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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여행

여행중독의 시대, 삶과 여행의 균형을 찾아야 할 때

by nonie 2018.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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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scene 1. 30대 여성 셋


방금 맞은 편 테이블에서 세 여성의 대화가 시작됐다. 연예인 얘기, 시집 흉보는 얘기 등 단골 레퍼토리가 쭉 이어지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여행 얘기로 귀결된다. 


'야, XX항공에서 이번에 러시아 취항하는데 왕복 20만원 대라는데?' 

'뭐? 진짜?' 

급기야 모인 자리에서 당장 이번 달에 러시아 여행이라도 떠날 기세다. 뒤이은 한 마디. 


'여행은 진짜, 빚내서라도 무조건 갈 수 있을 때 최대한 가야 돼'.


 

#카페에서 scene 2. 20대 여성 넷


취업 얘기를 주로 나누는 대학 졸업반 학생들. 결국 또 대화는 여행으로 이어진다. 대화에 등장하는 행선지는 유럽, 유럽, 유럽. 


"아. 이번 여행? 크로아티아로 해서 스페인 남부 찍고..." 

"스페인 물가 엄청 싸다며?" 


여행 얘기는 자연스럽게 돈으로 이어진다. 여행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최고 화두다. '돈을 모아야 여행을 갈 수 있다'며, 여행 적금과 알바 등의 정보를 나누기 시작했다. 




위의 두 대화는 실제로 몇 달 전 카페에서 흘러나온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어느 카페를 가든, 두 명 이상 모인 테이블에서는 '여행'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한국의 소비심리를 강타한 트렌드는 욜로(Yolo)다. 욜로 열풍에 가장 즐거운 함성을 지른 쪽은 역시 여행업계다. 온갖 온라인과 대중 매체가 일제히 '젊을 때 현재를 즐겨라'라며 부추기는 여행영상과 예능을 쏟아냈고, 해외 출국 수치는 사상 최고수치를 경신했다. 항공 가격의 하락으로 누구나 저비용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고, 그만큼 충동적으로 여행을 결심하기도 쉬워진 환경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여행이 자신의 삶에 큰 우선순위로 이동한 이들은, 소위 '디지털 노마드'로 대변되는 자유로운 삶과 일의 형태에 눈을 돌린다. 내가 기획한 여행 커리어 워크숍에서 2017년 한 해동안 만난, 많은 직장인들이 대표적이다. 노마드 라이프를 꿈꾸며 퇴사와 전직을 희망하는 이들에게서, 여행중독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 세대의 욕구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욜로를 꿈꾸지만, 현실은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이루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는 결국 '다시 비행기를 타는 행위'로 탈출구를 찾는다.


이들은 대체로 20~40세 밀레니얼 세대다. 해외여행의 즐거움을 어릴 때부터 온전히 체득한 첫 세대이자, 남은 여생에서도 여행과 자유를 삶의 우선순위로 두려는 세대다. 안정적인 소득과 소비 구조가 막 시작되는 밀레니얼 세대는 다양한 목적으로 여행 경험을 축적하면서 서서히 해외여행의 즐거움을 '학습'한다. 이들의 여행 목적은 대체로 충동적인 단기여행이나 스트레스 해소용 휴양, 황금연휴 성수기 여행 등이 대세를 이루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밀레니얼 세대의 여행 소비구조는, 소위 '욜로'에 매우 가까운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욜로 키워드는 이들에게서 살짝 비켜가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와 월급의 울타리를 벗어난 후에도, 혹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도, 노년이 되어 여행과 경제적 여유를 지금처럼 영위할 수 있을까? 이제 직업과 소비, 미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 온 것이다. 최근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팟캐스트 '영수증'은, 이러한 불안심리를 잘 반영한 트렌드다. 2018년에는 이러한 흐름이 중심을 이루어, 여행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소비의 한 축으로 미리 두고, 계획적으로 여행소비를 설계하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우리에게 여행은, 반드시 밸런스가 필요한 '대형 소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행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듯이, 한번 여행이 삶의 우선순위로 자리잡은 이들에게 여행 소비의 규모를 줄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소득 규모나 미래가치를 고민하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자'로 여행을 선택했다면, 지속적으로 삶과 여행, 일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플랜'이 필요하다. 또한 여행의 횟수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질(quality)과 밀도를 높인 여행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여행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재테크도 공부가 필요하듯, 여행도 '평생 하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여행 소비를 현명하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또한 여행의 즐거움을 '지속 가능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여행 이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여행 덕분에 직업을 바꾸거나 부수입을 갖게 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전문성을 갖게 된 사람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당신은 여행경험을 '투자한 만큼' 가치있게 활용하고 있는가? 2018년의 여행에서는, 가성비 만큼이나 고민해 볼만한 화두다. 



# 브런치에 2017/11/10일자로 발행한 내용입니다. 원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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