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SIGHT/여행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사라진 이유

by nonie 2012. 1. 24.
반응형




돌이켜보니 오랫동안 여행을 했다. 2001년 가족여행으로 첫 일본땅을 밟은 이후 이런저런 여행을 해 왔다. 짧게는 하루부터 길게는 한달까지 머물면서 '여행자'의 삶을 띄엄띄엄 살았다. 어릴 때부터 미국 팝음악과 미국 문화에 탐닉했던 내게 외국여행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유학도 너무나 가고 싶었고, 영어도 더욱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사는 것을 언제나 강렬하게 꿈꿔왔다.

특히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첫 직장을 잡자마자 미국 비자를 만들었고, 다음 직장에서 받은 첫 휴가 때는 망설임 없이 뉴욕에 갔다. 2007년, 금융 위기 직전의 뉴욕은 터질 것 같은 부유함과 여유로움으로 가득했다. 그 이후로 미국도, 유럽도 기회만 되면 계속 다녀왔다.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도시 중에는 내가 살만한 도시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곳 서울보다는 훨씬 행복하게 살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처음 미국(필리, 뉴욕)에 갔던 2007년 당시. 무척이나 설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요새 외국을 나가보면 그런 기대는 우습게 무너진다. 전세계적인 경제 공황도 큰 영향이 있겠지만, 우리가 너무 잘살게 되면서 외국 문화가 상대적으로 값져보이던 시절이 지난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여론에 비교적 민감하고 한국의 나쁜 속사정을 많이 접하는 편인데도, 예전만큼 미국, 유럽에서 감흥을 받는 강도가 확연히 약해짐을 최근 몇 년새 너무 자주 느꼈다. 여행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지 심각하게 돌아봤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아시아 도시에선 모두 감동의 쓰나미를 겪으며 내 여행 세포는 죽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동시에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류하면서, 더이상 '한국에 살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들'이 없어졌다. 얼리어답터라는 단어가 무색해졌다. 예전에는 해외에 신기하고 좋은 것이 나오면 우리나라에는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왔지만, 이제는 거의 실시간이다. 이런 시대가 오니 역설적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발견하게 된다. 세계 속에서 우리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한류의 강세가 과도하게 부풀려지기도 했지만, 실제 외국에서 체감하는 한국문화의 위상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여행(단기체류, 유학 포함)과 생활은 엄연히 다르다. 여행은 끊임없이 '소비'만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고 자신의 선택을 끊임없이 합리화해야 하는, 크나큰 정신적 비용을 초래한다. 여기에 외국인으로 겪는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은 기본이고. (돈이 많거나 타인의 도움으로 편하게 외국 생활을 한다면 모르지만) 그걸 감수해야 할 정도로 한국을 떠나야만 할 이유가 내겐 없다. 아니, 없어졌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를 찾자'며 직장을 때려치고 해외 체류를 하고 온 여자들의 에세이 광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새 여행 출판계의 가장 잘 나가는 키워드는 놀랍게도 '서울'이다. 나 역시 얼마전 제주에 다녀와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살든 '한국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내가 진짜 몰랐던 건, 어쩌면 한국이 내게 주는 '보이지 않기에 하찮게 지나쳤던' 수많은 혜택들은 아니었을지. 2012년 나의 키워드 역시 세계 속의 서울, 그리고 한국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