대한 열망 이전에, '시간과 장소를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일할 수 있는' 독보적인 포지션과 직업을 강렬히 원했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 팸투어 따라다니며 광고여행기나 올리는 취미형 파워블로거로 안주하지 않고, 그 어떤 여행기자보다 더 파워풀한 '미디어'가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글로벌 업계와 일하기 위한 환경을 오랫동안 구축했다. 그것이 돈을 쓰는 여행이 아닌 '돈을 버는 여행이자 커리어'가 되어 기존에 없던 여행강사로 데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작이었다. 이런 준비가 없었다면 나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 온전히 살 수 있게 해준 건 막연한 여행이 아니라, 먼저 나에 대해 알고 강점을 찾아내는 나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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