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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Taiwan

[베이터우 1박 여행] 차분한 휴식의 공간, 온천박물관

by nonie 201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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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최 빠져나오기 싫은 숙소를 만난 탓에,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베이터우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온천과 몇 개의 호텔 외에는 그저 청명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베이터우는 천천히 걷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베이터우를 상징하는 온천박물관조차도, 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안에 들어서야만 비로소 빈티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온천박물관에서의 짧은 휴식은, 진짜 온천을 하는 것 만큼이나 큰 힐링이 되었다. 









영국과 일본의 기묘한 만남, 베이터우 온천박물관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13년, 일본은 온천마을인 베이터우에 공중 목욕탕을 건축했다. 당시 크게 유행했던 영국의 빅토리아 양식을 차용해서 1층은 벽돌로, 2층은 일본풍인 목조 건물로 지었는데 상당히 독특하다. 1997년에 대만 정부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새롭게 바꾸어 개방했다. 지열곡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위치해 쉽게 찾을 수 있고 무료 입장이라 좋은데, 함정은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연다는 것이다. 대만 여행기를 몇 개 읽다 보면 의외로 이 곳을 실제 구경한 후기는 많지 않은데, 대부분 베이터우를 잠깐 당일로 다녀가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 도착하면 박물관 구경은 놓치기 일쑤다.










신발을 벗어 슬리퍼로 갈아신고 2층으로 올라가 본다. 넓은 홀에 햇빛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데,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시민들의 휴식처에 더 가까워 보였다. 2층 다다미방이 있던 공간을 그대로 살려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개방했다. 문에는 대만의 옛 영화 포스터를 전시하고 있는데 빈티지한 분위기가 자못 어울린다. 일본 여행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스탬프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기념품숍은 따로 없었던 거 같은데, 그게 좀 아쉽네. 








온천이 있던 그 자리는..

사실 온천박물관의 백미는 100년 전 공중목욕탕이 있던 1층이다. 건축 당시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목욕탕이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왠만한 대형 목욕탕과 비교해봐도 매우 독창적이고 훌륭한 구조를 갖고 있다. 목욕탕이 있던 공간은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빔 프로젝터로 벽에 영상을 쏴서 멀티미디어로 이 곳의 역사를 설명한다.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인데도, 혼자 머무는 듯한 적막하면서도 고요한 느낌. 오래된 건축물에 깃들어 있는 시간의 힘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멋있었던, 중앙 욕탕의 천정에 비춰지는 프로젝터 영상. 

늦은 오후에 들러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오래된 건물을 거닐어 본다. 사진찍는 일에 큰 흥미가 없는 내게도, 이 공간은 참으로 보물같은 그림을 많이 담고 있었다. 










베이터우 온천의 발달사가 분야별로 전시되어 있는 12개의 전시실을 지나면서, 이곳이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물 중 하나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칠이 벗겨져 가는 바닥도, 이제는 흔하지 않은 스테인드 글라스도 여전히 그곳의 일부분이었다. 대만은 옛 역사의 한 페이지를 최대한 변형하지 않고 의미에 맞게 재구성해 시민들의 휴식처로 만들어 놓았다. 폐장 시간이 다 되어 큰 기대 없이 들어갔던 박물관에서, 나는 온천에서 한 시간을 푹 쉰 것 만큼이나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그곳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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